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어이없고.....
the Wedding Veil
“오이카와 씨. 신부님 베일 걷어서 맹세의 키스하는 게 로망이었는데!”
결혼식을 위해 새로 맞춘 예복을 마지막으로 점검하며 오이카와가 외쳤다. 마츠카와는 아무래도 좀 어색한 옷을 얼른 벗으며 어쩌라는 거냐는 눈으로 오이카와를 보았다.
“너 쓰면 내가 베일 걷어서 키스 해줄게.”
“싫거든. 오이카와 씨는 잘생긴 신랑님이라구!”
“그럼 안 되겠네. 로망은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로망 아니야?”
“왜! 로망도 이루어 질 수 있거든요?”
“흐음…. 그럼 오이카와 씨 맛층이랑 파혼하고 예쁜 신부님이랑 결혼할 거야?”
“내가 언제 그런 소리 했어!”
“로망이 이루어지려면 그래야 하잖아.”
마츠카와는 새 옷이 구겨지지 않게 옷걸이에 잘 걸어 놓은 후 오이카와를 돌아보았다. 오이카와는 약간 뺨을 부풀린 채 타이를 풀고 있었다.
“맛층이 베일 쓰면 안 돼?”
“뭐?”
마츠카와가 놀라 되묻자 오이카와가 눈을 빛내며 다가왔다. 마츠카와는 익숙하면서도 익숙해지고 싶지 않은 오이카와의 반응을 모르는 척하며 흠칫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써주라. 맛층.”
“미쳤어?”
“왜.”
“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남자가 무슨 베일을 써.”
“오이카와 씨가 바라는데에~. 맛층 안 해줄 거야?”
“니가 원해서 예복도 흰걸로 맞췄잖아. 이와이즈미나 하나마키가 놀릴 게 뻔히 보여도 흰 거 입는 건데 더 이상은 요구하지 마라.”
“마츠응~~!”
“안 돼!”
오이카와가 어울리지도 않게 팔에 매달려 콧소리를 내며 졸랐지만 마츠카와는 고개를 휘휘 저어 거절했다. 흰색은 고등학교 교복과 유니폼만으로도 충분했다. 매일매일 교복을 입을 때마다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고 졸업하면 더는 흰색 재킷은 입을 일이 없을 거라고 여겨 안도했다. 그런데 오이카와는 결혼식 날 꼭 둘이 함께 흰색 예복을 입자고 했고 마츠카와는 처음 몇 번은 거절하다가 결국 흰색으로 맞추는 것에 동의했다.
왜 하필 흰색이냐고 투덜거리자 “오이카와 씨한테는 흰색이 잘 어울리거든!” 이란 답이 돌아왔다. 그래도 약간은 “너의 색으로 물들고 싶어.” 라거나 “이제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로 순결함을 상징하는 거지.” 같은 드라마 같은 대답을 기대했던 마츠카와는 굉장히 현실적인 이유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자면 자신에겐 흰색이 어울리지 않으니 검은색으로 하겠다고 하자 오이카와는 결혼식이니 같은 색으로 해야 한다고 우겼다.
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반드시 검은색을 입어야 할 이유는 없고 오이카와가 그렇게 원한다니 마츠카와는 어색함을 숨기고 흰색을 입기로 했다. 옷을 맞출 때부터 시작해 가봉할 때도 재봉사가 약간 심각한 표정으로 마츠카와를 바라보았지만 오이카와를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마츠카와는 완성된 흰색 예복을 받아왔는데 베일이라니. 언감생심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마츠으으응~~~.”
오이카와는 다시 한 번 어미를 길게 늘이며 마츠카와를 불렀다. 마츠카와는 한숨을 내쉬고 그런 오이카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안 된다고요. 오이카와 씨.”
“너무해.”
“대신 뽀뽀해줄게.”
“그게 뭐가 대신이야? 키스는 오이카와 씨도 할 수 있거든.”
오이카와는 보란 듯이 뺨을 빵빵하게 부풀리더니 이내 쪽 소리가 나도록 마츠카와의 입술에 제 입술을 붙였다 떼어냈다. 그리고 오이카와는 마츠카와를 마주 보고 웃었다. 그 미소가 꽤 예쁘다고 생각하며 이번엔 마츠카와가 먼저 오이카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 댔다.
오후의 밝은 빛이 오이카와의 등 뒤로 하얗게 쏟아져 내렸다. 마츠카와는 베일이라면 오이카와에게 훨씬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하며 하얀 예복을 입은 오이카와의 머리 위에 내려앉은 긴 베일을 상상해보았다. 그 하얗고 투명한 천을 넘기듯 오이카와의 옆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잠시 떨어진 입술을 다시 겹쳤다. 죽음이 서로를 갈라놓을 때까지 영원히 함께할 거란 맹세를 떠올리며 마츠카와는 오이카와에게 입 맞췄다.
정신없는 며칠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고 결혼식 당일이 되었다. 옷을 입고 짐을 챙겨 부랴부랴 밖으로 나가자 차에 기대 있던 하나마키가 늦었다고 말하며 차 문을 열어주었다.
흰색과 민트색, 분홍색 리본과 꽃으로 장식한 하얀 웨딩카에 몸을 실을 두 사람은 결혼식장으로 잡은 정원이 예쁜 작은 레스토랑으로 출발했다. 자동차가 장소에 도착하자 미리 와있던 이들이 환호일지 야유일지 모를 소리를 내며 두 사람을 반겼다. 직계가족과 가까운 이들만 초대한 조촐한 결혼식임에도 두 사람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사람들에게 인사를 받는 사이 결혼식 시간이 다가왔다. 두 사람은 나란히 홀 밖에 서 낮은 단상 위에 주례를 보기 위해 선 세이죠 배구부 감독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이 결혼한다는 소식에 두통이 이는 머리를 짚으며 고개를 절래절래 저은 감독이지만 그래도 두 사람의 앞날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흔쾌히 주례를 수락했다.
사회자 석에 선 하나마키가 밝은 목소리로 이제 결혼식을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오이카와는 난생 처음이자 마지막인 이 일에 약간 긴장해 마른침을 삼키며 마츠카와의 손을 쥔 자신의 손에 꽉 힘을 주었다.
“으음….”
뭔가 고민하는 듯한 소리에 오이카와는 마츠카와를 돌아보았다. 마츠카와가 그런 오이카와를 보며 굉장히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맞잡은 손을 놓았다.
“맛층?”
“잠시만.”
“에? 맛층!”
오이카와가 불러도 마츠카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기실로 쓰는 방으로 걸어갔다. 그 모습을 보던 하나마키가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잇세이 신랑님 도망가신 건가요. 그러니까 토오루 신랑님 너무 괴롭히지 마셔야죠.”
“오이카와 씨가 뭘 했다고 그래!”
“우리 토오루 신랑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면. 고등학교 시절 귀신같은 부장님으로 소문나신 분으로…. 어머니 이와이즈미 분께 매일매일 무리하지 말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부원들을 괴롭히시고….”
“맛키!”
오이카와가 발끈해서 소리쳐도 마츠카와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어머니 소리를 들은 이와이즈미는 표정을 왕창 구겼지만 다들 웃으며 박수까지 치면서 하나마키의 이야기에 동조했다.
“맛층은 뭐 하는 거람.”
오이카와는 마츠카와의 영문 모를 행동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는데 그때 마츠카와가 손에 무언가를 들고 나타났다.
“뭐 하는 거야.”
“우리 토오루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해주려고.”
“응?”
이해 못 하겠다는 얼굴을 하는 오이카와를 보며 피식 웃은 마츠카와는 손에 든 것을 활짝 펼쳤다. 얇은 망사 끝에 흰 공단을 덧댄 긴 베일을 들어 올린 마츠카와는 그대로 그것을 제 머리에 뒤집어썼다.
사람들의 환호와 야유와 박수 소리가 크게 울렸지만 오이카와에게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얇은 천 아래에서 씩 웃는 마츠카와의 “그럼 갈까?” 라는 목소리만이 귓전을 울릴 뿐이었다.
“토오루. 너무 감격해도 울면 안 돼.”
“누가 울어 누가.”
눈가가 살짝 달아올랐지만 오이카와는 그런 적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자아.”
마츠카와가 손을 내밀었다. 오이카와는 활짝 웃으며 그 손을 잡았다. 음악이 울리고 두 사람은 그들의 미래를 함께하겠다고 맹세하는 의식의 첫발을 내디뎠다.
작은 공간이라 두 사람은 금방 주례를 맡은 이리하타 앞에 설 수 있었다. 그는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으나 웃는 얼굴로 두 사람을 맞이했다. 혼인서약서를 낭독하고 주례를 경청하고 반지를 교환했다.
“자아. 그럼 마지막으로 맹세의 키스를 하겠습니다.”
하나마키가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말하자 다들 웃으면서 박수를 쳤다. 오이카와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숨기지 않고 마츠카와를 바라보았다. 조심스레 하얀 베일을 붙잡자 마츠카와는 오이카와가 움직이기 쉽게 살짝 무릎을 굽혀주었다. 그 모습에 여기저기서 또 휘파람 소리와 함성이 날아들었지만 서로를 마주 보는 두 사람은 그런 것들이야 아무래도 좋았다. 오이카와는 베일을 접어 넘기면 바닥으로 떨어질 것 같아 베일을 붙잡고 그 안으로 제 얼굴을 밀어 넣었다. 약지에 반지를 낀 마츠카와의 손이 자연스럽게 오이카와의 허리를 휘감았다. 오이카와가 고개를 기울여 마츠카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가자 마츠카와의 입술도 함께 다가왔다. 마츠카와는 양손으로 오이카와 허리를 끌어안았고 오이카와는 베일에서 손을 떼 마츠카와의 목을 둘러 끌어안았다. 하얀 베일이 두 사람을 함께 뒤덮었다.
“키스는 그만 하시고요.”
하나마키가 핀잔을 주는 목소리에 아쉬운 듯 두 사람의 입술이 떨어졌다. 오이카와가 베일 밖으로 빠져나오려고 하는데 마츠카와의 손이 더 빨랐다. 마츠카와는 자신이 먼저 베일 밖으로 빠져나갔고 결국 그 안에 남은 오이카와가 베일을 쓴 모양이 되었다. 오이카와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는 사이 마츠카와는 하나마키에게 눈짓을 했다. 찰떡같이 알아들은 하나마키는 오이카와가 정신 차릴 틈을 주지 않고 입을 열었다.
“이제 부부가 된 두 사람의 첫 발걸음을 시작하는 의미로 행진을 하겠습니다. 자 모두 박수로 축하해주세요.”
오늘 중 가장 큰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맛층!!!”
그리고 오이카와의 가장 큰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나 이거 로망이라구.”
마츠카와는 그렇게 말하며 번쩍 오이카와를 안아 들고 두 사람이 손을 잡고 들어온 길에 발을 내디뎠다.
박수와 함성 속에서 오이카와는 베일을 뒤집어쓴 채 마츠카와의 목에 매달렸다.
“맛층 팔 떨리는데?”
“토오루 생각보다 무거워….”
“떨어뜨리면 이혼이야.”
“무서워라….”
다른 사람들에겐 들리지 않게 속삭이며 마츠카와는 다시 한 발을 내밀었다. 빛이 환히 비쳐 들어오는 문으로 두 사람의 앞날의 밝은 미래가 비쳐드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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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태님과 맛층 검은 슈트 가죽장갑 이야기 하다가 흰장갑.. 웨딩.. 면사포 쓴 맛층 이야기가 나왔는데 선태님께서 그림으로 그려주셔서 저도 짧게 써보았습니다. (마감지옥... 도피....)
베일 쓴 맛층.... 분명 오이카와고 하고 싶다고 찡찡거리면 해줄 거 같아서요. ㅋㅋㅋㅋㅋㅋㅋ
얘들아 행복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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