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할로윈 기념...
짧습니다.
비일상
우시지마는 거울에 비친 이질적인 모습을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끝단이 낡은 재킷과 바지는 우시지마가 입어도 품이 넉넉할 정도로 컸다. 거기다 살면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오렌지색 재킷과 적자색 바지는 도대체 어디서 구해온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자의로 이런 옷을 입을 일이 없는 우시지마가 이런 모습인 건 우시지마가 소속된 배구팀의 구단주인 기업 대표이사가 주관하는 파티에 초대받아서였다.
한 달 전, 블랙 타이 드레스 코드에 익숙한 우시지마는 펄 섞인 보라색과 진녹색 물감으로 마블링을 만든 미심쩍은 초대장에 적힌 드레스 코드를 보고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도 할로윈 코스튬 파티가 경험이 없는 건 아니니 적당히 포멀한 슈트에 할로윈에 어울릴만한 팬시한 행커치프 정도로 구색을 갖출 생각이었다. 사흘 후 감독이 선수들을 불러모아서 따로 이야기를 하기 전까진 그랬다.
예상보다 규모가 큰 파티의 주최자가 요구한 건 본격적인 코스튬. 우시지마는 그런 우스꽝스러운 차림을 하고 원래 좋아하지도 않는 파티에 참석까지 할 생각이 없어 집안 행사를 핑계 삼아 파티에 불참하려 했다. 하지만 국가대표이자 팀의 간판스타인 우시지마의 불참 선언에 감독은 난색을 표했고 굉장히 곤란하다는 표정과 목소리로 참석을 권했다. 거기까지만이었어도 우시지마는 불참했을 텐데 구단주가 우시지마 외할머니의 오랜 지인의 형제의 아들의 친구라는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사이에다 그가 이번 파티에 우시지마의 참석을 기대한다고 말했고 그 말이 외할머니에게서 어머니에게 전해져 우시지마는 별수 없이 참석하게 되었다.
파티 날짜가 가까워지자 동료 선수들을 어떤 의상을 입을 것인지 의견을 교환했다. 우시지마는 뭘 입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솔직히 말하자 팀원 중 한 명이 자신에게 적당한 게 있으니 어떠냐고 하기에 우시지마는 그게 무엇인지 묻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오늘이 되었고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본 우시지마는 절로 흘러나오는 한숨을 눌러 참을 수밖에 없었다. “우시지마 씨는 역시 몸이 좋으니까 프랑켄슈타인이죠!” 라고 말한 팀원은 이 이상한 색의 옷을 가져와 우시지마에게 입혔다. 머리를 관통한 것처럼 보이게끔 볼트를 붙인 핀을 우시지마의 머리 양옆에 붙이고 회색과 녹색이 얼기설기 발린 인조 손톱도 붙여주었다. 화장만큼은 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없어 거절하자 얼굴에 녹색 칠을 하는 대신 이마에서 뺨 아래까지 긴 상처만 그렸다. 다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여 이걸 도대체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중얼거린 우시지마는 며칠 전 오이카와가 자신의 손에 쥐여 주며 꼭 들고 오라고 한 모형식칼을 손에 들고 팀원들과 함께 자동차에 올랐다.
“우시지마 씨. 그 칼은 뭐예요?”
“오이카와가 들고 오라더군.”
“오이카와 씨가요?”
“음….”
“원래는 이와 쨩이 들어줘야 하지만 오늘 파티엔 이와 쨩이 없으니깐 특별이야.” 라고 말한 오이카와를 떠올리며 우시지마는 모형 칼을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용도를 알 순 없지만 특별이라고 말하며 뺨에 키스하던 오이카와의 부탁이니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같은 국가대표긴 하지만 팀이 다른 오이카와도 오늘 파티에 초대받았는데 오이카와는 자신이 어떤 분장을 할 건지 우시지마에게 알려주진 않았다. 이런 파티는 소란스러울 가능성이 커 썩 내키지 않아도 오이카와의 모습을 상상하면 그 나름대로 기대가 되기도 했다.
파티장소는 구단주의 별장이었다. 우시지마와 일행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넓은 정원과 실내에 여러 기괴한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가득 차있었다. 우시지마는 차에서 내려 인사를 건네오는 사람들을 지나쳐 구단주를 찾았다. 그는 우시지마를 발견하자 얼굴에 화색을 띠고 다가왔다. 그리고 참석해줘서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이런 모습을 보니 색다르다는 둥, 이번 경기도 정말 좋았다는 둥의 말을 늘어놓았다. 그와 우시지마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본 사람들이 근처로 다가왔고 그는 우시지마에게 이사람 저사람을 소개시켜주었다.
한동안 사람들에게 시달리던 우시지마는 멀리 보이는 익숙한 인영에 고개를 돌렸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웃는 얼굴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는 역시 오이카와였다. 그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우시지마는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오이카와에게 다가갔다.
광고 촬영할 때 화장한 모습을 몇 번 본 적이 있어 익숙하다면 익숙하지만 원래 하얀 얼굴이 창백하게 보일 만큼 하얗게 얼굴을 칠하고 거기다 입술을 새빨갛게 칠한 오이카와는 무언가 이질적이었다. 눈 밑엔 뭘 칠했는지 어둡게 패인 듯했고 눈꼬리를 길에 뺀 것처럼 검고 두껍게 라인을 그려 원래도 큰 눈이 더 크게 보였다. 갈색 머리카락은 평소보다 더 공들여 세팅한 듯한데 머리에 이상한 게 꽂혀 있었다. 할로윈 코스튬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머리에 박힌듯한 칼을 보자 순간 흠칫한 우시지마는 곧 그 칼이 어딘가 익숙하다는 걸 깨달았고 그 익숙한 걸 자신의 손에 들고 있다는 사실도 눈치챘다. 이래서 이걸 들고 오랬던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자 조금 기분이 좋아졌지만 역시 이런 차림은 좋아질 수가 없었다.
우시지마는 오이카와에게 다가갔다. 오이카와보다 먼저 그의 앞에 선 여자들이 우시지마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들의 반응에 고개를 돌린 오이카와는 우시지마를 보자마자 웃음을 터트렸다.
“크랑켄슈타인이야?”
“음….”
“우와. 이런 색 옷은 어디서 구했대? 굉장한데?”
우시지마도 이상하다고 생각한 옷을 본 오이카와는 거리낌 없이 우시지마의 재킷을 붙잡고 웃었다.
“우시와카 쨩 센스가 이런 거라니…. 놀랐지 뭐야.”
“내가 고른 게 아니다.”
“그래도 입었잖아.”
우시지마가 난감한 표정을 해도 오이카와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넌 드라큘라인가?”
“응. 어때? 멋지지? 오이카와 씨의 할로윈 복장은 늘 드라큘라야. 올해는 베스트를 우리 팀 유니폼에 맞춰서 민트색으로 해봤어.”
겉이 검고 안이 붉은색인 망토는 전형적이지만 밝은 민트색 조끼 때문인지 색다르게 보였다. 오이카와는 양손에 긴 망토 자락을 쥐고 위로 들어 올리더니 금방이라도 우시지마에게 손톱과 이빨을 박아넣을 것 같은 자세를 취했다. 옆에 선 이들이 그런 오이카와를 보며 같이 사진 찍으면 안 되냐고 물었고 오이카와는 활짝 웃으며 왜 안되겠냐고 답한 후 함께 여러장의 사진을 찍었다. 그중 몇 장은 우시지마도 함께 찍게 되었다. 한동안 사진찍기 놀이를 즐긴 오이카와는 우시지마와 할 이야기가 있다고 양해를 구한 후 우시지마의 옷깃을 붙잡고 어딘가로 걸어갔다.
오이카와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는 건 우시지마도 원하던 일이라 우시지마는 묵묵히 오이카와를 따라 걸었다. 정원을 지나 약간 떨어진 곳 별채 쪽에 도착하자 그제야 오이카와는 우시지마의 옷자락을 놓아주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우시지마가 오이카와의 손을 붙잡았다.
“놔.”
놓으라고 말하면서도 오이카와는 우시지마의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손을 가볍게 잡아당기자 순순히 끌려왔고 우시지마는 그런 오이카와의 이마에 입 맞췄다. 익숙하지 않은 화장품 냄새가 났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게 그건가?”
우시지마는 제 손에 든 것을 들어 올리고 오이카와의 머리를 보며 말했다. 오이카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와이즈미가 이걸로 널 죽인 건가?”
“안 죽여. 안 죽여.”
오이카와는 뭐가 그렇게 기분이 좋은지 크게 웃었다. 그리고 팔을 들어 우시지마의 목을 끌어안았다.
“오이카와 씨. 복수를 할까 하는데.”
“복수? 무슨 소리지?”
오이카와의 장난기 가득한 눈동자를 보며 우시지마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오이카와의 옷차림과 빨간 입술 탓인지 금방이라도 오이카와가 입을 벌려 자신의 목을 깨물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우시지마의 예상이 맞았는지 오이카와는 우시지마가 입은 재킷과 그 안에 입은 티셔츠를 한꺼번에 붙잡아 내리더니 목덜미를 꽉 깨물었다.
“윽, 오이카와!”
순수한 아픔에 우시지마는 미간을 찌푸렸다. 다행히 깨물리는 아픔은 한순간이었고 그 뒤로는 입술로 피부를 빨아들이는 익숙한 감각이 느껴졌다. 이런 장소에서 할만한 행동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우시지마는 오이카와가 뭘 하는지 확실히 알게 된 만큼 나름대로 안심하며 어깨에서 힘을 뺐다. 오이카와는 자신이 만족할 만큼 목덜미를 핥고 빨아들인 뒤에야 입술을 떼어냈다. 오이카와는 혀를 내밀어 입가로 붉은 자국이 번진 입술을 핥았다. 우시지마는 못마땅한 얼굴을 하고 그런 오이카와를 바라보았다.
“왜? 아파?”
오이카와는 우시지마의 표정이 영 좋지 않은 것을 보고 물었다.
“입술, 지우면 안 되나?”
“왜?”
“좀, 그렇군.”
“뭐가 그래?”
“키스하고 싶다.”
“뭐야. 그럼 하면 되지.”
오이카와는 웃으며 다가가 우시지마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겹쳤다. 잠깐 머뭇거리는 듯했던 우시지마는 이내 손을 뻗어 오이카와의 허리를 끌어안고 깊이 입 맞췄다. 한참 동안, 오이카와의 입술에 묻은 붉은색을 모조리 핥아낼 때까지 우시지마는 오이카와를 놓아주지 않았다.
“으으응…. 그만….”
그리고 겨우 두 사람의 입술이 떨어졌을 때 오이카와는 손등으로 입가를 문지르며 가볍게 숨을 헐떡였다.
“오늘은 내가 우시와카 쨩 정기를 빨아먹는 역이라구.”
“그게 무슨 상관이지?”
“드라큘라니까 말이야. 우시와카 쨩 목에 잔뜩 구멍을 낼 예정이라구.”
“…집에 가서 하면 안 되나?”
“싫은데?”
“오이카와.”
우시지마가 난감한 목소리로 오이카와를 불렀지만 오이카와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우시지마의 목을 깨물었다. 이번에는 옷으로 가려지지 않을 부분이었다. 한참을 빨아들인 오이카와는 이번엔 반대편 목에도 같은 자국을 남겼다.
“오이카와.”
아무리 그래도 키스마크를 달고 당당하게 다닐 순 없는 노릇이라 우시지마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오이카와는 양손 검지를 세워 자신이 금방 만든 붉은 자국을 꾹 눌렀다.
“볼트 자국이라고 해.”
“음?”
“원래 목이라구. 프랑켄슈타인 말야. 센스 없게 머리가 뭐야 머리가. 목에 있던 거 뽑아서 머리에 꽂았다고 해.”
그렇게 말하며 오이카와는 목을 두어 번 꾹꾹 누른 후 손가락을 머리카락에 달린 볼트모양 핀으로 가져갔다.
“알았지?”
“그래….”
별 방도가 없으니 우시지마는 포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이카와는 말을 잘 듣다니 착하다고 말하고 싶은 듯 우시지마의 입술에 짧게 입 맞춰주었다. 우시지마는 그런 오이카와의 허리를 다시 한 번 낚아챘다.
“뭐야.”
“너도 누군가에게 물려서 드라큘라가 된 것 아닌가?”
“뭐?”
“그럼 목에 자국이 있겠지.”
“뭐? 하지 마. 와카 쨩! 아파! 물지 말라구!”
우시지마는 오이카와의 볼멘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하얀 목덜미에 이를 박았다. 익숙하지 않은 화장품 냄새가 났던 오이카와의 이마와 입술과 달리 자극을 주면 금방 자국이 남는 오이카와의 곧고 하얀 목덜미에선 우시지마에게 익숙한 향기가 났다.
“이런 거라면 괜찮을지도 모르겠군.”
“뭐? 아파, 하지 마. 아파! 우시와카 쨩!!”
결국 오이카와는 우시지마의 짧은 머리카락을 한 움큼 움켜쥐어 잡아당겼다. 하지만 우시지마는 놓아주지 않았고 두 사람이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한 호박파이를 찾아 사람들이 모인 파티장소로 돌아간 것은 한참 뒤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두 사람 모두 “목에 난 상처는 뭘 말하는 건가요?”라는 질문을 수없이 들어야 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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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에 의의를....
러브앤워 3회 할로윈 이벤트 용으로 써보았습니다.
배포전 기대하고 응원하고 있습니다.
우시오이 연애해.... 결혼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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