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RET EYES
발간일 : 2017년 2월 18일 토요일 쿠로츠키 배포전 '111MB'
커플링 : 쿠로오X츠키시마 (R-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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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5 카피본 28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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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ECRET EYES
예의 바르게 행동해야 한다.
그 말을 들은 쿠로오는 언제나 그러했듯 그의 조모를 향해 미소지었다. 부드럽게 눈을 휘며 다정한 목소리로 걱정하지 마시라고 답했다. 조모는 고개를 끄덕이며 제 손자에게 손을 내밀었고 쿠로오는 몇 번, 아니 몇십 번은 입어 끝이 바랜 검정 드레스를 입은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걸 도왔다. 그녀는 손자의 손을 잡은 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응접실에 우뚝 선 커다란 괘종시계가 7시가 시작되는 종을 울리기 시작했다. 보름 전에 받은 초대장에 적힌 시간과 동일했으나 쿠로오는 그에 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와 함께 천천히 현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반짝이는 검은색 세단과 운전석에서 나와 차 옆에 선 초로의 남자가 보였다. 그는 쿠로오와 그의 조모를 보자마자 정중히 고개를 숙였고 곧장 차를 반 바퀴 돌아와 뒷좌석의 문을 열었다. 쿠로오는 제 손을 잡은 조모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천천히 현관 앞 계단을 밝고 아래로 내려갔다. 쿠로오는 그녀가 차에 타는 것을 도운 후 반대편으로 가 자신 역시 차에 올랐다. 그 사이 운전석에 앉은 남자는 쿠로오가 차에 오르고 문이 제대로 닫힌 것을 확인한 후 천천히 차를 출발시켰다.
“나카무라 씨. 부인은 건강한가요?”
“마님께서 걱정해주신 덕분에 많이 나아졌습니다.”
“다행이군요. 언제 한 번 인사하러 오라고 하세요.”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남자는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했고 조모는 그의 대답에 만족했는지 그제야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정성스레 틀어 올려 조모의 조모에게서 받았다는 상아로 만든 비녀로 고정한 머리카락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목은 곧게 세운 채였다. 쿠로오는 그런 그녀 옆에 앉아 그녀의 목에 깊어진 주름을 보았다. 오늘은 쿠로오가 이 집에 온 지 꼭 10년이 되는 날이었다. 쿠로오가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도 그녀는 희게 센 머리카락을 꼼꼼히 올려 상아 비녀로 고정하고 있었다. 검은 드레스와 두꺼운 잿빛 숄, 하얀 머리카락 아래 자리한 그녀의 얼굴과 목에 진 주름이 유독 눈에 띄었더랬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그녀의 주름은 쿠로오가 자란 세월만큼 깊이를 더해 짙은 그림자를 만들었다.
쿠로오는 조끼 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 뚜껑을 열고 자연스레 조모에게 향했던 시선을 거두어 시계 침을 바라보았다. 조모는 작년 늦가을 쿠로오가 18세가 되던 생일에 이 시계를 그에게 선물해주었다. 조모가 조부와 결혼할 때 예물로 가져온 것이라고 했다. 시계를 덮은 금으로 만든 뚜껑에는 만수국이 새겨져 있었다. 조모가 결혼할 때 조모의 부탁으로 증조부가 시계 장인에게 특별히 의뢰한 물건이라고 했다.
조모는 쿠로오에게 그 시계를 주며 만수국의 꽃말을 알려주었다.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 그 말을 하며 언제나 완고하게 굳은 표정의 조모가 드물게 복잡한 감정을 드러냈다. 체념과 회한, 그러함에도 놓지 않는 희망.
=========중략===========
“초조하게 굴지 말렴.”
쿠로오 쪽을 돌아보지도 않고 말하는 조모의 목소리에 쿠로오의 생각이 현실로 돌아왔다. 쿠로오는 자연스럽게 회중시계 뚜껑을 닫으며 조모를 돌아보고 미소 지었다.
“좀 더 천천히 나왔어도 괜찮을 것 같아서요.”
“초대 시간에 너무 늦는 건 예의 없는 행동이란다.”
엄한 목소리로 말하지만 쿠로오는 그녀의 입가에 번진 만족스러운 미소를 읽었다. 곁눈으로 본 룸미러에 운전기사인 나카무라의 무표정한 눈동자가 비쳤다. 쿠로오는 그와 눈이 마주치고도 못 본 척 시선을 돌렸다. 손에 쥔 탓에 미지근한 회중시계가 어쩐지 불쾌했다. 손톱에 걸리는 만수국을 문지르며 쿠로오는 이미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았다.
조모는 쿠로오에게 시계를 건네며 유복자로 태어난 쿠로오의 부친이 결혼할 때 그 시계를 물려주려 했다고 말했다. “네가 결혼할 때 내가 살아있을지 모르겠으니 미리 주마.” 라고 말하던 조모의 얼굴은 여느 때처럼 그저 차가웠다. 쿠로오의 결혼식 따윈 보고 싶어 하지도 않는 듯이 보이기도 했다.
하녀와 정분이 난, 집안의 수치인 아들을 용납할 수 없었던 그녀는 남들에게 쿠로오를 아들이 도시로 가 그곳에서 참한 아가씨와 결혼을 했는데 선교활동을 가기 위해 손자를 제게 맡겼다고 말했다. 쿠로오의 부친이 집에서 일하던 하녀와 함께 집을 나간 사실은 어린 쿠로오도 금방 알 수 있을 정도로 사람들이 모두 아는 사실이었음에도 조모는 끝끝내 그렇게 말했다. 쿠로오는 조모에게 조모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고 대들지도 않았고 웃는 얼굴로 노골적으로 혀를 차며 쿠로오를 보는 이들을 향해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아이마냥 웃었다. 조모는 그런 쿠로오를 흡족하게 여겼고 다른 이들은 조금은 연민에 찬 눈으로 그를 보았다.
조모는 제 손자를 아들보다 더 제대로 된 신사로 키우고 싶어 했다. 덕분에 조모와 친분이 있는 노신사나 가정교사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젊은 여성들이 쿠로오의 선생 노릇을 했다. 쿠로오는 얌전히 조모가 요구하는 대로 행동했다. 그를 가르친 이들은 한결같이 영리하고 착한 아이라고 칭찬했고 조모는 아직 멀었다고 냉정하게 답하면서도 그런 날 오후 간식으로 갓 구운 과자를 내어주곤 했다. 과자보다 벽난로에 태울 석탄을 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쿠로오는 조모에게 과자를 준 것에 대한 인사를 잊지 않았다.
쿠로오는 거울을 보며 웃는 연습을 했다. 자연스럽고 친근하게 보이도록, 상대에게 적의가 없음을 보일 수 있도록 거울을 볼 때마다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언제나 차가운 얼굴로 상대를 대하는 조모와 달리 쿠로오는 자신이 마주하는 모든 이들을 향해 웃었다. 미소는 호감을 샀고 대게의 경우 일을 수월하게 만들었다. 나카무라에게 오늘 저녁 차를 대절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고마워요.”
쿠로오는 뒷좌석 차 문을 열고 선 나카무라를 향해 웃으며 작은 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는 쿠로오의 말에 무뚝뚝한 얼굴로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쿠로오의 손을 잡고 차에서 내린 조모는 나카무라 쪽으로는 시선도 주지 않고 허리를 세우고 턱을 당겨 자세를 바로 한 후 걸음을 내디뎠다.
문을 두드리자 고용인이 문을 열어주었다. 곧장 넓은 홀을 가득 채운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안주인이 쿠로오와 그의 조모를 보고 웃으며 다가왔다.
“어서 와요.”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츠키시마 부인.”
“당연한 것을요. 테츠로 군은 전보다 더 키가 큰 것 같네요.”
“새 구두를 신었거든요.”
풍성한 금발이 인상적인 부인은 웃으며 말하는 쿠로오를 향해 마주 웃었다. 그리고 조금 곤란한 듯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새 구두가 불편했나 봐요. 시간이… 조금….”
“저희 집 하녀가 시계 감개를 제시간에 돌리지 않았나 봅니다. 많이 늦진 않았으니 넓은 아량으로 용서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어머, 용서하고 말고 할 일인가요. 그저 백작 부처도 오셨는데 쿠로오 부인이 늦으셔서.”
“백작 부인께서 언짢아하시던가요?”
“백작 부인께선 사소한 일에 신경 쓰시지 않는답니다.”
금발의 부인이 눈을 초승달처럼 휘며 웃었다. 쿠로오도 그녀와 마찬가지로 눈을 접어 웃었다. 그냥 가진 것도 없으면서 늦게 오냐고 타박하면 좋을 것을, 쿠로오는 제 감정이 드러나지 않도록 입술 끝을 더욱 위로 끌어당겼다.
“그럼, 편히 즐겨주세요. 테츠로 군. 쿠로오 부인. 비녀가 정말 우아하게 잘 어울리세요.”
“안목이 있으시군요. 부인. 이건….”
“부인의 소중한 보물이죠. 얼마나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물건이면 늘 그 비녀만을 하고 오시겠어요. 부인의 머리카락과 무척 잘 어울린답니다.”
쿠로오는 웃는 듯 호를 그린 입술을 가볍게 손가락으로 가리는 그녀를 보는 조모의 눈빛을 살폈다. 머리카락 색보다 조금 짙을 뿐인 회색 눈동자를 들어 똑바로 상대를 바라보며 조모는 더욱 꼿꼿하게 허리를 세웠다.
“고마워요.”
짧은 인사에 금발의 부인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지금 막 도착한 손님에게 시선을 준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양해를 구하고 두 사람 앞에서 멀어졌다. 조모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다시 걸음을 옮겼다.
쿠로오가 18세가 된 이후 그는 이렇게 파티에 조모를 수행했다. 자주 있는 일도 아니고 조모가 환영받는 손님은 아니나 초대장이 날아올 때면 그녀는 항상 검은 드레스를 입고 상아 비녀로 머리를 고정하고 파티에 참석했다. 쿠로오는 그녀가 검은색이 아닌 다른 색의 옷을 입는 걸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녀는 그녀의 남편, 쿠로오 조부의 사망 이후 매일 검은 옷을 입었다. 쿠로오는 그런 조모가 그녀의 오랜 지인인, 이 파티의 주최자인 츠키시마 남작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자 그곳에서 조용히 물러나 테라스를 통해 정원으로 나왔다.
가느다랗게 빛을 띠는 달이 멀리 보이는 언덕을 넘어갈 듯 자리했다. 까만 하늘에 상처처럼 팬 노란 달에 쿠로오의 시선이 잠시 머물렀다.
달은 언제나 처연하고 연약하거나 악행의 요인으로 이용되었다. 마녀의 의식에 힘을 더하고 인간이 아닌 축복 받지 못한 생명을 깨운다고 말해졌다. 달빛에 홀리면 목숨을 잃거나 영영 되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게 된다는 이야기는 한낱 헛소문 같으면서도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쿠로오 역시 그 이야기들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달을 바라볼 때면 그 많은 이야기를 하나씩 간간이 떠올리곤 했다. 태양과 달리 수많은 별과 함께 하늘에 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창백하게 노오란 달은 언제나 외로워 보여서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그 허무맹랑한 소리를 믿고 싶어서인지도 몰랐다. 달빛에 홀려 이곳을 떠나고 싶다는 허망한 바람이 마음 저 깊은 어딘가에, 숨겨도 숨겨지지 않는 모습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쿠로오는 요즘 유행인 듯한 낮은 관목을 동그랗게 깎아 모양을 낸 정원 사이를 천천히 걸었다. 그는 일부러 구불구불하게 산책로처럼 만들 길을 밟으며 고작 남작이 소유하기엔 꽤 규모가 크다고 생각하다 곧 피식 웃었다. 이제 그를 그저 돈만 많은 시골뜨기 하급귀족이라고 경시하는 사람은 없었다. 츠키시마 남작은 사업에 성공한 귀족이었다. 세금을 얻을만한 영지를 갖지 못한 그는 척박한 농토 대신 신대륙과의 무역에 투자했다. 그 관련으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크게 성공한 그는 제 아들을 후작의 외동딸과 결혼시키는 데 성공했다. 후작에게 다른 자식이 없었으므로 큰 이변이 없는 한 그의 장손인 츠키시마 아키테루가 외조부의 작위를 모두 물려받을 예정이었다.
쿠로오는 츠키시마 남작을 대단한 수완가라고 생각하지만 세상에는 시기와 질투 때문에 그 모든 것을 비현실적인 힘에 의한 것이라고 치부하려는 이들이 있었다. 츠키시마(月島). 가문의 이름에 달이 들어가는 것만으로 그들은 츠키시마 남작이 비밀스러운 방법으로 부와 명예를 손에 넣었다고 생각했다. 달의 힘을 가진 마녀가 그를 도왔다는 소문은 사실의 근거 여부와 상관없이 널리 퍼져 나갔다.
쿠로오는 마녀의 도움을 받았든 그 자신의 힘으로 성공했든 최근에 어느 누구보다 크게 재산을 불린 가문의 널따란 정원을 걸었다. 관목으로 울타리를 친 듯 자연스레 만들어진 길을 따라 걷고 있을 때 멀찍이 보이는 교목 사이로 아주 작은 빛이 보였다. 곧장 뒤따르는 호기심에 그는 망설이지 않고 그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겹겹이 세워놓은 교목으로 인해 저택에선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작은 별채와 그 별채보다 작은 유리 온실이 있었다. 정원이 넓은 저택 한구석에 숨기듯 자리한 별채는 특별할 것이 없고 그만큼 저택 주인에게 비밀스러운 곳이니 다가가지 않는 것이 예의라는 걸 알면서도 쿠로오는 그곳으로 향하는 제 발걸음을 멈추지 못했다.
작은 빛은 별채의 창과 온실에서 새어 나왔다. 쿠로오는 발소리를 죽이며 그곳으로 다가갔다. 화려한 저택 본관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에 존재할 무언가 비밀스러운 존재에 대한 기대감에 어느새 숨 쉬는 것도 조심스러워졌다.
유리로 된 온실 안 작은 램프가 빛의 발원지였다. 잎이 넓은 식물과 흔히 볼 수 없는 꽃들이 그 램프 불빛을 받아 제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쿠로오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불이 켜져 있다는 건 누군가 그 안에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이 안에 스스로를 가둔 이가 누구인지 궁금했다.
몇 걸음 더 가까이 가려던 쿠로오는 순간 제 발을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을 잊었다. 숨 쉬는 것조차 잊고 그 자리에 서 제 눈에 들어온 존재를 바라보았다. 램프의 노란 빛 곁에서도 하얗게 빛나는 얼굴이 마치 어둠 속에 떠오른 달과 같았다. 하얗다 못해 창백한 피부는 관습적으로 말해지는 달의 그것과 일치했다. 연약하고 처연하며 사람을 홀리는 악의 근원. 쿠로오는 눈을 깜박이지도 않은 채 하늘의 달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존재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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