뻘글....ㅠㅠ
한 마리
담벼락 위에 고양이가 한 마리, 다리를 꼿꼿하게 펴고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다지 어떻게 할 생각은 없는데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발을 멈추지도 않고 무심히 시선을 돌리고 아카아시는 앞으로 걸었다. 코너를 돌자 주인과 함께 산책 나온 개가 한 마리 보였다. 까만 눈동자에 낯설음이 어려 있었다. 잠시 눈을 마주쳤지만 그 뿐으로 아카아시는 다시 가던 길을 갔다. 이번엔 바닥에서 모래를 쪼는 비둘기 한 마리가 아카아시를 보자마자 푸드덕 거리며 날아갔다. 날갯짓이 지나치게 가까워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 뿐이었다. 아카아시는 가던 길을 그대로 걸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초인종을 누르자 안에서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고 보쿠토가 나타났다. 아카아시인지 알고 있으면서도 얼굴을 보자마자 활짝 웃었다. 아카아시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는 것으로 그 미소에 답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문용 선물로 사온 과자 상자를 보쿠토에게 내밀고 신발을 벗어 가지런히 정리 한 후 안으로 들어간 아카아시는 부모님이 부재중인 집안을 한 번 눈으로 돌아보곤 보쿠토의 방으로 향했다.
“청소는요.”
“오자마자 하는 소리가 그거야? 그래도 많이 치웠는데?”
갑자기 오게 될 일이 있을 때 보았던 충격적인 모습에 비한다면 깨끗한 편이지만 그래도 보쿠토의 방은 또래 남고생의 방이라고 생각해도 조금 지저분했다. 이걸 어쩌나 하는 눈으로 보고 있는데 침대 옆에 익숙하지 않은 플라스틱 박스가 보였다. 그리고 그 안에서 무언가 돌아다니는 듯한 소리가 났다.
그 박스 안에는 베이지색의 햄스터가 한 마리 들어있었다. 작지만 덩치에 비한다면 큰 눈동자로 아카아시를 보더니 코를 움찔거리며 다시 박스 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햄스터 키우시게요?”
“응? 아니. 삼촌네랑 같이 갔잖아. 사촌동생도 같이 가서 내가 며칠 맡아주기로 했어.”
“그렇군요.”
주말에 부모님이 여행을 가니 놀러오라고 해서 온 것인데 아무래도 손님이 더 있는 것 같았다. 아카아시는 투명한 박스 안에서 불안한 듯 돌아다니는 햄스터에게서 시선을 떼고 다시 방 안을 훑어보았다.
제대로 정리 하는 건 아무리 시간이 많아도 부족하니 일단 바닥에 흩어져 돌아다니는 만화책을 한 곳에 쌓았다. 여기저기 벗어던진 옷을 주워들다 트렁크팬티가 나오면 한숨도 나왔지만 일단 모조리 주워들고 세탁실에 던져넣었다. 보쿠토가 미쳐 못 치운 과자봉지를 치우고 다용도실에서 청소기를 가져왔다.
“내가 할게.”
아카아시는 두 말 없이 청소기를 보쿠토에게 들려주고 방문을 나서다 플라스틱 박스를 인지하고 그것을 들어올렸다.
“어? 어디 가려고?”
“시끄러우니까 놀랄 것 같아서요.”
“아, 그런가.”
“방 밖에 둘 게요.”
“응.”
보쿠토의 방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박스를 내려놓고 아카아시는 아래층 부엌으로 내려갔다. 분명 오늘 새벽에 부모님이 나간 걸로 아는데 싱크대 개수대에는 냄비며 그릇과 컵이 쌓여있었다. 앞치마를 두르고 그 앞에 선 아카아시는 재빨리 설거지를 해치웠다.
손을 씻고 찬장에서 녹차를 꺼내 다기에 담고 보온포트에서 물을 따랐다. 쟁반과 접시를 꺼내 들고 온 과자 중 보쿠토가 좋아하는 걸 담고 냉장고에서 사과를 꺼내 잘라 그것도 접시에 담았다. 우러난 차를 잔에 따라 전부 쟁반에 올린 후 다시 보쿠토의 방으로 돌아갔다.
방 밖에 두었던 박스는 다시 보쿠토의 방 안으로 들어가 있었고 보쿠토는 박스에서 햄스터를 꺼내 손 위에 올려놓고 신기한 듯 손가락으로 여기저기를 문지르는 중이었다.
“스트레스 받을 텐데요.”
“그런가? 근데 봐. 좋아하잖아.”
보쿠토가 다시 손가락을 가져가자 작은 생물은 앞발로 그 손가락 끝을 붙잡고 냄새를 맡더니 깨물기 시작했다. 그치? 귀여워. 라고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어린애처럼 좋아하는 보쿠토를 보며 덩치 큰 동물이라고 생각했는데 먹이라고 보는 건가. 란 생각을 하던 아카아시는 문득 석연찮은 것이 있어 눈을 가늘게 뜨고 보쿠토를 보았다.
“과자 드시고 손 안 씻으셨죠.”
“어… 아니?”
“손 씻고 오세요.”
“어…응….”
아카아시가 지그시 쳐다보자 시선을 옆으로 돌려 피하던 보쿠토가 결국 쭈뼛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불쑥 손을 내밀어 아카아시가 반사적으로 같이 손을 내밀자 그 위에 햄스터를 내려놓았다.
“씻고 올게.”
“아니, 저기. 어?”
순간 사고가 정지했지만 바로 햄스터를 박스 안에 내려놓으려 했던 아카아시는 도망치듯 팔을 타고 기어오르는 햄스터 때문에 당황하고 말았다. 붙잡으려고 했지만 작은 생물은 생각보다 움직임이 빨랐고 혹시 떨어뜨릴까봐 함부로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겨우 잡았다고 생각하면 다시 몸을 타고 오르던 햄스터는 아래로 내려가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바닥으로 훌쩍 뛰어내렸다.
아카아시는 빠르게 반응해 바닥을 손으로 짚었지만 햄스터는 침대 안으로 기어 들어간 후였다.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무릎을 댄 아카아시는 몸을 숙여 침대 아래를 살폈다. 알고는 있었지만 여러 개의 박스가 쌓여 혼란스러운 침대 아래에서 햄스터를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뭐해?”
이걸 다 들어내야 하나 고민하는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 아카아시는 상체를 세웠다.
“죄송합니다. 햄스터를 놓쳐서….”
“도망갔어?”
“네. 여기로 들어갔는데 안 보이네요. 손전등으로 비추면 놀랄까요?”
아카아시는 다시 상체를 숙여 침대 아래를 둘러보았다. 어두워 잘 보이지 않는지 미간을 찡그리고 얼굴을 거의 바닥에 댄 상태라 엉덩이가 높이 들렸다. 아카아시는 햄스터를 찾느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지만 그걸 뒤에서 보는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그런 모습을 인식한 순간 불온한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부모님이 여행 간 집에 사귀는 사람을 부르는 건 목적이 몇 개 없기도 하지 않은가.
“저기, 아카아시.”
“네.”
하지만 아카아시는 눈에 보이지 않는 햄스터에게 신경이 쏠려 있어 보쿠토의 약간 곤란한 듯한 목소리를 잡아내지 못했다. 얼굴도 들지 않고 건성으로 대답하자 보쿠토는 검지 끝으로 자신의 뺨을 긁었다.
“좀 있다 찾음 안 될까?”
“무슨 말씀이세요?”
“어차피 방 안이니까 어디 가지도 못 할 건데.”
“그래도 일단 찾아야죠.”
“그치만 아카아시 그러고 있으니까….”
그제야 아카아시는 이 어린애 같은 남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깨달았다.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손으로 바닥을 짚고 고개를 돌려 보쿠토를 돌아보는 눈이 몹시 차가웠다.
“제가 이러고 있으니까요?”
“아니, 그게….”
보쿠토는 우물쭈물 하더니 아카아시를 일으켜세웠다. 그리고 그대로 침대에 눕히고는 내려다보듯 아카아시의 몸을 덮었다.
“키스해도 돼?”
“하지 말라고 하면 안 하실 겁니까?”
“으으… 아카아시가 하지 말라고 하면.”
“거짓말을 잘도 하시네요.”
그리 참을성이 많지도 않으면서 말 잘 듣는 척은 잘도 한다고 생각하며 아카아시는 손을 들어 보쿠토의 턱을 살짝 간질였다. 키스하기 편하게 고개를 조금 움직이자 굉장히 기뻐하는 얼굴이 된 보쿠토가 고개를 숙였다. 맞닿은 입술이 익숙하고 따듯했다. 신이 난 듯 아카아시의 입술을 빨아들이며 보쿠토는 등 아래로 손을 넣어 끌어안았다.
“그런데 정말 그냥 둬도 괜찮을까요?”
“좀 있다 먹을 거로 꼬시면 되지 않을까?”
“그런가요.”
입술에서 떨어진 보쿠토의 입술이 목덜미로 옮겨갔을 때 아카아시가 묻자 돌아오는 건 태평한 소리였다. 그래도 아카아시는 역시 신경이 쓰였다.
“그게 가능할 거면 먼저 시도해보죠.”
“너무해.”
“뭐가요.”
아카아시는 보쿠토를 가볍게 밀어냈다. 초반에 조련을 잘 한 덕분인지 보쿠토는 고집피우지 않고 아카아시에게서 떨어졌다.
“착하네요.”
아카아시가 스치듯 뺨에 키스를 해주자 풀 죽었던 보쿠토의 얼굴에 다시 화색이 돌았다. 바닥으로 내려선 아카아시는 사료를 찾아 침대 옆 바닥에 뿌리고 먹으려고 들고 온 사과를 포크로 쪼개 몇 조각 옆에 두었다. 다른 포크로 사과를 찍어 보쿠토의 입에 물려주고 과자를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재빨리 사과를 씹어 삼킨 보쿠토가 개별 포장된 과자 포장지를 벗겼다. 책상에 기대서서 과자를 입에 무는 보쿠토를 곁눈으로 보며 아카아시는 바닥을 주시했다. 멀리서 바스락거리는 작은 소리가 들리더니 오래지않아 작은 생명체가 쪼로록 기어나 왔다.
아카아시가 손을 뻗는 것보다 먼저 보쿠토의 손이 햄스터를 잡았다. 보쿠토는 활짝 웃으며 햄스터의 이마에 코끝을 비볐다.
“이놈. 아카아시한테서 도망가고.”
그새 보쿠토의 냄새에는 익숙해졌는지 햄스커는 코를 움찔거리기만 할 뿐 도망가지 않고 보쿠토가 동그랗게 만든 손 안에서 얌전히 웅크렸다.
“역시 보쿠토씨를 잘 따르네요.”
“아카아시는 동물 안 좋아해?”
“싫어하진 않아요.”
정확히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아카아시는 꽤 손이 가는 보쿠토를 싫어하지 않는, 사실 좋아하는, 이유가 가끔 궁금하긴 했다. 인간의 말을 하고 있긴 하지만 거의 덩치 큰 동물에 가깝지 않은가 하는 것이 아카아시의 감상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진짜 동물이라고 하면 실례겠지만.
보쿠토가 박스 안에 햄스터를 내려놓고 아카아시를 돌아보았다.
“이제 괜찮지?”
“예…뭐….”
보쿠토는 신나하며 아카아시를 끌어안았다. 곧장 입술이 겹쳐졌다. 과자는 나중에 먹으라고 할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아카아히는 단 맛이 나는 입술을 빨아들였다.
동물은 정말 관심 없지만 손이 가도 이렇게 귀여운 면이 있는 거라면 괜찮을지도.
아카아시는 보쿠토의 품에서 팔을 빼내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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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썼는지 모르겠지만 썼으니 아까워서 일단 올려봅니다.
진짜 내가 뭔 소릴 하고싶었던 건지ㅠㅠㅠㅠㅠ
아카아시 말 잘듣는 보쿠토가 보고 싶었던 거 같기도 하고.... 마누라력이 높은 아카아시가 보고싶었 던 거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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