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로츳키 전력도 대지각 ㅠㅠㅠㅠㅠㅠ
사람이 많은 곳은 싫다. 츠키시마는 열차가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 음량을 높였다. 승강장에 내려서자마자 보이는 인파에 살짝 미간을 찌푸린 그는 몇 번 와본 적이 있어도 아직 낯설기만 한 도쿄역의 안내 표지판을 살폈다.
약속장소까지의 경로를 머릿속에 그려본 후 계단을 밟았다. 출발지 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츠키시마를 스치고 지나갔다. 역사 특유의 매캐한 공기가 코 안을 찔렀다. 불쾌하게 뒤섞이는 사람들의 체취와 음식물 냄새에 귀를 덮은 헤드폰 너머에서 느껴지는, 직접적으로 들리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소란스러움이 더해져 츠키시마의 발걸음은 저도 모르게 빨라졌다.
쿠로오가 말한 서쪽 출구로 나오자 거짓말처럼 한산한 곳이 나타났다. 그제야 츠키시마는 평소의 보폭으로 돌아가 드문드문 놓인 벤치 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헤드폰을 고쳐 쓰고 음악 선곡도 바꿨다. 음량을 조절하고 시계를 본 그는 킨들을 꺼내 아까 보다 만 페이지를 열었다. 형인 아키테루가 좋아보여서 샀는데 생각만큼 쓰지 않는다며 케이에게 넘겨준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읽는 책은 츠키시마에게 기기가 생긴 것을 안 쿠로오가 기념이라며 선물해준 것이다. ‘책은 잘 모르지만 이거 츳키 좋아할 거 같은데 읽어봤어?’ 라고 물으며 말한 제목은 츠키시마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작가의 아직 읽어보지 못한 작품이었다. 츠키시마가 쿠로오의 물음에 고개를 젓자 그는 그것을 선물해 주었다.
당장 읽고 싶다는 마음과 조금 아껴뒀다 읽고 싶다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다 쿠로오를 만나러 오는 도쿄행 열차 안에서 첫 페이지를 펼쳤다. 마주한 현실을 대하는 주인공의 시니컬한 독백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작가의 전작이 그러했듯 건조한 어조로 주인공의 내면을 말하고 있었다.
어렵게 쓰인 책은 아니라서 도쿄에 도착하기 전 반절은 읽을 수 있었다. 아마 돌아가는 열차 안에서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수 있을 듯했다. 점점 주인공의 주변으로 펼쳐진 이야기는 주인공의 변화를 예견하고 있었다. 좌절을 거쳐 타협으로. 아마도 그럴 거라 츠키시마는 예상했다. 결국 그러한 평이한 흐름은 작가가 아주 뛰어난 사람은 못 된다는 것을 확인시켜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츠키시마가 이 작가의 책에 흥미를 가지는 것은 한 부분 주인공의 심리에 자신을 겹쳐보기 때문이었다.
세상은 자신과 함께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을 두고 흘러간다는 생각에서 오는 공허함과 그 공허함만큼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시니컬하게 흘려보내는 세상의 일들이 책 안에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변화를 바라고 바라면서도 움직이지 않았던 주인공에게 츠키시마의 시선이 머물렀다. 그 주인공이 결코 밖의 일이라고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자신을 바꾸고, 혹은 바꿀 수밖에 없게 되면서 변하는 것을 보며 역시 소설이니까 가능하지 세상에 이런 일이 쉽게 일어날 리가 없잖아? 라고 평하면서도 아주 조금쯤은 그러한 변화를 기대하는 자신을 돌아보게 되기에 작가의 작품을 계속 손에 잡아왔다.
음악이 끝나고 다음 음악이 시작되었다. 이제껏 츠키시마는 이름도 몰랐던 팝가수의 음악. 지난 번 쿠로오와 만났을 때 음반매장에서 흘러나왔던 곡이다. 쿠로오는 듣자마자 ‘아, 이거 느낌 좋은데? 뭘까?’ 라며 넉살좋게 점원에게 제목과 가수를 물었다. 다행히 샘플로 들을 수 있는 음반이었고 쿠로오는 몇 곡을 들어보더니 구입을 결정했다. 그 모습에 호기심이 동해 츠키시마도 앨범을 들어보았고 모르는 가수지만 나쁘지 않은데다 쿠로오가 흥미 있어 하는 가수이니 궁금하기도 해서 츠키시마는 모바일로 곡 몇 개를 결제했다.
쿠로오가 아니었다면 몰랐을 음악. 그가 아니었다면 오지 않았을 도쿄. 그가 아니었다면 읽기를 나중으로 미뤘을 책.
어느새 츠키시마의 시선은 한 곳에 고정된 채 움직이지 않았다. 공부라고 생각하며 번역해본 영어가사가 뚜렷하게 들렸다. 곡 전체에 반복되는 그 단어는 요즘 츠키시마의 일상에 반복되어 나타나는 쿠로오의 이름과도 같았다.
어느새 조금씩 자신은 그로 인해 변하고 있었다. 일상도 배구도. 그 생각이 들자 츠키시마는 저도 모르게 입술을 비죽이 내밀었다. 변화는 츠키시마가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것 중의 하나이다. 분명 그런데 아주 싫지만은 않았다.
“츳키~.”
눈앞에 그림자가 나타나는 것과 동시에 헤드폰이 벗겨졌다.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기다리고 있던 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쿠로오는 츠키시마의 헤드폰을 손에 들고 사람 좋아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많이 기다렸어?”
“아뇨.”
“좀 더 빨리 오고 싶었는데. 미안. 뭐 듣고 있어?”
쿠로오는 물으면서 헤드폰을 썼다. 그리고 조금 의외라는 얼굴을 하더니 다시 헤드폰을 벗었다.
“이 노래 좋지?”
“…네.”
“츳키도 좋아할 줄 알았어.”
“그러게요. 쿠로오씨랑은 별로 안 어울리는데.”
조금 겸연쩍은 기분에 저도 모르게 곱지 않게 말이 나갔지만 쿠로오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치? 나도 평소 듣는 거 이런 스타일 아니거든? 근데 그때 들었을 때 츳키 생각이 났어.”
쿠로오의 그 말에 츠키시마는 천천히 눈을 깜박였다. 물어볼 수는 없겠지만 그 역시 자신으로 인해 변하는 것이 있을까 궁금했다. 쿠로오의 세계에서 자신은 얼마만큼 영향력이 있는 사람일까.
“츳키랑 연관 지으니까 괜히 더 좋더라. 왜 그래?”
츠키시마의 얼굴이 일그러지자 쿠로오가 물었다.
“그런 부끄러운 소릴 잘도 하시네요.”
“사실인데 뭐. 좋아하는 사람 때문에 변하는 건 당연하지. 나 원래 이어폰 쓰는데 헤드폰도 샀다?”
쿠로오는 웃으며 츠키시마에게 헤드폰을 돌려주었다. 츠키시마는 기기의 전원을 끄고 쿠로오에게서 받은 헤드폰을 가방에 챙겨 넣었다.
“이어폰은 폰 줄 걸릴 때마다 달칵거리는 소리 나서 싫어요.”
“예민하긴. 누가 그래서 이어폰 쓰래?”
“쿠로오씨는 이어폰 쓰신다니까.”
헤드폰은 세상과의 단절을 위해 츠키시마가 선택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어폰을 사용한다면 그와 음악을 함께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냥 계속 이어폰 쓰세요.”
“내 맘이야.”
“나중에 쿠로오씨 듣는 음악 같이 들어요.”
그제야 츠키시마가 말하려는 의미를 알았는지 쿠로오가 씩 웃었다.
“안경군 얼리어답터인줄 알았는데 아직 멀었네.”
“네?”
“요즘은 Y잭이라는 것도 있다구.”
“아…. 그렇군요. 그러고 보니.”
이어폰을 두 개 연결할 수 있는 잭을 언급하자 츠키시마는 더 할 말이 없어졌다.
“츳키는 시끄러운 거 싫어하잖아.”
“그야 뭐….”
“이어폰을 하나씩 끼면 시끄러운 소리 다 들리니까.”
무심할 것 같은 남자는 언제나 생각지 못한 세심함으로 츠키시마를 감싸 안았다.
“둘 다 헤드폰이어도 음악은 같이 들을 수 있다구.”
그 말에 츠키시마의 시선이 아래로 떨어졌다. 그리고 곧장 쿠로오의 손이 츠키시마의 귀를 감쌌다. 뭐하는 거냐고 눈으로 물으며 고개를 들자 쿠로오가 다시 씨익 웃었다. 약간 불길한 느낌에 츠키시마가 미간을 찌푸리자 쿠로오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츳키 헤드폰 쓴 거 엄청 귀엽거든. 요다같아.”
“네?”
“귀엽다니까? 밥 먹으러 가자 밥. 밥 먹고 케이크도 사줄게.”
“쿠로오씨 지금 저보고 뭐 닮았다고 하신 거예요?”
“비밀~.”
츠키시마에게서 손을 뗀 쿠로오는 저만치 앞서 걸어갔다. 웃는 얼굴이 영 개운치 않았지만 캐물어서 좋을 것도 없을 것 같아 쿠로오는 묻는 걸 그만두고 보폭을 크게 해 그의 뒤를 좆았다.
조금쯤 변하면 어떤가. 눈앞의 남자의 본질은 전혀 변하지 않을 테고 그것은 아마 자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변한다고 해서 자신의 본질이 바뀌지 않는다면 조금쯤은 바뀌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츠키시마의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돌아가는 열차 안에서 헤드폰을 통해 흘러나올 쿠로오가 추천해준 음악이 이곳에 올 때 들었던 것과 어떻게 다를지 기대가 되었다.
변화를 망설이지 않고 기대하게 된다. 정말로 그로 인해 자신이 변화하고 있음을 인정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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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지각 ㅠㅠㅠㅠㅠ
참가에 의의를 둡니다ㅠㅠㅠㅠㅠㅠ
의식의 흐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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