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게도 아카쿠로.
아니 그냥 얘네 둘 이야기가 보고싶은데 아무도 안 써줄 것 같아서 짧게 써보았습니다.
어느 날
나란히 걷던 걸음이 횡단보도 앞에서 멈췄을 때 쿠로오의 귀에 익숙하고 무심한 목소리가 들렸다.
"하러 가지 않을래요?"
말은 권유형이지만 이미 결정한 듯한 어투였다.
"너 말이다, 사내놈 둘이서 무드 잡자는 건 아니지만 신호 바뀌길 기다리면서 할 소린 아니지 않냐?"
"쿠로오상과의 신경전이면 제가 이길 수 없으니까요. 다이랙트가 효과적이죠."
"뭐어...그건 그렇다만."
"가시죠."
단정적인 말에 조금 어의가 없었지만 쿠로오는 별 말 없이 아카아시를 따라갔다. 어차피 이르든 늦든 이렇게 될 하루라는 건 쿠로오도 알고 있었다.
가는 길에 드럭스토어에 들른 아카아시와 함께 모텔로 들어간 쿠로오는 별 말하지 않고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은 후 상의를 벗었다. 마찬가지로 짐을 내려놓은 아카아시가 그런 쿠로오를 잠시 보더니 곁으로 다가왔다.
"같이 씻을까요?"
"그러든지."
무심히 말하며 벨트 버클을 붙잡는 쿠로오의 손 위에 아카아시의 손이 겹쳐졌다.
"무드 잡자는 건 아니지만 너무 쿨하신데요."
"피차 마찬가지거든?"
아카아시의 손이 정중하게 움직였다. 이런 상황에서 정중하다는 것은 어울리는 수식어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쿠로오가 보기엔 그랬다. 성급하지 않고 쿠로오가 불편하지 않도록, 그렇다고 너무 뜸들이며 상대를 조급하게 만들지도 않는 그런 손놀림이었다. 고개를 숙인 아카아시의 정수리가 쿠로오의 눈에 들어왔다. 짧은 머리카락으로 뒤덮인 정수리가 조금쯤 귀여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 머리가 더 아래로 내려갔다.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댄 아카아시가 쿠로의 바지를 끌어내렸다. 쿠로오는 조금 멋쩍은 기분으로 바지에서 다리를 빼냈다. 이번에는 아카아시의 손이 쿠로오의 발목에 닿았다. 양말 안쪽으로 조금 거친 감촉의 손가락이 기어들어가자 쿠로오는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순간적인 근육의 긴장이 거기까지 전해졌는지 아카아시가 고개를 들었다.
"민감하시네요."
"야."
발을 빼내려고 했으나 그 발을 붙잡은 아카아시의 힘이 좀 더 강했다. 안으로 들어온 손가락은 여전히 정중한 움직임으로 쿠로오의 아킬레스건을 훑었다. 저릿하게 타고 올라오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감각에 쿠로오는 눈을 가늘게 접었다. 아카아시의 손끝이 언뜻 멈췄다. 그리고 그곳을 둥글게 어루만졌다.
"쯧."
눈치 좋은 놈. 쿠로오는 살짝 혀를 찼다. 역시 이놈도 세터. 켄마만큼 세심한 관찰을 하는 건 아니라고 해도 아카아시 역시 감이 좋았다. 보쿠토같은 큰아들을 케어하려면 없다가도 생겼을 것 같은 능력이지만 지금의 쿠로오로에겐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다.
아카아시는 쿠로오의 그런 기분 역시 눈치챘는지 더 이상 뜸 들이지 않고 양말을 벗겨냈다. 쿠로의 맨발이 완전히 바닥에 닿는 것을 확인하고 반대편 발에서도 양말을 벗긴 후 아카아시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내려다보는 시선이 일견 차가워 보이지만 아카아시는 쿠로오가 겸연쩍어 하는 것일 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약간은 가벼운 언행, 필요한 만큼만 상대를 도발하는 호기로움. 그러나 그 뒤에 숨겨진 냉철함. 아카아시는 쿠로오의 그런 면이 좋았다. 그의 숨막힐 정도로 냉정한 모습을 끌어냈을 때, 네트 너머를 보는 그 반짝이는 눈동자는 순수하게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그의 옆 모습만을 보게 될 바에야 정면에서 그 모습을 보는 라이벌 팀의 세터인 게 차라리 다행이라고. 아카아시는 생각했다.
탄탄한 근육으로 이루어진 다리를 따라 올라간 손이 쿠로오의 마지막 남은 속옷에 닿았다. 그것을 끌어내리고 드러난 장골의 도드라진 곳에 이를 세웠다. 딱딱한데도 따듯한 느낌. 혀를 내밀어 핥자 쿠로오가 긴장하는 것이 다리를 끌어안은 팔을 통해 느껴졌다. 영역표시라도 하듯 핥다가 천천히 배꼽을 향해 기어간 혀가 주변을 맴돌고 아래로 내려가려 할 때 커다란 손이 아카아시의 다음 행동을 막았다.
"씻자며?"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아쉬움을 숨기고 아카아시는 쿠로오의 속옷을 완전히 끌어내린 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귓가에 살짝 입맞추고 재빨리 자신의 옷을 벗어 던졌다. 그리고 먼저 욕실로 향하는 쿠로오를 따라 들어갔다.
"머리카락, 좀 자랐네요."
"아? 응. 자를 시간이 없어서."
"더 기르실 생각은 없어요?"
"너무 길면 불편해."
"앞머리는 그렇게 기르면서."
"시비 터냐?"
"그럴 리가."
머리가 좀 더 길다면 이렇게 머리를 감겨주는 시간도 길어졌을 텐데. 라는 말은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거품을 잔뜩 내서 두피를 긁듯 마사지 해주면 쿠로오는 꽤 기분 좋아 보이는 얼굴을 한다. 아카아시는 그 얼굴을 내려다보며 꼼꼼히 손을 움직였다.
완전히 감은 눈매가 살짝 휘어지며 얼굴 근육이 풀어지는 것이 아카아시의 눈에 들어왔다. 학교 이름 탓도 있겠지만 온몸에 흐르는 긴장감 속에서도 묘하게 나른한 쿠로오를 보고 있노라면 한 마리 검고 큰 고양이가 떠올랐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훌쩍 사라질 것 같은 그런 느낌까지.
아카아시는 쿠로오의 머리카락을 깨끗이 헹군 후 바닥에 주저앉은 그의 몸을 일으켰다. 이번엔 비누 거품으로 함께 몸을 씻었다. 키스는 아주 가벼웠지만 서로의 몸을 확인하는 손의 무게는 그렇지 못했다. 중력에 이끌리듯 상대의 몸을 붙잡으려는 손의 움직임이 어지러웠다.
그래도 막상 수건으로 쿠로오의 몸을 닦아줄 때의 아카아시의 손은 다시금 정중하게 변했다. 굳게 닫은 입술이 여유가 사라진 것을 보여주었지만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쿠로오는 그런 아카아시가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수건이 몸에서 떨어지자 쿠로오는 성큼성큼 걸어 반듯하게 정리 된 침대 위에 몸을 던졌다. 뒷머리에 깍지 낀 손을 대고 제 몸을 닦는 아카아시를 바라보았다. 아카아시는 그런 쿠로오를 슬쩍 보더니 다시 하던 일에 열중했다. 그리고 수건이며 벗어 던진 옷가지를 대충 정리 한 후 아까 오기 전 구입한 물건이 담긴 드럭스토어 봉투를 뒤적거렸다. 쿠로오는 아카아시가 선호하는 상표의 콘돔 박스를 보고 결국 피식 웃고 말았다.
"왜 웃으세요?"
"아니, 너 꼭 그거 사더라?"
"예. 맘에 안 드세요?"
"그건 아니고. 과연 몇 개나 사용했을까 궁금해서."
아카아시는 대답하지 않고 콘돔 박스와 윤활제를 들고 쿠로오에게 다가왔다. 침대 옆 테이블에 그 것을 올려놓고 매트리스에 무릎을 댔다. 쿠로오가 안쪽으로 비켜주자 완전히 침대 위로 올라온 아카아시는 곧장 쿠로우의 허벅지 사이로 손을 밀어 넣었다.
"급하네."
"반 년 전에 쿠로오상과 처음 섹스 할 때 사용한 것부터 계산하면… 4개만 더 쓰면 50개 채우는데 도전 하실래요?"
"지금?"
"네."
"대실 아니였나?"
"숙박하죠. 어제 삼촌 오셔서 용돈도 받았으니 모텔비는 제가 낼게요."
"나쁜 조카네."
대답대신 아카아시는 쿠로오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겹쳤다. 쿠로오는 순순히 입술을 열어주었고 아카아시는 사양하지 않고 그 입안을 탐색했다. 조용하고 정중한 움직임에 쿠로오는 다시 웃었다. 본방에 들어가면 어떻게 변하는지 뻔히 알면서도 늘 이 처음의 아카아시의 정중함에 속아넘어가는 자신을 알기 때문이었다.
완전히 마르지 않은 아카아시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자 키스하느라 감고 있던 눈을 뜬 그가 쿠로오와 시선을 마주쳤다. 조금은 장난으로, 약간은 도발하며, 그리고 반쯤은 본심으로 쿠로오는 아카아시의 몸 아래로 다리를 끼워 넣어 허리를 다리로 안았다. 늘 반쯤 감은 듯 보이는 아카아시의 눈이 커지는 게 확연하게 보이는 것이 즐거웠다. 쿠로오가 웃자 아카아시의 입술이 비뚜름하게 올라갔다.
"50개 못 채우면 보쿠토가 뭐라 하든 네코마로 연습 와서 나한테 토스 100번."
"블로킹 연습은 안 하시고요?"
"너 오면 보쿠토도 올 거 아냐. 그때 하지."
"그러죠. 그럼 50개 채우면 제가 다른 거 걸어도 됩니까?"
"뭔데?"
후쿠로다니로 와서 보쿠토 상대해주라는 열 받는 소리만 안 하면 좋겠는데 라고 생각하는 쿠로오에게 짧게 입맞춘 아카아시가 위험하게 웃었다. 쿠로오는 지뢰 밟았다는 것을 직감했지만 그 지뢰가 뭔지 궁금했기 때문에 별말 하지 않고 아카아시의 입술을 쳐다보았다.
"오늘 50개 채우면 다음에 51개째 사용 할 때는…."
흘끔 테이블 위를 바라본 아카아시눈 똑바로 쿠로오의 눈을 보며 쿠로오의 입술에 손가락을 댔다. 엄지로 아랫입술을 가볍게 누르듯 비비며 살짝 손가락 끝을 밀어 넣었다.
"쿠로오상이 씌워주세요. 입으로."
이번엔 쿠로오의 눈이 커다랗게 변했지만 아카아시는 쿠로오처럼 웃지 않았다. 굉장히 진지한 얼굴만이 쿠로오의 눈 앞에 있을 뿐이었다.
반사적으로 싫어. 라고 대답하려던 쿠로오는 곧 생각을 고쳐먹고 씩 웃었다. 연인이 욕망을 솔직하게 말하는데 들어주지 않으면 남자도 아니지.
"확실하게 서비스 해주지."
"무르기 없깁니다."
"너야말로."
아카아시의 입술이 다시 쿠로오의 입술에 닿았다. 바로 조금 전보다 성급한 움직임. 쿠로오는 정말 자신이 지뢰를 밟았다는 걸 절감했다. 하지만 선언한 대로 무를 생각은 없었다.
기어이 50번째의 콘돔 비닐을 찢은 아카아시가 베개와 시트 사이로 머리를 쑤셔 넣는 쿠로오의 어깨를 붙잡았다.
"주무시지 마세요."
"안 자."
"거짓말."
"야, 진짜 할 거야?"
"당연하죠."
"아, 진짜."
아카아시는 본방에 들어가면 굉장히 집요하고 처음의 정중함이 거짓말처럼 강압적으로 변한다. 그렇다고 진짜로 쿠로오가 싫어하는 일을 하진 않지만 사정 봐주지 않는다는 건 확실했다. 쿠로오는 졸려서 그런 건지 탈진해서인지 모를 흐릿한 눈으로 시계를 확인했다. 새벽 세시. 그 사이 아카아시는 착실하게 연장신청도 넣고 저녁으로 피자도 주문해주었다. 피자를 기다리는 동안 몸도 닦아주고 물도 떠다 주며 쿠로오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게 해주었지만 역시 섹스는 격렬했다.
"쿠로오상은 확실히 생각보다 체력이 부족해요. 두뇌플레이도 좋지만 좀 더 체력을 붙여야 하지 않을까요?"
"세터라는 놈이 무식하게 힘만 좋아서는…."
"확실하게 맞춰드리려고 하는데 아직 부족합니까?"
예상하지 못했던 아카아시의 그 말에 쿠로오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한숨을 내쉬고 끄응… 하며 신음소리를 낸 쿠로오는 물먹은 솜 같은 몸을 뒤집었다. 평소보다 상기된 얼굴에 눈매가 가늘어진 아카아시가 보였다.
"왜 결정적인 데서 눈치 없이 구냐."
섹스테크닉을 말 하는 게 아니었는데 대번에 진지해지는 아카아시를 보자니 쿠로오는 이렇게 힘든 것도 자신이고 괜히 미안해지는 것도 자신이라는 지금의 현실이 억울했다.
"하지만 쿠로오상은…."
"넌 내가 싫어하는 놈이랑 침대에서 뒹굴 정도로 사람 좋아 보여?"
"아뇨. 싫어하는 상대라도 필요하면 섹스 하실 것처럼 보입니다."
그 즉답에 말문이 막힌 쿠로오가 아카아시를 잠시 보다가 픽 웃었다. 그리고 아직 아카아시 손에 들린, 한쪽만 찢긴 콘돔 봉지를 낚아챘다.
"그럼, 네코마의 주장이 후쿠로다니 세터에게 뭐가 필요해서 싫어하는데 섹스 한다고 생각해?"
"그건…."
"머릴 좀 굴려."
쿠로오는 완전히 비닐을 벗긴 콘돔을 입술로 물었다가 지금 침대 위에 껌처럼 붙은 척추를 세울 힘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손가락으로 집어 아카아시의 얼굴 앞으로 내밀었다.
"약속했으니 다음 번엔 확실히 서비스 해줄게."
"쿠로오상…."
"빨리 하고 자자. 세시다."
"네."
아카아시의 어깨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답지 않게 긴장한 듯했다. 전혀 귀여운 타입이 아니지만 이럴 땐 정말 귀엽다니까. 라는 생각을 하며 쿠로오는 손에 든 걸 아카아시에게 넘겨주고 손가락을 까딱였다. 성실하게 고개를 숙여오는 아카아시의 얼굴을 양손으로 붙잡은 쿠로오는 어째선지 식어버린 아카아시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겹쳤다.
"...좋아합니다. 쿠로오상."
입술이 떨어지자 아카아시는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쿠로오는 대답대신 눈가를 접으며 웃었고 아카아시는 그 대답을 알아들은 듯했다.
==========================================================
뭔 소린지....
그냥 보고싶어서요. 처음엔 이런 내용도 아니었던 거 같고 한 서른줄 정도의 짧은 걸 생각했는데....
제가 보는 아카아시는 평소엔 정중한데 침대에선 본능에 충실하다는 느낌으로....
제가 원래 존대 머슴공 취향이거든요...ㅎㅎㅎㅎ....
그래서 아무래도 아카아시에게 조금 촉이 온 것도 같고 그렇습니다.
바보짓 하면 엄청 짜식은 눈으로 보지만 좋아하는 상대에겐 한없이 정중한 느낌으로....
막판엔 졸려서 뭐가 뭔지 모를 지경이지만 일단 오늘 지나면 안 쓸 거 같아서 올려봅니다.
내용 별 거 없고 19금은 아닌데 너무 무심하게 두 사람의 성생활 같은 게 나오는 거 같아서 비번 걸어야하나 고민이 되고 그래요;;;
여전히 퇴고 없음, 오타 주의....ㅠㅠ
아카아시가 쿠로오를 부르는 호칭은.... 고민하다가 그냥 쿠로오상으로 했습니다. 안일하긴 하지만 선배라고 하기도 그렇고 쿠로오씨라고 할 수도 없고ㅠㅠ
'글 > 하이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쿠토/아카아시] the Toes (0) | 2014.12.27 |
---|---|
[우시지마/오이카와] A little town (0) | 2014.12.24 |
[우시지마/오이카와] The Crown (0) | 2014.12.08 |
[우시지마/오이카와] 얼굴 (0) | 2014.12.03 |
[우시지마/오이카와] 아침 (0) | 2014.1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