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
발간일 : 2016년 09월 03일 카게오이 온리전 '서브만 스쳐도 인연'
커플링 : 카게야마X오이카와 (R-19)
※ 책 사양
A5 카피본 28~32 페이지
※ 가격
3,000원
※ 주의사항
● 성인이신 분들에게만 판매합니다.
● 알파, 오메가 세계관을 차용합니다.
● 원작 기반으로 성인이 된 두 사람의 첫날 밤이 주된 내용입니다.
● 오이카와는 카게야마를 토비오 쨩이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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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
오이카와는 아주 자연스럽게, 피로를 말끔히 떨칠 만큼 충분히 수면을 취한 후 눈을 떴다. 여름용 커튼 안으로 베어 들어온 햇살이 눈부시지 않을 정도로 천장을 밝힌 것이 눈에 들어왔다. 개운한 몸이 가볍게 침대 위에 자리한 느낌이 기분이 좋아 그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윽…!”
하지만 그 편안한 감각을 모조리 뒤덮고도 남는 방 안에 가득 들어찬 냄새와 몸을 뒤척이자 인지하게 된 척추를 따라 흐르는 통증에 눈살을 찌푸리며 오이카와는 저도 모르게 신음과도 같은 단발성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대로 손에 잡히는 이불을 움켜쥐고 몸을 옆으로 돌리려 했다.
“으으…. 가지 마세요….”
“이거, 좀! 토비오 쨩!”
오이카와는 작은 목소리로 자신의 상체를 끌어안는 긴 팔의 소유자를 향해 소리쳤지만 그는 잠을 깰 생각 없이 무의식에 의지해 오이카와의 몸을 제 쪽으로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오이카와는 팔다리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는 자신의 몸뚱이가 원망스러워 이를 갈면서 다시 한 번 저를 옭아맨 팔을 벗어나려 버둥거리다 결국 부질없는 행동을 멈추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몸을 돌려 자신을 껴안은 남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착실하게 목 아래로 팔을 넣어 오이카와의 머리를 받쳐준 그는 오이카와가 자신 쪽으로 돌아눕자 손에 힘을 넣어 서로의 몸을 더 가까이 밀착하게 만들었다.
이럴 때마다 오이카와는 깨어 있는 게 아닐까 의심스러웠지만 그간의 경험에 의해 이 행동이 정말로 무의식중에 이루어진다는 걸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더 크게 소리도 질렀고 손닿는 곳을 때려보기도 했고 급기야 꼬집어보기도 했다. 그래도 꿈쩍도 하지 않고 벗어나려 하면 벗어나려 할수록 더 힘주어 끌어안는 행동에 결국 오이카와는 그를 벗어나는 걸 포기하고 말았다. 잠에서 완전히 깬 후 답답하게 왜 끌어안는 거냐고 물으면 그는 순둥한 검은 눈동자를 더 동그랗게 만들며 “제가요?”라고 되레 오이카와에게 되물었다. 그 갑갑한 반응에 뾰족한 목소리로 “그래, 갑갑하단 말야.” 라고 쏘아붙여도 그, 오이카와의 연인이자 오이카와의 알파이고 오이카와의 약혼자인 카게야마는 주눅 들기는커녕 오이카와를 다시 품에 끌어안고 어깨에 고개를 묻으며 이렇게 답했다.
“너무 좋아서 그래요.”
너무 좋아서. 마음을 숨기는 것만큼 카게야마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이 없었다. 그는 늘 솔직했고 오이카와는 그래서 언제나 뒷걸음질 쳤지만 카게야마는 그런 오이카와에게 성큼 다가와 다시 제 마음을 고백했다. 카게야마에겐 당연한 것이고 오이카와에겐 흘러넘치는 것이었다. 머뭇거리는 걸음으로는 오이카와가 선 장소를 적시고 발목으로 차올라 무릎으로 허리로 어깨로, 종국엔 정수리 끝까지 넘쳐흘러 그를 집어삼키는 카게야마의 마음에서 도망칠 수 없었다.
결국 카게야마는 배구를 향한 순수한 열망처럼 오이카와를 갈망하고 또 갈망한 끝에 오이카와의 마음을 얻었다. 오이카와는 그 생각을 하며 또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고개를 들어 눈을 감은 앳된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손을 뻗어 부드러운 피부로 덮인 턱을 찬찬히 쓸어보았다. 그러다 팔을 내려 카게야마의 팔 아래로 손을 내어 그의 등을 끌어안았다. 6년 전엔 상상할 수 없었던 넓은 등에 손바닥 전체를 대자 카게야마는 기다렸다는 듯 다시 오이카와를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러트, 알파의 발정기가 진정된 후 남은 페로몬의 잔향이 오이카와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의 폐부를 깊게 파고들었다. 그 냄새에 뭉근히 달아오르는 제 몸을 책망하며 오이카와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카게야마의 어깨에 이마를 댄 후 천천히 숨을 골랐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오이카와는 자신이 카게야마, 아니 알파에게 안겨 히트사이클이 잦아드는 시간을 이렇게 깊은 충족감을 동반한 편안함과 함께 보낼 수 있을 거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오이카와는 긴 시간, 혹은 평생을 본능에 끌려가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오메가라는 형질보다 남자라는 성별에 더 집착했다. 평범하게 여자 친구를 사귀고 여자와 결혼을 해서 그 여자의 배에서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고 누가 봐도 행복한 생활을 영위하고 싶었다.
확률이 낮을 뿐 남자라면 오메가라도 형질에 관계없이 여자와 성관계를 해 난자를 수정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오메가라면, 상대가 남자이기만 하다면 형질에 상관없이 정자를 받아 아이를 가질 수 있었다. 이론상으로는 알파 남자와 남자, 오메가 여자와 여자, 베타 남자와 남자, 베타 여자와 여자인, 같은 형질의 같은 성별인 커플만 아니라면 성행위를 통해 자손을 남기는 건 어떤 조합이든 이론적으로 가능했다. 법에서는 형질과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혼인을 할 수 있어 동형질의 동성인 커플도 생물학적인 유전자를 물려받은 아이를 가질 수는 없어도 부부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단지 전체 인구수의 각각 8%와 7% 가량을 차지하는 알파 오메가의 경우 동일 형질, 혹은 베타와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아 암묵적으로 알파와 오메가의 결합이 권장되었다.
남, 여. 알파, 오메가, 베타. 성별과 형질은 모태에 수정란이 착상되어 세포분열을 하며 결정되었다. 개인이 바꾸고 싶어도 바꿀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나마 남녀를 구분하는 성정체성은 성전환 수술 등의 방법을 통해 쉽지 않다 뿐이지 국가에 등록된 성별을 바꿀 수 있었다. 하지만 알파, 오메가, 베타를 나누는 형질은 바꿀 수도 없고 바꾸어 주지도 않았다. 알파와 오메가는 온 몸의 샘에서 흘러나오는 페로몬으로 상대를 갈구하고 그로 인해 신체에 변화가 찾아오는데 그것은 아무리 자신이 베타이고 싶어도 바꿀 수 없는 부분이었다.
자신의 형질을 부정하고 다른 형질을 갈구하는 건 정신적인 문제로 간주되었다. 대게 자신의 형질을 혐오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성별에 따른 2차 성징처럼 형질의 특징적인 변화, 발현이라고 부르는 시기를 겪으며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알파와 오메가는 수가 적고 성별처럼 태어날 때부터 외적인 특징을 가지는 것이 아니므로 자신의 형질을 날 때부터 안다 하더라도 발현을 겪으며 변화하는 신체에 거부감을 넘어선 혐오를 갖는 경우가 적잖았다.
자신의 형질에 대한 거부감은 특히 여성 알파와 남성 오메가에게서 많이 나타났다. 알파와 오메가의 발현은 남녀의 각기 다른 신체적 변화를 겪은 후에 나타나는 게 일반적이었고 그 시간차가 적으면 적을수록 오메가는 여성의 신체적 특징과 비슷해지고 알파는 남성의 신체적 특징과 비슷해졌다. 결국 그런 현상은 오메가를 여성성과 동일시하고 알파를 남성성과 동일시하는 일반적인 고정관념을 낳았다. 성별에 따른 2차 성징 이후 발현까지의 기간이 긴 알파와 오메가는 각각의 성별에 따른 특징을 더 뚜렷하게 가지고 있어 남성 오메가의 경우 오메가답지 못하다, 여성 알파의 경우 알파답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듣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학계에서야 그런 고정관념으로 인한 차별을 금하고 형질을 존중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비슷한 비율의 남녀 사이에도 상대에 대한 고정관념과 차별이 존재하는데 두 형질을 합해 15%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알파와 오메가에 대한 그릇된 관념은 쉽게 사라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이카와 역시 공교롭게도 발현이 늦어진 오메가였고 그는 자신의 형질을 부정하고 싶어 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발현은 일어나지 않아 그는 보통의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키가 크고 골격이 성장했다. 평균적인 남학생보다 뛰어난 신체적 조건은 그가 열망해 마지않는 배구선수로의 길로 나아가는데 도움을 주었다. 오이카와는 이대로 발현하지 않고 평범한 베타 남자와 같은 생활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감각이 예민한 그는 자신이 오메가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뛰어난 오감은 배구경기를 할 때는 무척 도움이 되었지만 평소에는 그렇지 못했다. 오메가로 발현한 것도 아닌데 알파의 페로몬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발현을 지나지 않았으므로 그 페로몬으로 인해 성적인 흥분이 일어나는 일은 없었지만 알파가 곁에 있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 본능은 알파에게서 오메가의 기관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몸을 움츠러뜨렸다.
이성적으로 그런 현상을 막아보려 해도 알파의 페로몬을 맞닥뜨리면 본능적으로 반응을 보이니 오이카와는 제 신경을 다 끊어내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했다. 타인의 페로몬을 감지하는 건 썩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기실 알파나 오메가의 페로몬이 일반적으로 향기로운 것이 아니었으므로 더 그랬다. 알파와 베타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페로몬으로 인한 성적 흥분과 법적인 제도가 아닌 본능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두 형질을 하나로 묶는 각인이라는 현상은 베타들에게는 언제나 은밀하고 신비로우며 로맨틱한 것으로 비추어져 여러 매체에서 확대 재생산되어 오메가인 오이카와의 입장에서 보자면 어처구니없을 만큼 현실성 없는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베타들은 자신들이 평생 알 수 없는 그 감각을 선망해 알파와 오메가의 사랑 이야기를 무엇보다 아름답게 표현했고 그것은 다시 알파와 오메가를 향한 그릇된 고정관념이 되어 돌아왔다.
“향기롭기는. 웃기지도 않지.”
오이카와는 다시 한 번 숨을 들이키며 중얼거렸다. 남자. 알파. 각인 상대. 오이카와에게 카게야마의 냄새는 그렇게 다가왔다. 애초에 페로몬이라는 게 그렇게 향기로운 물질이 아니었다. 오이카와는 사내들이 가득한 운동부에 있다 보니 그들의 왕성하게 분비된 페로몬이 뒤섞인 땀 냄새에 질식할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알파의 페로몬은 남자들과는 또 다르지만 근본적으로는 비슷했다. 자신이 우월하다고 강하게 자기주장을 하는 알파의 페로몬은 굳이 비유하자면 이끼가 뒤덮인 흙냄새에 얽힌 진한 사향과 비슷했다. 남자들이 사용하는 향수의 대다수에 베이스로 깔린 사향을 극대화 시킨 냄새였다. 강렬하게 다가오고 그만큼 거부감이 일지만 히트사이클에 들어선 오메가에겐 무엇보다 매혹적인 향기가 되었다. 알파와 오메가는 발현하기 전부터 서로의 페로몬을 감지할 수 있지만 러트나 히트사이클이 아닐 때는 그 페로몬에 강하게 반응하지 않으니 발현 전에는 서로의 페로몬에 약간의 불쾌함을 느끼는 게 특이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발현 전 오이카와는 저런 냄새에 성적 흥분을 느낀다니 죽기보다 싫다는 생각을 했다. 극단적으로 잔뜩 땀을 흘리고 난 뒤 씻지도 않은 수컷의 체취 같은 건 역겹다고 생각했다. 자신도 남자이니 그들과 다를 바 없는 냄새가 난다는 게 싫어 언제나 몸을 청결하게 하고 냄새가 나지 않게 신경 썼다. 비누, 로션, 립밤, 데오드란트. 보통 사내답다 말하는 것과 거리가 먼 물건들이 오이카와의 라커를 채웠다. 동료인 베타 남자들은 “남자애가 뭘 이런 걸.”이라고 말하다가 이내 “아, 오이카와 오메가였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오메가처럼 안 생겼는데 역시 오메가였네.”라는 말은 덤이었다. 오메가답다. 오메가답지 않다. 오이카와가 정말로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었지만 오메가의 냄새가 나는 건 더 싫어 오이카와는 자신의 손에 필요충분한 양보다 더 많은 로션을 손에 짜내곤 했다.
오이카와는 자신의 몸에서 나는 냄새가 인공 향을 가득 함유한 화장품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다. 오메가의 페로몬은 나비를 꾀는 꽃처럼 향기롭다거나 누구나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달콤한 향기라는 식으로 묘사되지만 실상은 달랐다. 오이카와는 여자의 음부를 달콤한 꿀이 흐른다고 묘사하는 것보다 적나라하고 불쾌하게 묘사하는 쪽을 믿었다. 오메가의 냄새라는 것도 그와 비슷했다. 그것이 비록 발정기의 알파를 유혹하는 데에 적합하다고 해도 그것은 절대 꽃처럼 향기롭고 꿀처럼 달콤하지 않았다.
“토비오 쨩 주제에….”
오이카와는 일반적인 알파들보다 체취가 옅은 편인 카게야마의 어깨에 다시 이마를 비볐다. 카게야마가 알파라는 것 때문에 더더욱 그를 경계했지만 페로몬이 약했기 때문에 그가 대단찮은 알파라고 생각해 조금은 무시하려고 했다. 어쭙잖은 알파보다 자신이 더 대단하다고, 어린 시절의 치기어린 생각으로 그렇게 스스로의 자존심을 내세웠다.
누구에게도 지기 싫었고 알파에겐 더더욱 그랬다. 사회에 팽배한 오메가를 여성과 동일선상에 놓는 현상은 같은 남자로서 한 코트 안에 서있어도 마찬가지였다. “오메가는 작으니까 스파이커나 블로커를 하기 힘들어.” “오메가는 섬세하니까 세터에 어울려.” 등등. 세터를 하고 싶어 하는 것뿐인데 “오이카와는 키가 작은 것도 아닌데 오메가라서 세터 하는 구나.” “역시 오메가라서 세터에 적합한가봐.” 같은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야했다. 그럴수록 오이카와는 더 노력했다. 서브도 블로킹도 리시브도 제대로 못 하면서 스파이커에게 공이나 올려주는 오메가 세터라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카게야마가 나타났을 때 오이카와는 그가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더불어 그가 알파라는 사실 때문에 더더욱 그를 경계하고 미워했다.
시간이 좀 더 흐른 후에는 그때의 자신이 꽤 유치하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지만 당시의 오이카와에게는 무척이나 절박한 문제였다. 그 절박함에 내몰려 실수를 하고 그래서 새파랗게 어린 후배와 교체당한 충격은 오이카와를 다시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무얼 해도 잘 할 수 있는 천재가 세터 포지션을 희망하는 것에 사람들은 응원과 격려를 보냈다. 오이카와에게 쏟아졌던 냉소적인 반응과는 완전히 달랐다. 천재라서, 알파라는 이유로.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와 시작부터 다른 길을 밟았다.
배구에 관한 고집과 열정은 대단했지만 일상적인 모습의 카게야마는 또래보다 앳되어 보였다. 이제 막 중학교 1학년이 된 소년과 중학교 3학년은 신체적인 차이도 컸다. 오이카와는 카게야마가 알파라는 것에 경계하면서도 아직 그가 어리다는 것을 핑계로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카게야마의 소식을 들었을 때 오이카와는 자신이 그와 일 년 밖에 마주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와 다른 배구부 후배들과의 불협화음이 신경 쓰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기에 조금쯤 비웃을 수 있었다. ‘그래. 알파들이 그렇지. 멋대로 휘저으려고 하고 자기 밖에 모르고. 그래서야 세터를 할 수 있겠어? 배구 센스를 타고 났다고 해서 다가 아니잖아.’라고.
“오이카와 씨도 어렸으니까.”
오이카와는 잔뜩 가시 돋친 예민한 사춘기 시절을 떠올리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그때의 자신이 지금 모습을 본다면 놀라 까무러칠 정도가 아니라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렸을지도 모른다. 처음으로 따라잡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한 두 살 연하의 후배에게 느꼈던 지독한 압박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데 그런 그와 이렇게 살을 맞대고 한 침대에 누워 아침을 맞이하다니, 삶이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지금은 훌쩍 자신의 키를 뛰어넘어 귀엽지 않게 성장한 카게야마는 그래도 오이카와에겐 밤톨마냥 동그라한 머리통을 가진 아직 덜 자란 어린아이 같던 중학교 신입생의 이미지가 있었다. 알파라는 건 한눈에 알아봤지만 정말로 알파인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체취가 옅고 팔다리가 가늘었다.
결국 처음의 그 알파스럽지 못한 이미지 때문에 오이카와는 ‘세터를 지망하는 카게야마’는 경계했지만 ‘알파인 카게야마’는 경계하지 않았다. 그를 마냥 어리게 취급했고 스무 살이 되도록 러트를 맞이하지 못한 반쪽짜리 알파라고 생각했다. 자신 역시 그때까지 발현하지 못했기 때문에 내심 마음을 놓을 것도 있었다. 차라리 그대로 발현하지 않고 오메가의 형질만 가진 채 베타처럼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엎친 데 덮친다고 일이 풀리지 않으려면 이렇게 풀리지 않는다는 걸 오이카와는 그날 몸으로 확인하게 되었다.
“정말이지. 그날 뭐가 씌인 거라니까?”
오이카와는 등 뒤로 돌린 손으로 잠든 카게야마의 어깨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피부를 문지르는 것뿐인데도 카게야마의 체취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싫다고 생각하기만 했던 알파의 페로몬이 지금은 더 없이 편안하게 다가왔다. 각인이 이루어진 후 명실상부하게 자신의 알파가 되었기 때문인지 오이카와는 여전히 축축한 사향의 냄새라고 생각하면서도 카게야마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그 향기를 맡기 위해 가볍게 코를 킁킁거렸다. 다른 알파들에게선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달콤하다는 수식어가 자신의 알파에겐 어쩐지 잘 어울리는 듯했다.
“어려서 그런가.”
팔 안에 안겨 몸을 이리저리 뒤척여도 전혀 잠에서 깰 기미를 보이지 않는 카게야마의 턱에 이마를 부빈 오이카와는 고개를 젖혀 세상모르고 잠든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순진한 얼굴을 하고선 그때 어땠더라. 어째서인지 다시금 저를 휘감는 듯한 카게야마의 페로몬을 들이마시며 오이카와는 처음으로 그가 알파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알게된 날을 떠올렸다.
============ 후략 ========
이 뒤로는 강렬할지 어떨지 모를 첫날밤의 기억....
문의사항이 있으시면 트위터 @hq_semo 로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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