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DARK
발간일 : 2016년 05월 29일 마츠오이 배포전 '친구만 50번째'
커플링 : 마츠카와X오이카와 (R-19)
※ 책 사양
신국판 인쇄 118페이지
※ 가격
10,000원
※ 주의사항
● 성인이신 분들에게만 판매합니다.
● 졸업 후 다시 만난 오이카와가 마츠카와를 감금하는 내용이지만 분위기는 한없이 가볍습니다.
● 가벼운 강도의 SM플레이입니다만 이게 책 분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합니다. 그리고 자세한 묘사는 나오지 않지만 관장 같은 것도 언급이 되니 민감하신 분들께서는 주의 부탁드립니다. 오이카와가 m입니다. 약간 스팽킹에 특화된 느낌.
※ 샘플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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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가독성을 위해 문단 사이는 띄워두었습니다.
오이카와는 손에 쥔 종이조작을 한 번 보고 눈을 한 번 깜박였다. 그리고 스마트폰 화면에 뜬 번호를 한 번 보고 다시 한 번 눈을 깜박였다. 또 한 번, 또 한 번. 눈동자만을 굴려 다시 숫자 일곱 개를 하나씩 확인했다. 다시 한 번. 잘 못 봤을 수도 있으니까 또 한 번. 침을 꿀꺽 삼킨 오이카와는 재빨리 몸을 일으켜 앉은뱅이책상 앞에 앉았다. 구입한지 5년이나 된, 당시에도 구형 모델이었던 노트북 전원을 넣고 서랍을 열어 아르바이트를 하는 가게에서 가져온 이면지 뭉치를 꺼냈다. 볼펜 두개, 연필 하나가 다인 연필꽂이에서 볼펜을 꺼내들고 이면지에 볼펜 잉크가 잘 나오는지 확인하기 위해 골뱅이 몇 개를 그렸다. 볼펜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컴퓨터 부팅이 오래 걸렸다. 오이카와는 초조함을 이기지 못해 결국 스마트폰 인터넷 창을 열었다.
‘로또 당첨금 수령 방법’을 검색창에 입력하자 주르륵 관련 글이 떴다. 오이카와는 좁은 방 한 칸에 자신 밖에 없는 걸 알면서도 괜히 고개를 두리번거린 후 검색 결과를 눌렀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일단 로또 공식 사이트에 들어갔다. 수령방법 페이지를 찾아 꼼꼼하게 읽고 필요한 사항을 손으로 적었다. 그런 후 겨우 부팅을 마친 컴퓨터로 접속해 다시 한 번 자신이 고른 번호와 이번 주 당첨 번호를 대조했다.
역대 최대 이월이란 말에 함께 일하는 직원과 함께 퇴근길에 일확천금의 헛된 꿈을 꾸며 한 장씩 구입한 로또7이었다. 만약 당첨된다면…. 이란 망상을 하면서도 결코 자신에겐 돌아오지 않을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새 운동화를 살 수 있게 4등이라도 되면 좋겠단 생각조차 헛된 바람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1등이라니? 오이카와는 제 눈앞에 숫자를 보면서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1등? 오이카와 씨가 1등?????
그렇게 숫자가 적힌 종잇조각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오이카와는 제 마음을 진정시키는데 사흘이라는 시간을 사용했다. 그리고 당첨금을 찾아 투자 상품을 권하는 은행직원의 감언이설에서 귀를 막고 당첨금을 죄다 통장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오이카와는 자신이 평생 꿈꿔왔던 일을 실행시키기 위한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카페인이 없으면 하루를 시작하지 못하는 불쌍한 사람들로 넘쳐나는 사무실 구역 거리에는 그 사람들의 수만큼 다양하고 수많은 카페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부터 개인이 하는 개성 넘치는 카페까지. 적은 가짓수의 조제음료를 to go 형태로만 판매하는 곳부터 본격적인 아침메뉴까지 함께 취급하는 곳까지. 많은 사람들이 바쁜 하루를 시작하는 장소였다.
그 많은 카페들 중 매장이 작은 편에 속하는 한 개인 카페의 직원들 역시 오늘도 바쁜 아침을 보내고 있었다. 카운터에 선 밝은 인상의 직원도 마찬가지였다.
오이카와 토오루. 26세. 한때 미야기 최강의 세터였으나 지금은 세간에서 말하는 루저 집단에 발을 걸친 평범하다면 평범한 신체 건강한 청년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생각보다 빨리 배구를 그만둔 그는 특별한 직업 없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했는데 현재 그는 사무실 구역에 위치한 이 카페에서 커피 파는 일을 하고 있었다. 지역 특성상 아침과 점심시간에 바쁜 이곳에서 오이카와는 어제도 오늘도 웃는 얼굴을 잃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바로 그를 위해서였다.
“안녕,”
“레귤러커피 한 잔?”
“응.”
“270엔입니다.”
말쑥하게 슈트를 갖춰 입은 손님, 오이카와의 고등학교 동창이자 같은 배구부였던 마츠카와는 현재 이 근방 무역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이곳 사무실로 출근하는 아침이면 거의 매번 오이카와가 일하는 이 카페에 들러 세금 포함 270엔짜리 레귤러커피를 구입하는 단골이었다. 아침은 커피 한 잔만. 점심은 대부분 구내식당을 이용하고 때때로 이곳 건너편 함박스테이크 가게를 간다. 그리고 분명 치즈함박을 점심메뉴로 고를 그는 구내식당이 아닌 밖으로 점심을 먹으러 나오면 다시 카페에 들러서 커피를 사갔다. 동료들과 함께 가면 다른 카페를 이용하기도 하지만 혼자 점심을 먹으면 반드시 오이카와가 일하는 카페로 왔다. 그리고 레귤러커피를 주문하고 아침과 똑같이 각설탕 두 개를 넣은 종이컵을 들고 유리문을 나섰다.
오늘 아침에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커피를 주문한 마츠카와는 동전지갑에서 동전을 꺼내 트레이에 올려놓다말고 길게 하품을 했다. 100엔짜리 두 개, 50엔짜리 한 개, 10엔짜리 한 개, 그리고 1엔짜리 열 개를 꺼내놓는 그의 얼굴이 유독 피곤해보여 오이카와는 ‘270엔 받았습니다.’라고 말하는 대신 “맛층 어제 뭐 했어?”라고 물었다.
“게임하다가. 2시 넘어서 잤어.”
“어휴.”
“회사 가기 싫다.”
“게임도 맘껏 못하고 큰일이네.”
“그러게 말야.”
영수증을 건네며 말하자 마츠카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또 한 번 하품을 하며 그는 뒷사람을 위해 옆으로 비켜서 픽업대로 향했다. 오이카와는 다음 손님을 웃는 얼굴로 응대하며 곁눈으로 마츠카와를 살폈다. 전체적으로 곱실거리는 머리카락이라 크게 표가 나지 않지만 옆머리가 살짝 바깥으로 삐친 것이 보였다. 머리를 감고 제대로 말리지도 않고 나온 게 분명한 그를 보자 오이카와의 얼굴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떠올랐다. 하지만 손님을 향한 접객용 미소에 가려진 그 환한 얼굴을 눈치 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이카와가 다시 다른 손님을 응대할 때 마츠카와가 커피를 받아들고 설탕을 넣은 후 카운터를 지나갔다. 그리고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오이카와를 향해 가볍게 눈짓으로 인사를 한 후 문을 나섰다.
한 손엔 커피 컵을 들고 다른 손은 아래로 내려 긴 팔을 휘적휘적 저으며 문을 나서는 남자 마츠카와 잇세이. 오이카와 토오루가 이 카페에서 평일 오픈시간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유였다.
아오바죠사이 배구부에서 마츠카와를 처음 본 순간 오이카와는 ‘못생겼어!’ 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는 지성과 교양을 갖춘 현대인이었으므로 그 실례되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다. 단지 그럭저럭 열심히 하는 마츠카와를 닦달해 그냥저냥 하는 미들블로커에서 제법 괜찮은 미들블로커로 만들면서 ‘키도 크고 몸도 좋은데 얼굴이 아쉽네.’라는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점점 그를 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오이카와는 마츠카와에게 호감 이상의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고 자각했을 때는 이미 마츠카와의 ‘못생긴 얼굴’을 넋 놓고 바라보는 일이 부지기수인 지경에 이르렀다. 반하고 나서 보니 그를 못생겼다고 생각한 과거의 자신을 쫒아가서 때려주고 싶긴 했지만 어쨌거나 지금 누군가 오이카와에게 사랑에 빠진 계기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마츠카와의 ‘얼굴’이라고 답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얼굴 때문에 오이카와는 이 카페에서 몇 년 째 평일 아침 7시 오픈부터 오후 2시까지 일하고 있었다. 성실하게 일하는 오이카와에게 가게 사장은 몇 번이나 점장 자리를 줄 테니 가게 일을 도맡아 하지 않겠냐고 했다. 하지만 오이카와는 매번 그 제안을 거절했다. 예전엔 그저 오후에 마츠카와가 카페에 오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지금은 모종의 준비작업 때문이었다.
조급한 마음을 누르며 일 년이 넘는 시간동안 꼼꼼하게 계획한 그 일을 실행할 날은 이제 머지않았다. 그래서 회사원들의 출근 시간에 지나고 가게가 한가해졌을 때 오늘도 넌지시 말을 꺼내는 사장에게 오이카와는 사표를 내밀었다. 사장은 놀란 눈으로 이유를 물었고 오이카와는 한껏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멀리 이사를 가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사라는 말에 사장은 어쩔 수 없는지 아쉬운 얼굴로 그동안 오이카와만큼 일을 잘해주는 사람은 없었는데 안타깝다는 말을 했다. 오이카와는 보름 뒤까지 일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하자 사장은 당장 구인광고를 내야겠다며 울상을 지으며 사라졌다. 사장이 스텝 룸으로 사라지자 몇 달 동안 함께 일한 아르바이트생의 질문공세가 이어졌다. 오이카와는 그 질문에도 그저 이사를 가게 되어서 어쩔 수 없다는 말만 했을 뿐 다른 것에는 답하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오이카와는 500엔짜리 동전을 내는 마츠카와에게 230엔을 거슬러주며 이곳에서 직원과 손님으로 만난 후 처음으로 그에게 저녁에 시간이 있냐고 물었다. 마츠카와는 잠시 혼자 시간이 멈춘 사람처럼 서있더니 미미한 움직임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오이카와 씨 메일 주소거든? 오후에 연락 한 번 해줄래?”
“…그래….”
“커피는 옆에서 바로 준비해드리겠습니다.”
마츠카와는 묻고 싶은 게 잔뜩 있는 얼굴을 했지만 메모를 건네자마자 곧장 친절한 직원으로 돌아간 오이카와에게 결국 다른 말을 하지 못하고 카운터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의 손에는 익숙하다면 익숙한 필체로 쓴 메일주소가 적힌 하얀 종이 한 장이 들려 있었다.
마츠카와는 커피 한 잔과 오이카와가 건넨 메모지를 들고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았다. 그러고 보니 오이카와가 그 가게에서 일한지 몇 년 째더라? 라고 생각하며 그는 조금 멀게 느껴지는 날짜를 세어보았다.
마츠카와는 평범하게 대학 졸업학년에 이 회사에 입사하기로 내정 받아 평범하게 신입기간 동안 여기저기 성격에 맞지 않는 온갖 부서에서 굴려지다 아주 다행히 입사할 때 지원했던 총무부에 순조롭게 자리 잡았다. 얼마나 오래 이 부서에서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일단 그럭저럭 순조로운 출발이었다. 그리고 과중한 업무에 카페인 없이 살 수 없는 몸이 된 그는 회사 근처 카페 몇 군데를 순회하다 적당한 퀄리티의 커피를 적당한 가격에 판매하는 작은 카페에 정착했다. 대단히 커피 맛을 따지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마츠카와는 계속 그 카페를 이용했는데 어느 날 아침 카운터에 오이카와가 서있어서 깜짝 놀랐다.
그 순간엔 ‘네가 여기 왜 있어?’ ‘잘 지내?’ 같은 질문들이 떠올랐지만 바쁜 아침시간에 카운터에서 시간을 보낼 수 없어 줄이 빠진 후 자기 차례가 되었을 때 마츠카와는 오이카와를 향해 얼빠진 목소리로 “어….”하는 소리만 내고 말았다. 오이카와는 마츠카와도 잘 알고 있는 접대용 얼굴로 방긋 웃으며 조금 서툴게 마츠카와에게 주문하겠냐고 물었다. 마츠카와는 레귤러커피를 주문하고 오이카와에게 돈을 주고 잔돈과 영수증을 받아 옆으로 물러섰다. 오이카와는 마츠카와의 반응에 별 섭섭해 하는 기색도 없이 다음 손님의 주문을 받았다.
각별한 사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모르는 사람처럼 대할 사이도 아니지 않은가 싶어 조금 섭섭하단 생각이 들어도 역시 아침시간엔 너무 바빠서 어쩔 수 없다싶어 마츠카와는 커피를 받으러 픽업대로 갔다. 그리고 커피를 들고 나오며 다시 한 번 카운터를 흘끔 쳐다보았을 때 오이카와와 눈이 마주쳤다. 오이카와는 확실하게 마츠카와를 보고 웃으며 손을 들어 올려 살짝 움직였다. 아, 역시 그냥 너무 바빠서구나. 라고 생각한 마츠카와는 오이카와를 향해 습관적으로 꾸벅 가볍게 고개를 숙인 후 카페를 나왔다.
그 뒤로도 계속 그런 식이었다. 아침에 마주치면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하는 오이카와에게 마츠카와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언제 한 번 밥이라도 먹자고 이야기 하려 했다. 하지만 그는 야근을 밥 먹듯 하는 인생이어서 선뜻 먼저 말을 꺼내기 어려웠다. 오이카와 역시 마츠카와와 마찬가지로 일이 바빠서인지 아니면 고등학교 동창이라는 것 말곤 저와 그를 연결할만한 것이 없다고 치부해서인지 먼저 권하지도 않았다.
마츠카와는 몇 번 저녁에 카페를 가보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오이카와는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카페 주인에게 오이카와는 오전타임에만 일을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막연히 그가 저녁에는 다른 일을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결국 저녁을 함께 하자고 권하는 건 어영부영 뒷전이 된 상태로 지내다보니 시간이 벌써 이만큼이나 지나 있었다. 이제는 굳이 고등학교 동창이니 따로 자리를 마련할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할 만큼 카페 카운터에 선 오이카와에게 익숙해지기도 했다.
그런데 갑자기 시간이 있냐니. 마츠카와는 컴퓨터 부팅을 기다리며 한 손으로 메모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커피를 마셨다. 잠시 후 컴퓨터에 비밀번호를 입력한 그는 커피 컵을 내려놓고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어차피 회사 보안 프로그램이다 뭐다 하며 잔뜩 깔린 것들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10분 가까이 시간이 걸리니 이 시간에 오이카와에게 메일을 보내두자고 생각해서였다. 뭐라고 메일을 보내야 하나 잠시 생각하다 메모에 적힌 주소를 수신자란에 입력하고 제목 란에다 ‘나야. 오이카와.’라고 썼다. 하지만 금세 이건 좀 아닌 것 같단 생각이 들어 백스페이스 버튼을 눌러 지운 그는 ‘마츠카와입니다.’라고 썼다. 그런데 이것 역시 업무 메일을 보내는 것 같아 다시 지운 후 결국 ‘마츠카와야.’라고 쓴 다음 본문에 자신의 퇴근시간과 함께 저녁으로 뭐가 먹고 싶으냐고 짧게 적어 보냈다. 자리에 앉자마자 메일을 보낸 꼴이 꼭 이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처럼 보일 것 같단 기분이 들었지만 어차피 오이카와는 일을 하느라 확인이 늦을 테고 자신 역시 일을 하다보면 메일을 보내야 한다는 걸 잊을지도 모르니까 빠른 게 나을 거라 생각하며 휴대폰 화면을 끈 마츠카와는 아직 컴퓨터가 사용할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빙글빙글 도는 원으로 확인시켜주는 마우스커서를 바라보며 남은 커피를 들이켰다.
아니나 다를까 오이카와는 점심시간이 가까워졌을 때 답장을 보내왔다. 일이 꽤 바빴기 때문에 마츠카와는 나중에 보자는 간단한 답을 보낸 후 하던 일에 몰두했다.
지겨워. 마츠카와는 그렇게 생각하며 오늘도 반복되는 업무 중 하나를 완료하고 서류를 옆에 쌓았다. 위로 줄줄이 까마득한 상사들이 들으면 콧방귀를 뀌겠지만 정말 요즘 마츠카와는 삶이 무료했다. 그는 학창시절 가장 곤혹스러운 질문이 뭐냐고 묻는다면 망설이지 않고 “잇세이는 장래희망이 뭐니?” 라고 꼽을 사람이었다. 부모님이나 친척, 하다못해 학교 담임까지 끈질기게 물어보는 그 질문에 마츠카와는 언제나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고 그러면 그들은 “어린 애가 꿈이 있어야지.”라며 그를 나무랐다. 꿈이라면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서 하루 종일 좋아하는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적당히 먹고 사는 것인데 그런 것을 이야기 해봐야 꿈이 없는 것처럼 구는 것보다 더 혼날 게 뻔해 마츠카와는 늘 입을 다물었다. 잔소리를 흘려들으며 “네. 네.” 하고 적당히 대답하면 어른의 도리를 다한다는 것에 취한 그들은 뭐라 대꾸하는 것보다 빨리 일방적인 말을 끝내고 마츠카와를 놓아주었다. 꿈이 꼭 있어야 하나. 라고 생각하던 그는 그 생각 그대로 성인이 되었고 지금도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을 꿈꾸고 있었다. 좁아도 괜찮으니 안락한 공간에서 하루 종일 뒹굴며 게임을 하는 것. 이제 20대 중반인 창창한 젊은이의 꿈이라기엔 형편없다고 하겠지만 사람이 누구나 대통령이나 기업 총수 같은 걸 장래희망으로 삼을 필요는 없으니까 이 정도면 범죄를 저지르겠다는 것도 아니니 평범하다고, 마츠카와는 오늘도 그렇게 자기 위로를 했다. 그러면서 게임 타이틀을 구입하고 게임을 하며 먹을 피자 값을 대기 위해 오늘도 월급을 주시는 회사님에게 시간을 바쳐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으며 지겨워 죽겠다는 얼굴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렇게 하루에 두어 번은 생각하는, 노동의 당위성에 대한 고찰을 마친 마츠카와의 머릿속에 자연스레 오이카와가 떠올랐다. 학창시절 오이카와는 마츠카와에겐 조금 부담스러운 상대였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목표를 뚜렷하게 밝혔고 그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걸 게을리 하지 않았다. 호승심이나 경쟁심이 제로는 아니어도 기본적으로 ‘적당히’가 모토인 마츠카와는 그런 오이카와를 높게 평가하면서도 동시에 그를 지나치게 친해지고 싶진 않은 사람으로 분류했다. 에너지가 넘쳐나는 오이카와 곁에 있는 것만으로 이쪽은 제법 에너지를 소모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오이카와에게 개인적인 호감이 없냐고 한다면 그런 것은 아니었다. 작고 예쁜 것도 아닌데 화사하다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오이카와는 대체적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마츠카와 역시 그런 오이카와에게 남들처럼 끌렸던 것도 사실이다. 단지 가까이 지내다 알게 된 화사한 얼굴 뒤의 얄미운 표정이라든가 사근사근한 언사 뒤의 독한 태도라든가 하는 것들이 마츠카와의 취향에 맞지 않았을 뿐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취향일 수 있기 때문에 취향이 되기 전에 먼저 피했다고 할까.
마츠카와는 서류용지의 창백하게 하얀 여백을 보며 오이카와를 떠올렸다. 운동하는 사내자식 치고 하얗다. 라고 말하기 미안한, 반에서 예쁘다고 소문난 여학생만큼이나 하얗고 뽀얀 오이카와의 피부는 서류용지의 재미없는 흰색과 달리 꽤 다채로운 색으로 변하곤 했다. 시합 중 격한 숨을 내쉴 때 불그스름하게 달아오른다든가 전생부터 원수였던 게 아닐까 의심이 될 정도로 우시와카를 볼 때 안색이 파리하게 변한다든가 여자아이에게 고백 받았다며 쑥스럽게 웃을 때 뺨만 살짝 붉어진다든가 하는 것처럼 제법 다양한 변화를 보여주었다. 거기다 피부가 하얗기 때문인지 이와이즈미에게 걷어차이면 허벅지 뒤쪽에 금세 붉게 자국이 남기도 했다. 그것도 꽤 볼만했는데…. 라고 생각하던 마츠카와는 피식 웃으며 서류철을 넘겼다. 과거의 추억이 된 그런 것들보다 왜 이제 와서 오이카와가 자신에게 저녁을 먹자고 하는지를 좀 더 궁금해 해야 하는데 생각나는 건 주장님의 하얀 허벅지, 이런 거라니. 마츠카와는 자신이 요즘 하는 게임의 여자 NPC의 의미 없는 노출에 관한 장문의 불평 글을 봐서 그런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잔업거리를 만들지 않기 위해 다시 서류에 집중했다.
퇴근하고 싶다는 생각을 셀 수 없을 만큼 반복하고서야 마츠카와는 퇴근시간을 맞이할 수 있었다. 시간이 되자 보기 드물게 부리나케 정리를 하는 그를 보는 과장의 눈초리가 좋지 않았지만 요즘은 그래도 한가한 시기이니 만큼 너그러운 상사 노릇을 할 요량인지 “여자 친구라도 만나러 가?”라고 물을 뿐 붙잡진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오이카와에게 내려간다고 연락하자 그는 마츠카와가 종종 점심을 먹는 레스토랑에 먼저 가있겠다고 답을 주었다.
그곳에 도착하자 구석진 자리에 앉은 오이카와의 모습이 보였다. 메뉴판을 꼼꼼히 살피는 그에게 다가가자 고개를 들더니 방긋 웃으며 “맛층.” 하고 불러왔다. 거의 매일같이 아침마다 보는 웃는 얼굴인데 카페 직원과 손님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어서 그런지 굉장히 오래간만에 웃는 얼굴을 본다는 기분이라 마츠카와도 싱긋 웃으며 오이카와의 맞은편에 앉았다.
“맛층은 뭐가 좋아?”
“음…. 여기 저녁엔 코스 괜찮은데. 어때?”
단품 메뉴는 고르기도 귀찮아 마츠카와가 제안하자 오이카와는 불만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거 할래? 오이카와 씨가 사줄게.”
“됐어.”
“왜. 오이카와 씨 돈 많아.”
“뭐냐. 그 졸부 같은 소리.”
“사실인데 뭐. B코스 할까? 맛층 술 마셔?”
“응.”
“와인? 근데 나 와인은 잘 몰라.”
“나도 잘 몰라.”
“그럼 맥주 마실까? 와인은 사실 맛있는지 모르겠어.”
“좋아.”
격식 따지는 레스토랑도 아니고 마츠카와 역시 와인에 조애가 있는 건 아니었기 때문에 오이카와를 따라 체코산 라거 맥주를 주문했다. 곧장 가벼운 크래커와 딮과 함께 맥주가 나왔다. 마츠카와는 잔에 맥주를 따르며 오이카와에게 어쩐 일로 보자고 한 거냐고 물었다.
“사실 지금까지 저녁도 한 번 같이 안 먹은 게 이상하잖아?”
“그건 그렇지.”
“맛층 엄청 바빠보였다구.”
“바빴던 건 사실이긴 한데. 너도 바쁜 거 아니었어? 저녁엔 카페에 코빼기도 안 보이더만.”
“다른 일이 있어서 그랬지.”
“피장파장이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아침마다 오이카와 씨 얼굴 보면서 밥 먹잔 소릴 한 번 안 해?”
“너도 마찬가지 아니야?”
“오이카와 씨는 점원이니까 그렇지. 사담 많이 하면 안 된단 말야.”
“그럼 내가 말 걸어도 마찬가지 아냐? 아무튼지 간에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던 거야?”
이대로는 계속 왜 니가 먼저 말 걸지 않았냐는 비생산적인 말만 주고받을 것 같아 마츠카와가 잘라 물었다.
“나 일 그만둘 거거든.”
“음? 그래? 다른데 취직했어?”
“그런 건 아닌데…. 이사 할 거여가지구.”
“흐음…. 그럼 이제 못 보나?”
“응. 그래서 인사도 할 겸 이사하는 집에 맛층 초대하려고.”
“좋은 데 가나보지?”
“응. 오이카와 씨 집 지었거든.”
“뭐야. 돈 많이 벌었나봐?”
카페 아르바이트로 먹고 살만큼이야 벌지만 그렇다고 이 나이에 집을 지을 수 있을 정도로 수 없는 게 뻔한 현실인데 오이카와의 태도가 담담해 마츠카와는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제법 놀라고 말았다.
“응.”
“자랑하려고?”
“응.”
“그런 건 이와이즈미에게 해야 하는 거 아냐?”
“이와쨩이랑 맛키랑은 또 같이 부를 거야. 그냥 맛층한테 먼저 보여주고 싶었어.”
“상관은 없지만.”
굳이 왜 자신에게? 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어 마츠카와는 다음 달 초 주말에 방문하기로 약속을 잡았다.
그러니까 마츠카와는 약속한 그날 회사 여직원에게 추천받은 과자 세트를 사들고 오이카와를 만나러 갔다. 도심외곽지역의 한적한 고급주택가일 거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던 마츠카와는 거의 3층 높이에 가까운 외벽에 둘러싸인 견고한 성 같은 오이카와의 집을 보고 그가 집을 지어서 이사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보다 더 놀란 얼굴을 했다.
외부로 트인 곳은 문과 주차장을 가린 셔터뿐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자 곧장 현관이었다. 열린 중문 너머로 전면유리, 그리고 ㄷ자 형태의 건물 중앙의 작은 정원이 보였다. 마츠카와는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일본의 전형적인 주택과 완전히 다른 건물 모습에 오이카와가 정말 돈을 많이 벌었다는 실감도 났다. 정원을 둘러싼 유리벽으로 햇살이 넘칠 듯 들어왔다. 외벽에 아무런 창이 없어서 어떻게 하려나 싶었던 자신의 고민이 바보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실내로 들어와 오른쪽으로 꺾인 곳에 거실로 보이는 공간이, 거기서 다시 꺾으면 부엌이 있었다. 오이카와가 권하는 대로 새 가죽 냄새가 물씬 풍기는 넓은 소파에 자리 잡은 마츠카와는 정말 이 집을 지은 거냐고 물었다.
“응. 고민 많이 했는데 잘 지어진 거 같아서 다행이지 뭐야.”
뿌듯한 얼굴의 그를 보며 마츠카와는 부러움이 섞인 목소리로 이런 집에서 살면 좋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맛층도 마음에 든다니 기뻐.”
다시 한 번 부럽다고 말하자 오이카와는 돈이 좋긴 하더라고 말하며 부엌으로 가 부산스레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제법 근사한 술안주를 만들어 내온 오이카와는 맛층에게 맥주를 권하며 소파에 앉았다. 다른 사람 눈치 볼 필요 없는 공간에서 술이 한두 잔 들어가자 어느새 두 사람은 옛날이야기를 늘어놓느라 시간가는 줄도 몰랐다. 이렇게 된 거 자고가라고 말하는 오이카와에게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일 정도였다. 집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자 맥주 캔을 비우는 데 망설임이 사라졌고 얼마나 마시는지 세지도 않은 채 계속해서 두 사람은 납작하게 찌그러뜨린 빈 캔으로 비닐봉투를 채우는데 전념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마츠카와는 잠에 빠져들었다.
알람소리에 억지로 눈을 뜨는 것이 아닌, 자연스레 잠이 깨는 것이 얼마만인지. 마츠카와는 눈을 감은 채 몸을 뒤척였다. 굉장히 감촉이 좋고 가벼운 이불이 포근하게 자신을 감싸고 있었다. 이불 최고. 마츠카와는 오이카와가 뭘 좀 아는구나. 라고 생각하며 이불을 코끝까지 끌어올리며 베게에 뺨을 비볐다. 베개 역시 높지도 낮지도 않은 적당한 높이에 지나치게 푹 꺼지지도 않은 데다 가볍게 바스락 거리는 촉감도 좋았다. 주택뿐만 아니라 이런 사소한 것까지 신경을 많이 쓰다니 대단하다고 생각하며 마츠카와는 몸을 옆으로 돌렸다.
“음?”
탄력이 좋은 매트리스에 질 좋은 침구, 적당한 실내기온. 뭐 하나 불만족스러운 것이 없다고 생각하던 마츠카와는 발목에서 느껴지는 생소한 무게에 눈을 반짝 떴다.
“어?”
그리고 살면서 실제로 보게 될 거라 꿈에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풍경에 눈을 껌벅거렸다. 쇠창살이라니? 마츠카와는 벌떡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잠결에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분명 쇠창살이었다. 어젯밤에 술을 대중없이 마시다 푹신한 소파에 미끄러지듯 머리를 기댄 것은 기억나는데 쇠창살이라니? 그러다 번뜩 잠이 깬 연유가 떠올라 마츠카와는 오리털인지 거위털인지로 채워진 가벼운 이불을 확 들췄다.
장식용으로 절대 달고 다닐 리가 없는 것이 마츠카와의 발목을 감싸고 있었다. 신축성 있는 얇은 직물 보호대 위에 가죽으로 된 벨트, 그리고 그 가죽 표면을 감싼 금속 사슬. 단단하게 고정된 사슬의 이음새 부분의 잠금장치에는 작은 열쇠 구멍이 있었다. 그리고 발목을 감싼 사슬보다 좀 더 가는 쇠사슬이 침대 아래로 늘어진 게 보였다. 마츠카와는 시선으로 쇠사슬을 훑었다. 어지간한 1K 공용주택의 방보다 큰 공간을 에워싼 쇠창살 한쪽에 사슬의 반대쪽 끝이 고정되어 있었다.
마츠카와는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판단이 되지 않아 눈을 끔벅이며 일단 주변을 천천히 살폈다. 벽 대신 쇠창살이라고 생각한다면 창살 안은 취사시설이 없는 원룸 같았다. 다시 말해 이 안에 화장실이며 세면대, 욕조까지 갖춰져 있다는 것이었다. 헛웃음을 삼키며 자리에서 일어선 마츠카와는 생각보다 가벼운 발목을 끌고 욕조가 있는 곳으로 갔다. 투명한 벽에 손을 대자 꽤 두꺼운 유리의 감촉이 느껴졌다. 아크릴 같은 것일 줄 알았는데 이걸 만든 이는 그리 호락호락 하진 않은 듯했다. 손으로 가볍게 두드려보자 주먹질 정도로 깨질 것 같지도 않았다. 그 유리상자 안에 마츠카와가 앉아서 다리를 뻗어도 될 만한 크기의 욕조와 샤워시설이 갖춰져 있었고 그 옆에는 세면대가 있었는데 거울은 유리가 아닌 판에 칠을 한 것이 기라도 한듯 마츠카와의 얼굴이 꽤 왜곡되어 보였다. 세면대에는 칫솔 치약 비누 로션 등이 있었지만 면도기는 보이지 않았다. 마츠카와는 다시 한 번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허리보다 조금 더 높은 곳까지 가려진 비데가 설치되어 있는 변기를 바라보았다. 최소한 여긴 가려줬다는 것에 감사해야 하나 싶을 지경이었다.
“미친….”
==== 후략 =====
※ In the DARK 96페이지 10째줄에 오이카와 이름이 잘못 적혀 있습니다. 책에 오기가 있어 죄송합니다. 앞으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겠습니다.
※ 오기부분 스티커가 함께 발송됩니다. 보통 앞표지와 면지부분 사이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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