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ritio - 통회(痛悔) - 02
놀란 히나타는 주변에 제 힘이 닿는 것들은 전부 네파스 쪽으로 집어던졌다. 하지만 그것은 거대한 곰을 상대로 공깃돌을 던지는 수준 밖에 되지 못했고 데미지를 입히기는커녕 화를 돋울 뿐이었다. 순식간에 두 사람에게 다가온 네파스는 거대한 위턱을 들어 올려 날카로운 이를 드러냈다. 거미와 구조는 비슷해보였으나 위턱 아래 꾸물거리며 움직이는 세 쌍의 작은 턱이 있는 점이 달랐다. 그리고 그 하나하나마다 박힌 시커먼 이빨이 턱의 움직임을 따라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입 안에서 흘러나온 것인지 이빨이 독을 내보내는 것인지 네파스의 입가에서 떨어진 지독한 악취를 풍기는 점액질이 바닥에 떨어지자 흙더미에 검은 얼룩이 생기며 연기가 피어올랐다.
오이카와는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얼굴을 구기며 히나타의 팔을 붙잡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달리는 와중에 공기를 작은 크기로 압축해 네파스의 입안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힘을 해제에 순식간에 공기가 팽창하게 만들었다. 충격이 가해지긴 한 모양인지 네파스는 그 자리에서 주춤거렸다. 하지만 오이카와의 바람과 달리 외상은 전혀 입히지 못했다.
오이카와가 다시 한 번 힘을 사용하려 할 때 머리 위로 달려든 네파스가 그 강력한 턱으로 두 사람을 찍으려는 듯 머리를 아래로 처박았다. 두 사람은 몸을 굴려 간신히 그곳을 빠져나갔다. 사방으로 움직이는 네파스의 턱과 그 사이에서 뚝뚝 떨어지는 점액질은 그로테스크하기 짝이 없었다.
“입 냄새도 심하잖아!”
오이카와는 불만을 터트리며 몸을 일으켜 달렸다. 이럴 땐 제 능력이 텔레포트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 분통 터질 지경이었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도 발을 멈출 수 없었다. 달리고 또 달리는데 갑자기 조금 전처럼 네파스의 비명이 사방을 진동시켰다.
“윽!”
오이카와는 귀를 막으며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히나타 역시 한껏 몸을 웅크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뇌를 후벼 파는 고주파 뒤로 쿵쿵거리며 무언가 울리는 소리가 났다. 조금 전에는 단지 네파스가 달려오는 소리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네파스의 몸 위로 건물의 잔해가 하나씩 떨어졌다. 잔해라곤 하지만 일부가 파손되었을 뿐인 2층짜리 건물이 통째로 수직낙하하기도 했다. 그 아래서 몸통이 너덜너덜하게 찢겨나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강력한 공격이었다. 하지만 네파스는 그 공격을 받고도 긴 다리를 휘청거릴 뿐 별다른 충격을 받지 않았다. 표피가 찢어지는 일도, 거대한 몸을 지탱하기엔 불안정해 보이는 다리가 파괴되는 일도 없었다.
그래도 거대한 몸을 비틀거리던 네파스는 오이카와와 히나타에게서 시선을 돌려 두 사람은 한시름을 놓고 옆으로 달렸다. 건물 뒤로 돌아가 물웅덩이가 밟히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몸을 숨긴 후 거친 숨을 헐떡이며 건물 위로 보이는 네파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 와중에도 사방에서 건물의 잔해가 괴물 위로 날아들었다. 정통으로 쳐 맞은 다리관절이 꺾여도 다른 다리들은 재빠르게 움직여 몸의 균형을 잡더니 공격의 근원지를 찾아 붉고 커다란 눈알을 사방으로 굴려댔다. 때때로 그곳으로 잔해가 날아들었으나 눈알 하나하나를 감싼 눈꺼풀이 위아래 모두 움직여 닫혀 이물질의 침입을 막았다. 오이카와는 “거미주제에 왜 눈꺼풀이 있냐고!!!”라고 분통을 터트리며 보고 싶지 않은데도 보이는 징그럽게 주름이 잡힌 눈꺼풀 사이의 안구를 노려보았다.
“히나타, 저걸 써봐.”
“네.”
히나타는 손을 뻗어 오이카와가 가리킨 금속으로 된 깃대를 들어올렸다. 천천히 위로 치솟은 깃대는 네파스의 붉은 안구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인간의 힘만으로 대응하기가 거의 불가능해서 그렇지 네파스에게 약점이 없는 건 아니었다. 보통은 지금처럼 입 안이나 안구 등 단단하거나 질긴 표피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곳이 약점이었다. 필시 내장기관도 약할 듯했지만 인간으로 치면 심장에 해당하는 코르(cor)를 파괴하면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소멸하는 탓에 네파스의 구조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었다. 엑스레이며 적외선 촬영을 해보아도 거대한 납덩이처럼 아무것도 스캔 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코르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어떤 건 머리에, 다른 건 가슴, 뱃속에 들어 있거나 인간이라면 자궁이 있을만한 곳에 위치하기도 했다. 다리가 네 개이고 팔이 두 개인 양서류처럼 생긴 네파스의 코르는 왼손 손등에 있어 위치를 찾지 못해 무척 고생한 일도 있었다.
정신감응이 통하면 그 능력을 가진 NP는 네파스의 코르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었다. 코르의 위치를 알아내지 못해도 움직임을 둔화하거나 파괴하려는 본능을 누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네파스는 정신감응이 통하지 않았다. 오이카와가 “뇌가 없는 거 아냐?” 라고 말했을 때 다들 헛웃음을 터트렸지만 사실 그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코르의 위치를 찾는 건 대부분 주변 에너지 반응을 스캔하는 방법을 썼다. 네파스 자체는 어떤 에너지 반응도 보이지 않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코르가 위치한 곳 주변은 자력이 달라진다거나 기압이 불안정해지거나 온도가 상승하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문제는 범위가 넓지 않기 때문에 측정할 수 있는 기계를 근처에 가까이 가져가지 못하면 이론을 알아도 소용없다는 점이었다. 결국 기계를 근접시키기 불가능한 현실에선 NP의 능력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오이카와는 히나타를 지켜보며 정신을 집중해 세심하게 네파스의 표면을 훑었다. 머리에서 배 아래, 다리 하나하나. 공기의 흐름이 달라지는 곳을 짚어내려 애썼다. 하지만 상공에서 날아드는 공격을 피하거나 튕겨내는 네파스와 맞닿은 공기의 반응을 읽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 진짜! 우시와카 쨩. 잠깐만 멈춰봐!”
오이카와는 성량을 낮춘 채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곧장 거짓말처럼 공격이 멈췄다. 중력이며 가속도 따윈 무시한 물체들이 네파스 주위에 둥둥 떠 있었다. 오이카와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온 신경을 집중시켰다. 멈추라고 하니 멈췄지만 우시지마의 성정 상 에너지 반응을 찾는 데 10초 이상 기다려주지 않을 걸 알아서였다.
“아, 진짜. 이번 건 자력인가.”
― 흠.
“안 돼. 기다려. 우리 지금 바로 앞에 있단 말야.”
― 5초 주지.
“말이 되냐구! 여기서, 어?”
“안녕. 오이카와.”
“맛층!”
― 4.
“가자.”
“싫어! 오이카와 씨는 하수구 같은 데 들어가기 싫어!”
― 3
“시끄럽네. 히나타 날려 버려.”
“네, 네!”
― 2
히나타는 곧장 깃대를 네파스의 안구로 날려 보냈다. 퍽. 하는 소리롸 함께 깃대가 홍채를 찢었다. 무시무시한 괴음이 이어져 오이카와와 히나타는 재빨리 양손으로 귀를 가렸다. 마츠카와는 그런 두 사람의 어깨를 양손으로 하나씩 붙잡고 터진 하수구에서 솟아난 구정물에 발을 집어넣었다.
― 1.
“으아악!”
― 제로.
세 사람의 모습이 갑자기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땅이 울렸다.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좌우로 진동하던 지반이 네티스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열십자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억지로 벌어진 틈 사이로 드러난 지반이 웅웅거리며 흙먼지를 일으켰다. 그리고 갈라진 땅이 시간차를 두고 하나씩 솟아올랐다. 건물의 잔해와 버려진 것들이 휴지조각처럼 구겨졌다.
크게 사등분 된 곳 중 하나가 무서운 속도로 상승하자 제 몸체에 비해 가느다란 다리로 땅을 딛고 섰던 네파스는 솟아오른 곳에 걸친 다리를 빠르게 이동시키며 균형을 잃어 비틀거리는 몸을 수습하려 애썼다. 하지만 솟아오른 쪽 대각선에 있던 땅 역시 그 뒤를 따라 위로 솟구쳤다. 여덟 개의 다리 중 그곳에 걸쳐 있던 세 개의 다리가 솟아오른 벽을 움켜쥐려는 듯 정신없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높게 치솟은 흙벽을 긁기만 할 뿐 제대로 몸체를 가누지 못했다. 절벽처럼 솟은 곳에 튀어나온 바윗덩이에 다리가 걸린 네파스의 몸이 크게 휘청거리다 옆으로 넘어갔다. 그것을 놓치지 않고 땅이 아래로 가라앉으며 경사가 만들어졌다. 죽 미끄러진 몸이 흙벽에 부딪쳐 배를 위로 향하게 뒤집어졌다.
그리고 위로 치솟았던 땅이 무너져 구덩이를 메우며 그 일대를 모조리 뒤덮을만한 흙먼지가 거세게 피어올랐다.
― …그라티아?
“아니.”
― 역시 쉽게 죽진 않는 군요.
미심쩍은 목소리로 그라티아(gratia), 네파스의 소멸과 함께 찾아온 평화를 은혜라는 뜻으로 기관에서 칭하는 단어로 말한 아카아시는 우시지마의 무덤덤한 목소리를 듣고 한숨을 내쉬었다.
“지원, 가능하겠나?”
― 포병부대는…. 무리겠군요. 저만 가면 됩니까?
“오이카와도.”
― 알겠습니다.
귓가에서 오이카와의 “내가 거길 왜 또 가야 하는데. 우시와카 쨩 혼자 해치우는 거 아니었어? 오만 폼은 다 잡더니 뭐야.” 라는 소리가 들렸지만 우시지마는 신경 쓰지 않고 훌쩍 위로 뛰어 올랐다.
우시지마는 옆에서 함께 위로 날아오른 철골을 허공에서 수평이 되도록 맞춘 그는 그 위에 가볍게 발을 디뎌 섰다. 그 자신의 몸을 염동력으로 허공에 띄우는 것보다 이미 떠있는 물체를 밟고 서는 것이 집중력이 덜 필요해 효율적이라 우시지마는 주로 이 방법을 이용했다.
발아래 언덕처럼 쌓인 흙더미 위로 작은 돌이 굴러 떨어졌다. 그 아래에서 그르렁 거리는 듯한 소리도 들려왔다. 우시지마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제 발아래에 온 신경을 집중시켰다. 겉으로는 한없이 평화로워 보이는 풍경이었으나 허공에 떠오른 철골 하나와 그것을 밟고 선 우시지마를 제외한 이 일대의 모든 것은 무거운 힘에 짓눌려 조금씩 조금씩 땅속으로 박혀 들어가고 있었다.
아카아시가 올 때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으리라 판단한 우시지마는 제 힘이 닿는 곳에 좀 더 정신을 집중시켰다. 금속, 비금속을 가리지 않고 제 형체를 유지하지 못한 것들이 일그러지며 맨땅을 헤집는 소리가 점점 더 크고 빨라졌다.
우시지마는 내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갑자기 그의 시야 일부분의 공기가 일그러지더니 세 사람이 나타났다.
오늘 아카아시와 마찬가지로 기관에서 대기 중이던 순간이동계 NP인 후타쿠치가 아카아시와 오이카와를 데리고 이곳에 나타났다. 오이카와는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중력이 커진 듯 무겁게 짓누르는 공기에 혀를 차고 야트막한 언덕만한 흙더미가 꿈틀 거리는 것을 보며 진저리쳐진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 안 끝났어?”
“힘을 풀 거다.”
“엑? 그럼 당장 튀어 나오는 거 아냐?”
간단하게 표현하면 염동력은 NP의 정신 에너지를 사물의 운동에너지로 사용하는 것이지만 그 힘의 크기나 미치는 범위는 능력에 따라 제각각이었다. 오이카와의 힘도 분류하자면 염동력 계열에 들어가는 것이나 그가 움직일 수 있는 건 기체상태의 물질이었다. 그래서 압축시켜 한번에 폭발하게 만들 수 있어도 액화하는 순간 오이카와는 그 물체에 대한 통제력을 잃었다. 그에 반해 우시지마는 중성자 단위부터 2천제곱미터가 넘는 면적의 섬까지 제어할 수 있었다. 기관에서 측정한 결과이고 그의 잠재력이 측정한 결과보다 더 대단할 수 있으나 실험실에 두는 것보다 네파스 섬멸에 투입하는 쪽이 훨씬 효과적이었기 때문에 시간과 비용 등의 문제로 그 이상 우시지마의 힘을 측정하는 실험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이카와는 3년 전 우시지마가 지각을 비틀어 열어 강제로 용암을 분출시켜 네파스를 소멸시킨 걸 두 눈으로 보기도 했다. 염동계열로는 전무후무한 NP. 최근 히나타가 기관의 주목을 받고 있지만 아직은 잠재적인 능력이라 우시지마와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단지 우시지마는 제 시선이 닿는 모든 범위의 물질을 제어할 수 있어도 세심함이 부족했다. 제어능력은 꾸준한 훈련을 통해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정교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워낙 큰 힘을 가지고 있다 보니 오이카와처럼 공기를 압축해 입안에 밀어 넣어 폭발시켜 데미지를 입히는 세밀한 방법보단 주변 전봇대를 뽑아 대가리를 관통시키는 단순한 방법을 선호했다.
요란한 방법이지만 효과는 확실했으므로 우시지마의 방법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의를 제기하기는커녕 그의 단호하고 명료한 행동에 사람들은 박수를 보냈다. 평화로운 시대였다면 우시지마의 방법이 거칠다고 훈수를 두는 이도 있겠으나 혼란의 시대, 보통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막강한 괴물을 엄청난 능력으로 쳐부수는 능력자가 인간의 편이라는 건 그들에게 통쾌한 감각을 선사하기에 충분해 결국 우시지마의 그런 모습은 영웅과 비슷한 이름으로 소비되었다.
마음 편히 취미생활을 즐길 여력 따윈 사치의 수준을 넘어선지 오래인 현실에서 영웅이라기 보단 연예인에 가깝다고 오이카와는 자조했으나 그의 실력은 진짜였으므로 그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폄하할 생각은 없었다.
“아카아시, 넌 네파스의 주의를 돌려라.”
“네.”
“난?”
“자력에 반응하는 물질만 움직이겠다.”
“흐음. 좋아.”
짧은 말이었지만 그간의 경험으로 인해 오이카와는 우시지마가 하는 말은 정확하게 알아들었다. 조금 전 오이카와가 열 반응에 의한 공기의 흐름을 읽을 수 없었으니 이번엔 우시지마가 자력에 반응하는 물체를 염동력으로 네파스 주위에 띄운다는 말이었다. 오이카와가 할 일은 그 중에서 움직임이 달라지는 물체의 위치로 코르의 위치를 찾는 것이었다.
오이카와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우시지마는 후타쿠치를 향해 지시를 내렸다.
“아카아시를 도와. 그리고 코르를 찾으면 두 사람을 본부로 데려가도록.”
“네.”
“혼자 하려고?”
“충분하다.”
“그러지 말고. 모처럼 아카아시 군이랑 나도 있는데 한 발 날려주자구. 혼자서 또 맨틀에다 처박기라도 할 샘이야?”
“필요하다면.”
“넘 힘 빼지 말란 말야. 최소한의 힘으로 최대한의 효과. 그게 효율이라는 거 몰라? 우시와카 쨩은 진짜 단순무식하다니까.”
“그럼?”
“코르를 찾으면 내가 공기를 압축해서 그 근처를 둘러쌀 테니까 아카아시 군이 한발 쏴주면 쾅~! 폭발!”
“흠.”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고 생각한 우시지마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후 일행에게 물러서라고 말했다. 오이카와는 네파스가 파묻힌 곳에서 가까운 비교적 안전한 장소로 몸을 숨겼고 후타쿠치는 아카아시를 데리고 높은 곳으로 이동했다.
그들의 위치를 확인한 우시지마는 발을 딛고 선 철골을 움직여 그곳에서 멀리 떨어졌다. 그리고 아무런 전조도 없이 갑자기 흙더미가 위로 솟구쳤다. 고막을 찢을 듯한 굉음과 함께 아카아시가 있는 쪽에서 불덩이가 날아갔다. 다리에 그 공격을 맞은 네파스는 거대한 몸을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움직여 자신을 공격한 대상을 향해 독니를 드러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화염공격이 날아들자 네파스는 아카아시와 후타쿠치가 있는 곳으로 달려들었다.
제 이빨만큼이나 날카로운 가시 같은 갈퀴를 지닌 다리가 두 사람을 덮치려는 순간 그 곳에 있던 사람의 모습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 네파스는 갈라진 턱을 허공에서 꿈틀거리다 목표한 것이 사라진 것을 눈치 채고 곧장 고개를 돌렸다. 그와 동시에 후타쿠치와 아카아시의 모습이 허공에 나타났고 곧바로 아카아시의 펼친 손바닥 위에 생겨난 화염구가 네파스를 향해 날아갔다.
괴물이 정통으로 불꽃을 맞고 잠시 비틀거리는 사이 허공에서 사라진 후타쿠치와 아카아시는 조금 전 섰던 곳의 반대편에 나타나 또 공격을 가했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끊임없이 이동하며 공격을 하는 탓에 네파스는 한 자리에 발이 묶인 채 머리와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에게 정신이 팔린 네파스는 제 주위로 모래알 같은 철 조각들이 몰려드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먼지 같은 수준에서 작은 조약돌 크기까지. 오이카와는 자력에 반응하는 것들만 저렇게 작은 크기를 추려 움직이는 것이 충분히 가능함에도 매번 제 키보다 큰 것이 아니면 취급하지 않는 우시지마의 행태에 작게 혀를 차며 그 철 조각들의 움직임에 신경을 집중시켰다.
아카아시의 공격에 따라 거대한 몸이 이리저리 움직일 때마다 공기의 흐름이 생겼다. 오이카와는 그 흐름과 다른, 일정하게 반응하는 부분을 찾기 위해 숨을 멈춘 채 공기에 부딪치는 철 조각들의 미세한 변화를 더듬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미간을 찌푸리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듯 매를 가늘게 접었다.
― 아직이에요?!
“잠시… 조금만….”
힘은 무한정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순간이동계 NP 중 상위권에 들어가는 후타쿠치라 해도 짧은 시간에 지나친 능력을 사용하면 리스크가 따를 수밖에 없었다. 조금 초조한 듯한 목소리를 들으며 오이카와는 감각을 예민하게 끌어올렸다. 네파스의 입에서 뚝뚝 떨어지는 독이 흙 위에 떨어져 시커먼 연기를 피우는 것과 함께 지독한 냄새가 점점 더 짙어졌다. 코를 마비시키는 수준을 넘어서 두통을 유발하는 악취에 얼굴을 구기면서도 오이카와는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여기!”
오이카와는 소리를 지르는 것과 동시에 압축시킨 공기를 네파스의 배 끝부분에 뭉툭 튀어나온 곳으로 날려 보냈다. 먼지처럼 뭉쳐 있던 쇳가루들이 공기의 팽창과 함께 사방으로 흩어졌다.
새로운 공격에 네파스는 분노를 드러내듯 높은 소리를 냈다. 포효와는 다른 그 높은 데시벨에 오이카와는 귀를 틀어막으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 아, 진짜! 다짜고짜 공격하면 어째요!!
“저길 뭐라고 설명해 그럼!”
― 괴물새끼 똥구멍이잖아요!
“오이카와 씨는 그런 상스러운 말 안 하거든?”
― 시발, 똥구멍을 똥구멍이라고 하지 그럼.
― 항문이라는 지극히 일반적인 용어가 있지.
― 저런 새끼한테 무슨.
“싸움은 돌아가서 해줄래? 오이카와 씨 위험하다구!”
능력을 소모한 탓에 그다지 심기가 편치 않은 후타쿠치와 그런 그에게 냉담하게 반응하는 아카아시의 목소리를 들으며 오이카와는 다급하게 외쳤다. 코르가 있는 부분이어서인지 다른 곳을 공격했을 때와 달리 격렬하게 고통을 호소하며 큰 몸을 움츠러트렸지만 반응하는 시간이 조금 더뎠을 뿐 네파스는 곧장 노란 홍채로 오이카와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곧장 몸을 돌려 오이카와 쪽으로 돌진했다. 오이카와가 기겁을 하며 물러서는데 바로 눈앞에 후타쿠치가 나타났다. 오이카와가 그의 팔을 붙잡는 것과 동시에 독 섞인 침을 뚝뚝 떨어뜨리는 네파스의 이빨이 바닥으로 와 박혔다.
숨을 멈추고 눈을 한 번 깜박였을 뿐인데 오이카와는 어느새 아카아시가 있는 곳에 도착해 있었다.
“아카아시 군, 바로 가자.”
“네.”
“후타 쨩. 저쪽으로 데려가 줘.”
후타쿠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오이카와가 가리킨 곳으로 두 사람을 데려다 주었다. 옆으로 쓰러진 건물의 가장 높은 곳에 내려선 오이카와는 아카아시를 향해 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아카아시는 어깨를 으쓱이더니 팔을 앞으로 뻗었다.
“시작하죠.”
오이카와가 아래를 내려다보자 그곳에서 우시지마는 이미 네파스에게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흙먼지를 뒤집어써도 가릴 수 없는 흉측한 검초록 껍질을 번들거리는 네파스의 코르가 있는 꽁무니로 주변의 사물들이 날아갔다. 하지만 약점을 쉽게 내어줄 생각은 없는지 네파스는 그 공격들을 빠르게 피하며 우시지마에게 달려들었다. 우시지마는 여전히 철골을 하나에 발을 딛고 서 허공에서 네파스의 공격을 피하면서도 그것이 그 자리에서 멀리 벗어날 수 없도록 몰아갔다.
“시작할게.”
우시지마에게서 답은 없었지만 오이카와는 개의치 않고 계획에 착수했다. 압축할 수 있는 만큼 공기를 압축해 코르가 있는 곳에서 아카아시가 만들어낸 불꽃과 함께 폭발하게 한다. 단순한 방법이었다. 단지 얼마만큼의 파괴력이 있어야 하는지 알 수 없으므로 성공할 때까지 반복해야 했다. 공격을 받아 흥분한 네파스가 오이카와와 아카아시를 공격하려 할 때 우시지마가 잘 막아주고 거기에 운이 따라주기만 한다면 생각보다 쉽게 끝날 수도 있었다. 오이카와는 이쪽으론 신경 쓰지 않는 네파스의 뒤꽁무니에 집중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곧장 아카아시의 손 위에서 만들어진 배구공만한 크기의 불꽃이 화살처럼 길게 목표한 곳으로 날아갔다. 그곳에 도달하는 것과 동시에 오이카와는 공기를 제어하던 힘을 풀었고 불과 만난 응집된 산소가 팽창하며 큰 폭발을 일으켰다.
“한 번 더!”
연달아 다시 폭발이 일어났다. 오이카와가 또 다시 소리치자 아카아시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의 얼음처럼 차갑게 보이는 얼굴과 완전히 다른 뜨거운 불꽃을 공기 중에 만들어냈다.
-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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