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에 트위터에서 돌발로 리퀘를 받았습니다.
아뎅님께서 신청해주셨고 리퀘 내용은 두 사람의 크리스마스 데이트 입니다.
A little town
for 아뎅님
제법 목을 많이 꺾어 올려다봐야 하는, 작은 전구들이 빛나는 대형 크리스마스트리 앞에 선 우시지마는 이곳에 선 자신의 모습이 낯설었다. 작년까지의 그는 크리스마스를 특별한 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거리가 소란스럽고, 부원들의 들뜬 분위기에 연습이 되지 않아 집에 일찍 돌아오는 날. 평소와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특별한 날은 아니었다.
하지만 올해 우시지마는 평소보다 훨씬 사람이 많은 번화가의 한가운데서 이날을 특별하게 만들어준 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크리스마스트리에 매달린 전구가 약간 녹색 빛을 띤 흰색으로 바뀌었고 그것은 곧장 그를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인연이라고 한다면 훨씬 오래전부터 이어져있었다. 네트를 사이에 두거나 그렇지 않을 때에도 항상 관심을 기울이던 상대였다. 그래도 이런 날 이런 이곳에서 만날 약속을 할 사이가 되리라는 건 알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쌓이고, 네트 너머의 얼굴에 자신을 향한 분노가 아닌 다른 감정을 자연스레 읽을 수 있게 되고, 분노가 아니라면 다른 얼굴이 보고 싶다고 어렴풋이 생각하던 때에 상대가 자신에게 먼저 다가왔다.
“우~시와카쨩~!”
아무리 주변이 소란스러워도 그 목소리를 듣지 못할 리 없었다. 우시지마는 천천히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다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솜뭉치를 보고 눈썹을 치켜올렸다.
“많이 기다렸어?”
“그건 아니다만.”
히말라야에 등반이라도 갈 듯한 두터운 검정색 아우터에 코끝까지 둘러맨 흰색 머플러, 하얀 마스크에 평소에 굉장히 신경 쓰는 헤어스타일이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듯 눌러쓴 회색 비니가 낯설었다. 아우터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종종거리듯 우시지마 앞으로 다가온 오이카와는 눈을 들어 우시지마를 마주보았다.
“추워!”
“그렇게 춥지는 않은….”
“오이카와씨는 춥다구!”
“어디 아픈 건 아닌가?”
“뭐?”
호들갑스럽게 반응할 정도로 추운 날씨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우시지마는 진지하게 오이카와의 몸 상태를 걱정했다. 당장 경기가 있는 시즌은 아니지만 운동선수에게 건강관리는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우시지마는 장갑을 벗은 손을 오이카와의 이마, 정확히는 앞머리와 비니로 가려진 이마 아래 미간에 대어보았다.
“차갑군.”
“춥다고 했잖아.”
“견디지 못할 정도면 약속을 미루면 됐을 텐데? 몸 관리가 더 중요하다.”
“진짜, 우시와카쨩.”
보란 듯이 한숨을 내쉰 오이카와가 주머니에서 손을 빼 우시지마의 팔을 붙잡았다. 장갑을 끼고 있으면서도 주머니에 손을 넣을 정도로 추운 거면 정말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라고 생각하는 쪽으로 신경이 가있는 우시지마의 상태를 눈치 챈 오이카와가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아무리 날씨가 추워도 오늘은 같이 보내야 하는 거잖아. 몰라?”
“하지만 네 컨디션을 헤칠 정도면….”
“걱정도 팔자거든?”
우시지마가 이렇게 걱정이 많은 성격인 걸 알지 못했던 오이카와는 추우니까 빨리 가자며 다시 팔을 잡아당겼다.
“이것, 사진 찍는다고 하지 않았나?”
“아, 맞다맞다. 추워서 완전 잊고 있었네. 으아 장갑 벗기 싫어. 터치 되는 장갑 살 걸.”
오이카와는 투덜거리며 한쪽 손 장갑을 벗고 스마트폰을 켰다. 이리저리 걸음을 옮겨 크리스마스트리가 잘 나오는 곳에 선 그는 연신 셔터를 눌러대다 빙글 몸을 돌려 크리스마스트리를 배경으로 자기 사진을 찍더니 손짓으로 우시지마를 불렀다. 옆으로 다가간 우시지마의 어깨에 팔을 두른 오이카와는 ‘우시와카쨩, 폰 봐. 폰.’ 이라고 말하더니 어색하게 선 우시지마 옆에서 활짝 웃는 얼굴로 셔터를 눌렀다.
“그런데 마스크 낀 건 이상하지 않은가?”
“춥다고!”
짧게 항의한 오이카와는 얼른 장갑을 끼고 다시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때야 우시지마는 이미 장갑을 벗고 있던 자신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우시와카쨩 사진 실력 안 믿거든? 찍어준다 그래도 내가 찍었을 거거든?”
“그런가.”
“그래도 우시와카쨩도 한 장 찍으면 어때?”
“글쎄.”
“싫음 말구.”
“아니. 잠시만.”
우시지마는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오이카와가 찍었던 크리스마스트리를 렌즈에 담았다. 특별히 의미 있는 행동이란 생각은 들지 않지만 오이카와가 즐거워하는 것을 보자 같은 일을 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시지마는 아주 잠깐 망설이다 폰을 오이카와 쪽으로 향하게 했다.
“치즈~.”
오이카와는 자연스럽게 손을 주머니에서 꺼내 얼굴 옆에서 브이 자를 만들었다. 마스크 안에서 아이처럼 웃고 있을 입술을 떠올리며 셔터를 누르려던 우시지마는 화면을 누르는 대신 반대편 손을 앞으로 뻗었다.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젖히는 오이카와의 얼굴과 마스크 사이에 손가락을 집어넣자 크게 얼굴을 찌푸리는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알았어. 오늘 이브니까 오이카와씨가 봐준다.”
오이카와는 투덜거리면서 마스크를 벗어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당당하게 브이 자를 만든 손을 앞으로 내밀고 반대편 손을 허리에 얹었다. 눈가를 접으며 활짝 웃는 얼굴을 우시지마는 몇 장쯤 폰에 저장할 수 있었다. 우시지마가 팔을 내리자 오이카와는 다시 호들갑스럽게 마스크와 장갑을 꼈다.
군살 없는 늘씬한 몸을 둥글게 보이게 하는 검정 아우터 아래 두터운 검은 바지와 베이지색 부츠. 하얀 머플러. 우시지마는 묘한 기시감에 기억을 더듬다 이내 생각해냈다. 지나가다 보았던 남극 관련 다큐멘터리에 나온 날지 못하는 조류. 평소보다 걸음이 둔한 오이카와의 모습이 그 동물을 연상시켰다. 머릿속에서 연관되자 저도 모르게 우시지마의 입가가 느슨해졌다.
“무슨 생각하길래 그렇게 웃어?”
“아니, 아무것도.”
“가자.”
오이카와가 두어 걸음 앞으로 걸어가며 뒤를 돌아보았다. 한 번 생각을 떠올리자 계속 겹쳐 보여 우시지마는 조금 난감하기까지 했다. 자신과 신장 차도 많지 않은 남자를 보며 귀엽다는 생각을 하게 될 거라곤, 이제껏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던 우시지마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는 일상적인 움직임마저 특별하게 보이는 자신의 감정이 낯설어 저도 모르게 손을 입가로 가져가 헛기침을 했다.
“우시와카쨩이야말로 감기인 거 아냐?”
“아니다.”
“추우면 이야기 해. 오이카와씨가 넓은 품에 안아줄 테니까.”
팔을 활짝 벌리고 당당하게 웃었지만 오이카와는 곧장 ‘추웟!’ 이라고 말하며 아우터 주머니에 손을 넣고 몸을 움츠렸다. 정말 이대로 밖에 계속 세워두면 감기 걸릴지도 모르겠단 생각에 우시지마는 오이카와에게 다가가 등에 손을 댔다.
“가지.”
“그래그래. 얼른 가자. 난 팝콘은 캐러멜 파인데 우시와카쨩은 뭐가 좋아?”
“난 상관없다.”
“우시와카쨩 고집 엄청 셀 것 같은데 이런 건 또 되게 무던하단 말이지.”
사귀기로 결정한 후 데이트라고 해봐야 하교 후 만나서 저녁을 같이 먹는 정도였던 두 사람의 데이트다운 데이트. 오이카와는 크리스마스이브를 같이 보내자고 하며 영화를 보자고 말했다. 특별히 반대할 이유가 없으니 우시지마는 흔쾌히 승낙했고 막연히 그날 극장에 가서 표를 사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이브 극장은 발 디딜 틈도 없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어서 관중이 많은 체육관은 익숙해도 이렇게 사람사이에서 부대끼는 일엔 익숙하지 못한 우시지마는 살짝 질린듯한 표정으로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왜?”
“아니….”
“표 찾아 올 테니까 여기서 기다려.”
“아니, 표는 내가 사지.”
“예매했어.”
“그런가….”
“우시와카쨩 이런 거 잘 못할 줄 알았다구. 영화 뭐 볼 거냐고 묻지도 않고. 정말이지 빵점짜리 남친이라는 거 알아?”
“그건….”
오이카와가 그렇게 말하자 대답할 말이 없어진 우시지마가 입을 다물었다.
“오이카와씨는 백점짜리 남친이니까. 내가 다 해놨어. 대신 영화는 내가 보고 싶은 걸로 보는 거야.”
“그래.”
“팝콘… 아냐 일단 여기서 기다려. 다녀올게.”
가볍게 윙크까지 날리고 매표소로 걸어가는 오이카와의 뒷모습을 잠시 보던 우시지마는 매표소만큼은 아니지만 충분히 사람이 붐비는 매점으로 고개를 돌렸다. 팝콘은 캐러멜이라고 했던 걸 기억하고 매점 줄의 가장 뒤에 선 우시지마는 전광판에 커다랗게 붙여진 메뉴를 눈여겨보았다. 팝콘 큰 것 하나와 음료 하나, 다행히 물을 팔고 있으니 그걸 하나 사면되겠다고 결정한 우시지마는 자신의 차례가 되었을 때 점원의 ‘음료는 콜라로 드릴까요?’ 라는 질문에 순간 말이 막혔다. ‘오이카와씨는 콜라 싫어. 묻지도 않고 콜라로 주는 곳은 다시 가기 싫다니까.’ 언젠가 오이카와가 패스트푸드점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제라도 기억났다는 것을 다행스럽게 여기며 우시지마는 무사히 주문을 하고 팝콘과 음료를 받아들었다.
역시 매표 쪽의 줄이 길었는지 오이카와는 조금 뒤에 돌아왔다. 그리고 팝콘 통과 음료 컵을 들고 선 우시지마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이내 기분 좋게 웃는 얼굴로 우시지마 앞에 섰다.
“팝콘 샀네? 고마워.”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우시지마를 보며 오이카와는 다시 웃었다. 사실은 오늘 볼 영화의 콜라보레이션 세트를 사려고 했었지만 시키지도 않은 매점 심부름을 한 가상한 우시지마에게 그런 소리를 할 수는 없었다. 분명 몇 달 책상 위를 굴러다니다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게 뻔한 한정 팝콘 통보단 우시지마가 말도 하지 않았는데 알아서 사온 캐러멜 팝콘 쪽이 훨씬 의미 있었다. 게다가 음료 역시 오이카와가 선호하는 걸 확실히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 동북 최강, 괴동 우시지마 와카토시가 사다주는 팝콘을 먹을 수 있는 건 자신 밖에 없을 거란 생각이 들자 오이카와의 기분은 좀 더 좋아졌다. 역시 오늘 만나길 잘 했다고 생각하며 오이카와는 우시지마의 눈앞에서 영화표를 흔들었다.
“그럼 팝콘은 우시와카쨩이 사. 영화는 오이카와씨가 낼게.”
“괜찮은가?”
“응. 나 오늘 우시와카쨩이랑 데이트하려고 지갑 두둑하게 챙겨왔어.”
그것은 우시지마도 마찬가지였다. 영화표 값 대신 저녁을 사면 되겠지. 라는 생각으로 오이카와의 뒤를 따라 들어간 우시지마는 소란스러운 바깥보단 차라리 같이 사람이 많아도 시끄럽지 않은 극장 내부에 안도했다. 지정된 좌석에 앉으며 이번엔 덥다고 머플러며 모자와 아우터를 벗는 오이카와 때문에 우시지마는 곧장 자리에 앉지 못하고 잠시 팝콘 통과 음료 컵을 든 채로 서있어야 했다. 잠시 후 옷을 정리하고 자리를 잡은 오이카와에게 손에 든 것을 건네고 우시지마도 자리에 앉았다.
“우시와카쨩.”
오이카와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오이카와가 우시지마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아~.”
“아?”
무의식중에 입을 벌리자 팝콘이 두어 개가 입안으로 들어왔다. 강하게 퍼지는 캐러멜 향과 단맛에 우시지마가 미간을 찌푸리자 오이카와가 짓궂은 표정으로 웃었다.
“달군.”
“무드 없네. 우시와카쨩. 이럴 땐 네가 먹여주니까 더 달콤한 거 같다던가 하는 말을 하는 거야.”
생각하는 것보다 먼저 생리적인 거부감 때문인지 우시지마의 한쪽 뺨이 눈에 띄게 굳었다. 오이카와는 그런 그를 보며 연신 즐겁다는 듯 웃고는 다시 팝콘을 쥔 손을 내밀었다. 우시지마가 고개를 저었지만 오이카와는 강제로 팝콘을 우시지마의 입술 사이로 밀어 넣었다. 우시지마는 한숨을 내쉬고는 입술을 열어 팝콘을 입안에 넣었다. 여전히 달고, 바삭한 것 같지만 끈적한 식감이 입안에서 껄끄럽게 돌아다녔다. 이런 걸 잘도 먹는다고 생각하며 우시지마는 팝콘을 주워삼키는 중간중간 스트로우를 입에 무는 걸 잊지 않는 오이카와를 바라보았다.
“더 먹어.”
오이카와가 팝콘 통을 내밀었다. 우시지마가 고개를 젓자 오이카와는 팝콘을 몇 개 집어 들었다.
“진짜 손이 많이 간다니까. 우시와카쨩은.”
그리고 또다시 자신의 입술에 팝콘을 가져다 대려하기에 우시지마는 손으로 그것을 낚아챘다.
“어.”
그리고 살짝 벌어진 오이카와의 입술 사이에 손에 쥔 것을 밀어 넣었다. 오이카와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체온으로 인해 녹은 캐러멜로 약간 끈적이는 손가락 끝을 오이카와의 젖은 입술에 문질렀다. 오이카와의 눈가가 장난치는 어린아이처럼 접히고 주변을 살피듯 눈동자가 좌우로 움직였다. 그리고 아주 짧은 순간, 우시지마 말고는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할 빠른 동작으로, 혀끝을 사용해 우시지마의 손가락을 핥았다.
공공장소에서 무슨 짓이냐는 표정으로 손을 거두는 우시자마를 보며 오이카와는 다시 웃었다.
“우시와카쨩이 먼저 시작한 거잖아.”
“…난 괜찮으니 많이 먹어라.”
“네, 네.”
오이카와의 항의에 할 말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우시지마는 화제를 돌렸다. 화제와 함께 돌아간 우시지마의 시선이 닿은 스크린에 몇 개의 광고가 지나가고 잠시 후 영화가 시작되었다. 겨울시즌 가장 기대를 모은다는 영화였다. 문화 전반에 큰 관심이 없는 우시지마도 교실이나 부실에서 들어본 제목이었다. 표를 구하기 힘들다거나 꼭 보고싶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도 났다. 오프닝 뒤 타이틀이 화면을 가득 채웠을 때 우시지마는 다시 오이카와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손에 한 움큼 쥔 팝콘을 먹으면서 스크린에 집중하고 있는 오이카와의 얼굴이 익숙했다. 상대를 앞에 두고 있을 때와 달리 무표정하고 만약 그 시선이 자신을 향한다면 불쾌하게 느껴질 것만 같이 집요한 눈빛. 오이카와는 배구경기뿐만 아니라 영화를 볼 때에도 그 집중력을 발휘하는 듯했다.
우시지마에겐 영화보다 오이카와의 평소와 다른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 더 흥미로운 일이었다. 연달아 눈꺼풀을 깜박일 때와 한참을 눈을 뜨고 있을 때와의 차이가 무엇인지, 고개를 오른쪽으로 기울이는 것과 앞으로 숙일 때의 차이가 무엇인지. 우시지마는 어느새 자신이 오이카와의 그런 행동 하나하나의 의미를 찾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상대 선수를 파악하기 위해 관찰하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이런 식으로 사람을 보는 어색한 일이었다. 하지만 네트를 넘어 오이카와의 손을 잡았을 때 이미 우시지마는 오이카와 토오루에 대해서 좀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었다.
반쯤은 영화를 보고 반쯤은 오이카와의 얼굴을 보는 사이 영화가 끝났다. 오이카와는 영화가 시작한고 십 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부터 꼼짝도 하지 않고 스크린에 집중했기 때문에 팝콘과 음료가 고스란히 남았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자 그제야 끌어안고 있던 팝콘통의 존재를 깨달았는지 오이카와는 눈썹을 중앙으로 모았다.
“반도 못 먹었는데!”
“꽤 집중해서 보더군.”
“생각보다 재미있던데? 우시와카쨩은 어땠어?”
“그럭저럭.”
“진짜, 재미없는 남자네. 거기선 네 얼굴 보느라 영화가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어. 라고 하는 거라고.”
“그러는 넌?”
확실히 우시지마는 상대를 보느라 영화에 집중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오이카와의 시선은 영화 상영 내내 한 번도 스크린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저런 대사를 할 정도면 한 번쯤은 고개를 돌렸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우시지마가 되묻자 오이카와는 시선을 피했다.
할 말이 궁할 때 살짝 비죽거리는 입술. 아래로 내려갔다 측면으로 향하는 시선. 확실히 우시지마는 예전보타 오이카와의 버릇을 좀 더 잘 읽을 수 있었다.
“나도 뭐, 우시와카쨩 보느라고….”
“거짓말.”
“엑, 안 믿는 거야?”
“그래. 내가 계속 보고 있었으니까.”
“우와, 진짜?”
“내가 거짓말을 할 거라고 생각하나?”
“아니 뭐, 우시와카쨩은 거짓말이랑은 굉장히 거리가 있지만.”
기대했던 것보다 영화가 더 재미있어서 영화를 보는 데 정신이 팔려던 것이 사실이라 오이카와는 반박하지 못했다. 하지만 중간중간 우시지마의 시선을 느끼기는 했다. 그럴 때마다 무의식중에 돌아보려는 것을 꾹 참고 더더욱 화면에 집중 할 수밖에 없었다. 돌아봤다가, 시선이 마주치면, 키스하고 싶어질 테니까.
오이카와는 팔을 함 번 쭉 펴 기지개를 켜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자. 근데 팝콘 아깝네.”
“저녁식사를 해야 하니 그냥 처분해.”
“우시와카쨩…. 진짜 가끔 직장상사 같다?”
“무슨 의미지?”
“단어 선택이 남고딩 같지 않다는 거.”
“그런가?”
“응. 말로 적을 만들잖아. 우시와카쨩은.”
“그런 적 없다.”
“퍽이나.”
픽 웃으며 팝콘 통을 우시지마에게 떠안긴 오이카와는 벗어놓은 옷을 다시 입었다.
얇은 니트가 당겨져 드러났던 팔이 두터운 아우터에 가려지는 것을 조금 아쉽게 여긴 우시지마는 손에 넘어온 것을 다시 오이카와에게 넘겨주려다 생각을 바꿨다. 오이카와가 제 물건을 다 챙겼을 때 우시지마는 앞서 걷기 시작했다. 바로 뒤에서 오이카와가 따라오는 것을 신경 쓰며 상영관을 나온 우시지마는 문 밖에 마련 된 쓰레기통에 미련 없이 팝콘 통을 던져넣었다.
“엇? 버리는 거야?”
“어차피 안 먹을 거잖나.”
“아까워~.”
“다음에 또 사주지.”
“진짜?”
“그래.”
씩 이를 드러내고 웃는 얼굴이 기분 좋아 보였다. 오이카와는 더 이상 팝콘에 미련을 두지 않고 우시지마 곁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인파에 밀려 에스컬레이터로 한 층 아래로 내려온 두 사람은 저녁 메뉴를 상의하며 쇼핑몰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특별한 쇼핑계획이 있는 건 아니었기 때문에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짧은 시간일 뿐이었다.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지나가려던 매대가 문득 우시지마의 눈에 들어왔다. 우시지마의 발이 멎자 오이카와도 그 옆에 멈춰 섰다.
“살 거 있어?”
“이거,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나?”
“아? 하나 있음 좋겠다는 거지.”
우시지마가 가리킨 것은 정전식 터치스크린을 사용할 수 있는 장갑이었다.
“선물하지.”
“엉?”
“선물을 준비하지도 못했으니까.”
“흐음…. 받아도 돼?”
“크리스마스 선물 정도는 주고받아도 되는 것 아닌가?”
“와… 우시와카쨩에게 그 소리 들으니까 뭔가 굉장히 놀라운데?”
오이카와는 우시지마의 기특한 소리에 그제야 매대에 늘어선 장갑을 자세히 보았다. 기본적인 디자인의 검정색부터 눈꽃모양이나 동물 캐릭터가 들어간 것도 있었다.
“우시와카쨩은 뭐가 좋아?”
“원하는 것으로 골라라.”
“그래도 선물이라며? 우시와카쨩이 골라줘.”
우시지마는 오이카와를 한 번 보고 놓여있는 장갑을 내려다보았다. 역시 그냥 무난한 검정이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우시지마의 눈에 장갑 한 켤레가 들어왔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것에 손을 가져가자 ‘에엣?’하며 톤이 올라가는 오이카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의외.”
“아니, 역시 그냥 검정이 낫겠군.”
“이리 줘봐.”
오이카와는 우시지마가 집어든 것을 뺏어 손에 끼웠다.
“짜잔. 어때?”
검정색 니트에 손등 부분에 흰 실로 펭귄모양이 들어간 것으로 아무래도 몇 달 뒤면 성인이 될 남자에게는 썩 어울린다고 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을 손에 낀 것은 오이카와였고 그 때문에 우시지마는 보통사람과는 다른 이유로 그 장갑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범한 걸로 하지.”
“이걸로 할래.”
“오이카와….”
“안 어울려?”
장갑은 실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오이카와는 장갑을 낀 손을 손등이 보이도록 들어 올리고 다른 손으로 남은 장갑 한쪽을 들어 올렸다. 방긋 웃으며 살짝 손을 흔들기까지 하자 우시지마는 결국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어울린다.”
“그럼 뭐가 문제야?”
우시지마가 입을 꾹 다물자 오이카와의 눈빛이 짓궂어졌다.
“응? 말해봐. 우시와카쨩~. 뭐가 문제야? 오이카와씨가 귀여워? 남들이 귀여운 오이카와씨 보는 게 싫어?”
“너…….”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더욱 더 아무렇지도 않게 오이카와는 우시지마 안으로 성큼 들어와 마음을 뒤흔들었다. 승리를 향한 열망에 관해 솔직하지 않았던 적은 없지만 이렇게 사람의 감정에 대해 솔직하게 된 것은 분명 오이카와를 만난 후였다.
“그래….”
우시지마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남들이 보는 건 그다지 내키지 않는군.”
두터운 옷에 감싸여 기우뚱 걷는 모습이 펭귄을 연상시켰고 그 때문에 이런 장갑까지 고르게 되었다는 걸 차마 말하지 못하고 우시지마는 처음 보았던 검정색 장갑을 집어 들었다.
“그러니 이걸….”
“이걸로 주세요! 끼고 갈게요.”
오이카와는 점원에게 말 하는 것과 동시에 장갑에 연결된 실을 끊어버렸다. 우시지마가 미간을 찌푸렸지만 오이카와는 아랑곳하지 않고 장갑을 손에 끼웠다. 결국 다시 한숨을 내쉰 우시지마는 점원에게 손에 든 검은색 장갑을 내밀며 함께 계산해달라고 했다.
계산을 끝낸 후 우시지마가 점원에게서 받은 장갑이 든 작은 쇼핑백을 내밀자 오이카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평소엔 이걸….”
“싫네요~.”
“어째서?”
“오이카와씨는 이거 마음에 들거든. 그러니까 그 장갑은 우시와카쨩이 써.”
“난 장갑은 필요 없다.”
“정말이지 이 무드 없는 남자를 어쩜 좋담. 커플 장갑이면 좋잖아! 오이카와씨 게 좀 더 귀엽지만.”
우시지마의 눈이 커지자 오이카와는 쇼핑백을 뺏어 안에 든 장갑을 꺼냈다. 연결된 실을 뜯어내고 우시지마의 손을 붙잡아 장갑을 끼웠다.
“터치 되는 장갑이니까 오이카와씨 메시지에도 바로바로 답장 하구 그러라구.”
반대편 손에도 장갑을 끼우다말고 오이카와는 고개를 들었다. 조금 심각한 표정의 우시지마가 보였다. 오이카와의 눈이 가늘게 접혔다. 천천히 장갑을 끼우고 손가락으로 우시지마의 손목을 훑은 오이카와는 그대로 우시지마의 손목을 붙잡아 끌었다.
“오이카와?”
오이카와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비상구 계단으로 연결된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안으로 우시지마를 끌고 들어가서 –정확히는 우시지마가 자기 발로 걸어온 것이지만- 그를 벽으로 밀쳤다. 우시지마의 옷깃을 붙잡고 고개를 들어 입술을 붙였다. 우시지마의 닫히지 않은 입 안으로 혀를 밀어 넣어 안을 휘젓자 금세 우시지마의 혀가 얽혀들었다.
허리를 감는 단단한 손에 안도하며 오이카와는 좀 더 우시지마에게 매달렸다.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타액이 뒤섞이는 소리가 어지럽게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겨우 입술이 떨어지자 오이카와가 거침 숨을 고르며 입을 열었다.
“…외박, 허락 받아왔지? 지금 와서 안 된다고 하면 죽여 버릴 거야.”
우시지마는 대답대신 오이카와의 뒷머리를 낚아챘다. 다시 부딪친 입술은 밖의 날씨와 상관없이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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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콩달콩하게 데이트 하는 우시오이라니 어디의 캐붕인가 싶기도 하지만 남이 써주는 최애커플 커귀짓은 즐거운 법이지요... 아뎅님께서도 그러하시리라고 믿고 써보았습니다.
오이카와씨는 셀카 엄청 찍을 것 같은 이미지...
펭귄은 스티커 재작하시며 꽂히신 듯하여 넣어보았습니다.ㅋㅋㅋㅋㅋ
사실 오이카와씨의 패션은 쿠앤크는 아닐 것 같지만 펭귄으로 만들기 위해 부득불ㅋㅋㅋㅋㅋ
마음에 드시면 좋겠습니다.^^
오타 등은 부디 넓은 마음으로 봐주시길 바라며...ㅠㅠ 리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겁게 썼습니다.^^
이 뒤는...심심님과 19금 글 교환을 하기로 했는데 그걸 이 뒤로 연결시킬 생각입니다. 솔직히 별로 의미는 없을 것도 같지만요....ㅋㅋㅋㅋㅋ 올해 안에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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