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흑 대 지각...ㅠㅠㅠㅠㅠ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만지작거리던 휴대폰이 진동하기 시작하자 흠칫 놀라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저도 모르게 심박수가 올라가는 것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오이카와는 하나 둘 숫자를 세었다. 그리고 다섯까지 센 후 크게 심호흡을 한 후 통화버튼을 눌렀다.
“미안 지금 부모님랑 대화중이어서 좀 있다 내가 걸 게.”
전화기 너머의 상대는 알았다고 짧게 답한 후 통화를 종료했다. 전화가 완전히 끊어졌다는 확신이 섰을 때 오이카와는 아까보다 더 긴 한숨을 내뱉었다. 초조하게 만지작거리던 폰을 한 번 힘주어 움켜쥐었다 책상 위 모니터 앞에 내려놓았다. 모니터에는 오늘 받아온, 어제 시라토리자와 경기를 촬영한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벗어놓은 헤드폰을 다시 썼다. 응원 소리와 함성소리에 뒤섞여 공이 바닥을 내리치는 강한 음이 들렸다. 오이카와는 무릎을 끌어안은 팔위에 뺨을 댔다. 그와 동시에 높이 뛰어오르는 우시지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제 경기는 당연하게 시라토자와의 승리가 예견되어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큰 점수 차로 시라토자와가 두 세트를 가져갔다. 다들 대충 해도 이기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지만 우시지마는 그러지 않았다. 물론 최고라고 말할만한 플레이는 아닐지라도 당당히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진지한 모습이었다.
경기장을 밟고 선 당당한 육체에서 흘러나오는 자신감은 자만이 아닌 사실. 어설픈 블록은 내려 박히는 공의 궤도조차 바꾸지 못했다. 뛰어오르기 직전 근육의 수축이 만들어내는 자세를 눈에 담았다. 안정적인 팔의 회전이 만들어내는 공의 코스를 읽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보면서 아주 사소한 차이까지 알아내기 위해 애썼다. 이렇게 우시지마를 분석하는 사람이 비단 자기만이 아닐 텐데 그 바보같이 진지한 남자는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경기가 끝나는 휘슬 소리와 함께 오이키와는 눈을 감았다. 영상이 끊어지고 아무런 소리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귀가 막혀있어 자신의 숨소리와 침을 삼키는 소리만이 쓸데없이 크게 들릴 뿐이었다.
고개를 돌려 얼굴을 완전히 다리 사이에 파묻었다. 캄캄한 눈 에 우시지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성격만큼이나 재미없는 서브. 하지만 스파이크만큼은 상상 속에서도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을 만큼 강력했다. 바닥을 튀어 오르는 다리, 높이 솟아오른 공에 닿는 손. 그리고….
오이카와는 고개를 휘저으며 이마로 팔을 문질렀다. 입술을 깨물어도 한 번 떠오른 모습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하아아… 미친….”
오이카와는 스스로에게 욕을 하며 고개를 들었다. 헤드폰을 빼 내려놓고 전화기를 들었다. 화면을 켜 통화목록으로 들어가 가장 위에 있는 이름을 선택했다.
우시와카쨩
우시지마 와카토시. 그 이름이 주는 무거움이 싫어 우시와카쨩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지만 이제는 자신이 멋대로 부르기 시작한 호칭이 더 무거웠다.
예상대로 채 세 번의 신호음이 가기 전에 상대는 전화를 받았다. 상대가 누구인지 알면서도 꿋꿋이 '네.' 라고 전화를 받는 그에게 '오이카와씨입니다~.' 라고 놀리듯이 말한 오이카와는 일단 사과를 했다.
“미안, 이야기가 길어져서. 많이 기다렸지?”
- 괜찮다. 별 다른 일은 없겠지?
“응, 별 건 아니었어. 이제 봄고니깐 걱정 반 잔소리 반 하시는 거지. 우시와카쨩은 오늘 어땠어?”
의례 하는 질문임에도 상대는 성실하게 대답해왔다. 오이카와는 이것이 분명 자신이 원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과 달리 가슴 한구석이 따끔거려 어금니를 악물었다.
다른 이들이 듣는다면 분명 평소와 똑같이 엄격하고 재미없고 진지한 말투라고 평하겠지만 오이카와는 지금의 우시지마의 목소리가 얼마나 다정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오이카와의 컨디션을 염려하며 코트의 상태 등을 알려주었다. 3학년인 자신 역시 잘 알고 있는 경기장인데 고지식하게 보고서를 읊듯 말했다. 얼마 전까지의 오이카와라면 ‘그런 거 오이카와씨도 잘 알고 있거든?’이라고 놀리듯 말했을 텐데 지금의 오이카와는 입술만 달싹일 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실수였다. 그 날의 일을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가 없었다. 아니 엄밀히 실수라기 보단 어울리지 않는 도박을 했다. 시라토리자와에 대한, 우시지마에 대한 정보를 조금 더 얻고 싶다는 생각과 자신을 향한 우시지마의 호감을 알았기에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었다. 그가 함부로 말을 퍼트릴 남자는 아니라는 신뢰와 함께 거절당하면 그걸 믿었냐고 놀릴 생각으로 입에 올렸다. 받아들인다면 잠시 그 관계를 유지 하다 헤어지면 그 뿐이라고 생각했다. 과거의 자신은 스스로를 과신했고 우시지마에 대한 관심이 이런 종류의 것인지 몰라 자만했다.
『나, 우시와카쨩에게 관심 있는데. 나랑 사귈 생각 없어?』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오이카와.’ 라는 대답이 돌아오리라고 생각했다. 잘못하면 경멸하는 시선, 혹은 ‘말의 의미를 모르겠다.’ 정도의 대답일 거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우시지마는 침묵했다. 아주 잠깐 의문을 떠올렸지만 한참동안 가만히 눈으로 오이카와를 주시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생각할 시간을 줬으면 좋겠군.』
거기서 ‘뭐야 우시와카쨩 이런 거 진지하게 생각해? 바보야?’ 라고 했으면 좋았을 텐데, 우시지마의 그 눈빛과 진지한 목소리, 그리고 이걸로 정말 시라토리자와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이기적인 생각에 오이카와는 생각해두었던 반응을 할 수 없었다. 대답이 없는 오이카와를 두고 우시지마는 돌아섰다. 그렇다면 며칠 뒤 우시지마가 만나자고 했을 때 장난이었다고 빠졌으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자신의 생각은 그 날과 바뀐 것이 없었다.
『너에 대한 내 관심도 아마 네가 말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우시와카쨩이 아마, 라니. 별 일이네. 확신하지 못하는 거야?』
『이런 건 경험이 없으니까.』
『본능으로 아는 거거든? 그럼 우리 오늘부터 1일? 우시와카쨩 여자든 남자는 사귀어 본 적 있어?』
『없다만.』
『그럴 줄 알았지. 있지. 이제 사귀는 거니까 매일매일은 무리라도 일주일에 두 세 번은 통화 하는 거 어때? 우시와카쨩도 나도 연습 때문에 자주 만나기는 힘들잖아?』
『원래 그러는 건가?』
『보통은 그렇지.』
『전화로 무슨 이야기를 하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나 연습할 때 일이나. 감독님에게 지적받아서 기분 상한 거라든가. 부원들이 말 안 들어서 속상한 일이라든가. 원래 그런 거 들어주는 거잖아. 사귀는 거면.』
『그런가?』
『응.』
그때는 납득하지 못한 것 같았지만 우시지마는 그래도 성실하게 오이카와에게 전화를 했다. 처음에는 할 말이 없다고 하는 우시지마에게 오이카와가 가벼운 학교생활 등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우시지마는 생각보다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고 전형적인 남자들처럼 자신이 생각하는 최선의 방법으로 조언했다. 여자아이 상대였다면 몇 번이나 ‘오빠는 내 마음을 그렇게 몰라?’란 소리를 들어야할 답변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오이카와는 여자가 아니었기에 화를 내지도 않았고 도리어 우시지마의 그런 조언 속에 얻어낼 것이 있는지 탐색했다.
언변이 부족한 우시지마를 상대로 원하는 답을 들어내는 건 오이카와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언변이 부족한 만큼 우시지마의 말에는 무게가 실려 있었다. 오이카와는 그것을 간과한 과거의 자신을 멍청했다고 비난할 수밖에 없었다.
『사귀는데 말해주지 않는 거야?』
『뭘 말이지?』
『좋아한다고 해봐.』
『넌 왜 말하지 않지?』
『우시와카쨩이 먼저 말해줘. 듣고 싶다구.』
배구 말고 호불호를 가리는 것이 있을까 싶은 남자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좋아해.’라는 말은 과연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간지럽다고 비웃어줄까. 라는 생각도 조금 있었다.
『듣고 싶은 건가?』
『그렇지 뭐. 이런 건 말하는 것도 좋지만 듣고 싶은 거니까.』
『그렇군.』
『뭐야.』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아하는 것 같다. 오이카와.』
『읏…. 같다가 뭐야 같다가.』
『흠…. 좋아한다.』
『어….』
눈치 채지 못했으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오이카와의 눈과 귀를 그 설렌 듯한 우시지마의 눈빛과 목소리가 뚜렷하게 파고들었다. 저릿하게 가슴이 아파오는 것과 동시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것은 마치 어린 시절 거짓말을 들킬까봐 마음 졸이던 때와 비슷해 저도 모르게 얼굴이 굳어졌다.
『넌?』
『어…. 에이, 묻지 마! 쑥스럽잖아!』
거짓 웃음으로 본심을 가리고 우시지마의 어깨를 장난처럼 때린 오이카와는 호들갑스러운 동작으로 우시지마의 팔에 자신의 팔을 끼웠다.
그 뒤로 오이카와는 다시는 같은 질문을 하지 않았다. 우시지마 역시 오이카와에게 요구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더 부드럽게 바뀌었고 마주쳤을 때의 표정은 조금씩 더 감정이 풍부해졌다. 그리고 오늘도 여전히 우시지마는 오이카와의 질문에 아무런 의문 없이 대답을 해주었다.
그것이 상대에게 알려진다해도 시라토리자와가 약해질 일은 없다라는 자신감이 아닌, 오이카와 개인에 대한 호감에서 나온 것임을 깨달아 갈 때마다 오이카와의 심장은 스스로에게 벌을 주듯 아프게 죄어왔다.
“우시와카쨩.
- 왜 그러지?
“아, 아니. 전화 끊어야 할 것 같아서.”
- 그래. 푹 쉬어라.
“응. 우시와카쨩도 잘 자.”
- 알았다. 그럼.
평범하게 인사를 한 우시지마가 먼저 전화를 끊었다. 오이카와는 한숨은 내쉬며 천장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이를 질끈 깨물고 한숨을 내쉰 후 성급히 헤드폰을 뒤집어썼다. 경기 영상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소란스러운 소리가 귀를 때렸다. 양 팀 선수가 정렬하고 인사를 나눈다. 오이카와의 눈은 얼굴이나 등번호가 보이지 않아도 누군지 알아볼 수 있는 우시지마를 향했다.
그냥 화면으로만 보는 모습에 만족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니면,
“좋아해.”
진심으로 말해 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오이카와는 다시 자신의 무릎을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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