아침에 눈을 떠 처음 인지한 것은 창유리를 통해 들어온 시린 빛 번짐이었다. 오이카와는 두어번 눈을 깜박인 후 옆을 돌아보았다. 자는 모습마저 단정한 남자의 얼굴이 푸르스름한 빛을 따라 드러나 있었다.
언제부턴가 우시지마와 몸을 섞은 날이면 오이카와는 꼭 이렇게 새벽에 눈을 뜨게 되었다. 아래로 내려다보는 감정 없는 눈동자가 가려진 우시지마의 얼굴은 오이카와가 아는 그와 달라서 어쩌면 조금쯤 매료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오이카와는 그렇게 생각했다.
왜 우시와카쨩일까.
손바닥이 부르트도록 서브연습을 하며, 무릎이 무너질 듯한 고통을 감내하면서 언제나 머릿속에 떠올렸던 것은 분명 우시지마 와카토시의 독주를 꺾은 오이카와 토오루지 우시와카의 여자 노릇을 하는 오이카와씨는 아니었다.
별로 잘 생긴 것도 아닌데.
그 앞에 서면 누구나 그의 존재감에 압도당한다는 것은 싫어도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이성에게 인기 있는 얼굴이라는 점에선 자신이 좀 더 우위라고 생각하는 오이카와는 우시지마의 잠든 얼굴을 내려다보며 피식 웃었다.
배구에 관한 한 모든 것을 가진 그를 이기고 싶다고, 진창에서 기어올라 반드시 그를 넘어서겠다고 하루에 수 백번도 넘게 생각하다 보니 머릿속엔 우시와카쨩밖에 남지 않은 것이 아닐까. 라고 중얼거리며 오이카와는 우시지마의 관자놀이에 닿을 듯 말 듯 입술을 가져다 댔다.
맨날 생각나는 거면 좋아하는 거 아냐?
체육관을 닫을 때까지 함께 연습한 후 부실로 돌아가며 매일 생각나는 사람이 있는데 뭘까? 라고 질문하자 이와이즈의 대답은 저랬다. 역시 그런가... 라고 말을 줄이는 오이카와에게 이와이즈미는 연애랑 배구를 같이 할 성격도 못 되면서 쓸데 없는 생각 하지 말고 연습이나 해. 라고 했다.
이와쨩은 나에 대한 건 잘 알고 있으니까.
역시 좋아하는 거겠지? 매일매일 생각하고 있으니까. 우시와카쨩이 아닌 사람에겐 다리 벌려주고 싶단 생각 같은 건 해본 적 없는 걸. 배구로 이길 수 없다면 다른 모든 것도 우시와카쨩이 우위에 있지 않으면 안 돼. 배구 말곤 괜찮은데 소리는 듣고 싶지 않으니까. 얼굴은 오이카와씨가 잘생겼을지 모르지만 함께 서있으면 모두 우시와카쨩을 바라보잖아. 전부, 우시와카쨩이 전부 위에 있어야 해. 오이카와씨가 우시와카쨩에게 배구로 이기는 그날까지.
하지만 이길 수 있을까. 이기지 않으면 안 되는데.
돌연 무너져 내리는 얼굴을 오이카와는 손으로 짚었다. 버리고 온 어린 까마귀가 커다란 날개를 펼치는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우시지마를 올려다보는 것만으로 목숨이 끊어질 것만큼 숨이 차는데 등 뒤의 검은 날개가 자신을 넘어 우시지마에게 다가가려 펄럭이고 있었다.
안 돼.
우시와카쨩을 이길 수 있는 건 나 뿐이니까. 동북 최강의 자리는 아오바조사이의 것이니까.
왕좌의 새하얀 날개를 검게 변하게 하지마. 오이카와씨가 우시와카쨩의 왕관을 손에 넣을 때까지 그 자리에 있어. 그때까지 오이카와씨의 모든 걸 줄 테니까. 우시와카쨩이 오이카와씨를 올려다보게 된다면, 그땐 우시와카쨩의 모든 걸 가져갈 거야.
좋아하니까.
오이카와는 소리내지 않고 웃으며 우시지마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겹쳤다. 그것이 우시지마의 잠을 깨웠는지 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천천히 눈을 뜬 우시지마가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에 있는 오이카와의 얼굴을 보고 좁혀진 미간의 주름을 더 깊게 만들었다.
몇 시냐고 묻는 낮게 잠긴 목소리에 오이카와는 대답 없이, 망설임 없이 우시지마의 허리 위로 올라갔다. 양 손으로 우시지마의 얼굴 옆을 짚고 미간에 입술을 붙였다.
아직 이른 시간이니까. 그 말에 우시지마의 입술 사이에서 가벼운 한숨이 흘러나왔다.
곧장 커다란 손이 오이카와의 뒷목을 붙잡았다. 건조한 탓인지 까슬한 입술이 오이카와의 입술을 한입에 삼킬 듯 맞부딪쳤다. 혀가 얽히고 호흡이 가빠지며 조금쯤 식어있던 침대 위 기온이 차츰 달아올랐다.
좋아해. 우시와카쨩.
대답대신 돌아오는 것은 언제나 허리를 감싸 안는 단단한 손. 오이카와는 우시지마의 목을 끌어안으며 깊게 깊게 그의 입술을 훔쳤다.
좋아해.
오이카와씨가 왕좌에 앉게 된다면 우이와카쨩이 꼭 말해줘야 해.
창 밖의 시리게 푸른 빛은 천천히 새하얗게 그리고 다시 노랗게 태양의 색으로 물들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