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ritio - 통회(痛悔) - 01
하늘이 열린 날. 인과의 폭풍이었으나 인외(寅畏)의 광륜(光輪)이라 기꺼이 믿으며 죽어간 이들의 주검이 기름과 재로 화해 하늘을 뒤덮던 날. 그, 하늘이 검게 열리던 날. 신의 시련에 비탄하여 참담히 울부짖는 자들과 신의 침묵을 비난하며 참혹히 통탄하는 이들 모두 맞잡은 손가락 사이 텅 빈 웅덩이를 제가 흘린 처절한 피눈물로 채워야만 했다.
수십억 명 인구의 삶의 터전은 이제 폐허가 되었다. 그 문장만큼 식상한 표현을 찾을 수 없는 시대, 새파랗게 메마른 하늘 아래 남은 회색 콘크리트와 시뻘건 눈물을 흘리는 철골이 비석처럼 버려진 그곳에 몇 명의 사람들이 발을 딛고 섰다.
“온다."
“진짜야?”
“그럼. 오이카와 씨에게 실프 쨩이 속삭여 줬는걸.”
표식을 위해 세워둔 깃발이 미동도 없는 것과 달리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건물의 흉측한 잔해 밖에 없는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남자, 오이카와 토오루의 부드러운 갈색 머리카락이 정말로 바람의 정령에게 둘러싸인 듯 살며시 너울 거렸다.
“실프 쨩이 저기래.”
정수리 위에서 작열하는 태양은 공평하게 세상을 비추고 있었다. 쓰러진 빌딩 위에도, 방치되어 녹슨 자동차 위에도, 오이카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의 아스팔트가 뒤집힌 도로 위에도.
“공기 흐름이 달라졌다는 거면 지금…. 으악!”
손가락 끝을 휘감은 공기의 흐름을 느끼던 그는 갑작스레 폭발한 공기의 확산에 단발마를 내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바짝 긴장한 이들의 눈앞 허공에서 공기의 소용돌이가 만들어졌다. 우우웅, 우우웅. 허공이 일그러지며 우는 소리는 몇 번을 들어도 꿈꾸듯 이질적이었다.
몸 바로 앞 공간의 공기의 밀도를 높여 쏟아지는 콘크리트 잔해의 속력을 떨어뜨려 피해를 최소화 하려던 오이카와는 갑자기 날아온 고철덩이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순식간에 공기층을 두껍게 만드는 것과 동시에 공기의 흐름을 역으로 되돌린 그는 그래도 만약을 대비해 발을 뒤로 디뎠다.
“끄악!”
울퉁불퉁한 바닥에 발이 미끄러져 균형을 잃은 오이카와는 팔을 허공에 휘두르며 몸의 균형을 잡기 위해 애썼다. 그 탓에 집중력이 흐트러져 장벽이 사라졌고 오이카와는 그대로 자신에게 날아오는 물체를 막기 위해 반사적으로 팔로 얼굴을 가렸다.
“조심해.”
“아, 진짜 짜증나네.”
“괜찮아?”
“헤에. 땡스. 맛키.”
하나마키가 막아준 탓에 정신을 차린 오이카와는 재빨리 다시 주변의 공기층의 밀도를 높이며 안전한 장소를 찾아 이동했다. 하나마키 역시 오이카와의 뒤를 쫒아 이동하면서 날아오는 물체들을 맨손으로 쳐냈다.
“이번엔 좀 약한가?”
“글쎄. 아파렌티아 에너지 수치가 낮다고 꼭 약한 건 아니잖아. 근데 맛층은 어디 갔어?”
“여기 적당한 수원이 없어서 못 오겠데.”
“치사해. 오이카와 씨는 이렇게 힘들게 일하는데 맛층은 논단 말이야? 나빴어.”
“저기 뒤에 어디 있을 거야. 이번엔 반경 300 미터래.”
“1키로는 하랬는데!”
“시간이 없었잖아.”
“어휴.”
오이카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귀에 꽂은 이어셋의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곧장 들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에 미간을 찡그리며 낮에 “아, 아.” 소리를 내곤 입을 열었다.
“우시와카 쨩. 들었어? 반경 300 미터야. 알겠지?”
― 알았다.
“대답만 하지 말구!”
― 대답 말고 뭘 더 하지?
“힘 조절을 하란 말야. SO738B. 타이머 설정해. 3분.”
― 라저.
“맛키! 치비 쨩! 준비해!”
“예이.”
“네! 넵!”
이질적인 힘으로 만들어지는 소용돌이 밖으로 뻗어나가던 공기의 흐름이 이제 방향을 바꿔 그 소용돌이 중심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오이카와는 오스티움이 열릴 때까지의 시간을 재빨리 계산해 최선일 듯한 작전을 선택한 후 개시 시간과 함께 주변에 알렸다. 그리고 아지랑이처럼 공기가 울렁이던 곳에 잿빛 구름이 휘몰아쳐 그 사이에 번쩍이는 빛과 굉음이 간헐적으로 터져 나오는 것을 보며 어금니를 악물었다.
저기압이 거대한 상승기류로 화해 만들어지는 토네이도와 현상은 비슷하지만 문을 뜻하는 오스티움(Ostium)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소용돌이는 마치 대지에 선 투명한 벽에 만들어진 듯 오이카와의 눈앞에 보이는 중심으로 게걸스레 주변의 공기와 물체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흡사 블랙홀을 보는 듯한 그것은 오이카와와 오스티움을 사이에 두고 반대편에 선 우시지마에게도 똑같이 보일 현상이었다.
물질을 뛰어넘어 소리를, 빛마저 빨아들일 듯한 기세로 굉음을 흘리는 소용돌이 중앙의 검은 원이 눈에 띄게 크기를 키웠다. 그리고 그 검은 원의 크기가 커질수록 빛을 가린 검은 그림자가 오이카와와 그 아래 땅을 뒤덮었다.
“30초….”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리는 오이카와의 목소리는 이어셋을 타고 흘러 그와 같은 것을 장착한 모든 이들의 귀에 들어갔다. 낮은 신음소리, 긴장을 억누르듯 침을 삼키는 소리가 대답처럼 오이카와의 귀로 되돌아왔다.
“10, 9, 8….”
몇 초의 오차는 있을 수 있지만 결국 공기의 흐름과 압력의 정점에 달하며 오스티움이 열린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는 오이카와는 그것이 가진 에너지와 제 힘으로 느끼는 공기의 힘을 계산해 어디서 오는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아무도 모르는 그 존재의 발현 시간을 계산할 수 있었다.
단지 나타나는 시간은 알아도 그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알지 뫃했기에 오이카와는 그 점을 늘 분하게 생각하며 오늘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점점 거대해지는 칠흑의 공간을 노려보았다.
“5, 4, 3, 데펜데 노스 인 프로엘리오(defende nos in proelio). 제로(0).”
건조한 목소리로 수를 세는 카운트 마지막을 여기서 벌어지는 일을 막기 위해 자리한 모든 이들이 아는 기도문의 한 구절로 대신하는 것은 그들의 약속이었다.
defende nos in proelio 싸움 중에 있는 저희를 보호하소서.
종교의 유무를 떠나 오늘도 살아남겠다는 약속.
오이카와는 카운트를 마침과 동시에 온 정신을 집중해 눈앞에 거대한 진공의 공간을 만들어냈다.
“젠장!”
수 분간 먹어치운 것을 한 순간에 토해내는 무시무시한 압력에 오이카와는 욕설을 내뱉으며 비죽비죽 솟아오른 철근 위로 뛰어 올랐다. 그리고 그가 만들어놓은 공간에 약간의 틈을 주자 거대한 오스티움에서 쏟아져 나온 것들이 순식간에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원리는 간단하지만 같은 능력이라고 해도 오이카와만큼 섬세하고 광범위하게 공기의 흐름을 다를 수 있는 이는 전무했다. 그런 오이카와의 초반대응으로 광풍의 피해를 피한 이들은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그리고 그때, 거대한 검은 원이 한 점으로 수렴되는 것과 동시에 그 자리에 세상에 존재해선 안 되는, 생명체라 부르기에도 끔찍한 괴생물체가 그 자리에 나타났다.
“으윽….”
오이카와는 신음을 삼키면서도 정신을 집중해 눈앞에 공기의 벽을 만들었다. 곁눈으로 하나마키가 있는 포병부대를 보자 벌써부터 토악질을 해대는 인간부터 부들부들 떨며 성호를 긋는 자들까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사기가 바닥으로 떨어지고도 남을 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오이카와는 혀를 차며 시작하라고 외친 후 제가 만들어낸 공기의 벽을 눈앞으로 날렸다. 다리 하나 정도는 잘라낼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최소한의 단면에 최대한 밀도를 높여 공격했다.
하지만 그 공격이 적에게 데미지를 입히기는커녕 그 앞에 생겨난 얼음 같은 장벽에 부딪혀 산산이 흩어졌다. 오이카와가 만들어낸 것도 포병부대가 쏘아올린 것들도 마찬가지였다.
“켁! 뭐야! 아카아시 군. 이런 말 없었잖아!”
― 아파렌티아 전엔 저도 알 도리가 없죠.
“와, 무능력해!”
― 예측 좌표에서 사방 20미터도 떨어지지 않았습니다만?
“미치겠네. 모니와 쨩이랑 코즈메 쨩, 이번에도 무리래?”
― 네. 이번에도 정신감응은 통하지 않습니다.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거냐구!”
― 그걸 알면 저희가 이렇게 고생을 하지 않겠죠.
“아…. 정말 아카아시 군. 얄미워.”
― 집중하세요.
“말 안 해도 알거든요?”
오이카와는 다시 정신을 집중시켰다. 목표는 그들의 적, 네파스(nefas)라고 부르는 존재하지 말아야 할 괴물의 안면 근처였다. 오이카와는 전체적으로 거미를 닮은 이번 네파스의 번들거리는 청록색 머리에 달린 네 쌍 눈알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새빨간 안구가 움직일 때마다 중앙의 노란 홍채 역시 그 움직임을 따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치비 쨩. 준비해.”
― 네!
3년 전 능력이 발현된 후 아직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하는 히나타를 작전에 투입시키는 것을 오이카와는 계속 반대했다. 하지만 물체를 움직일 수 있는 염동력 계열의 NP 수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기관에서는 오이카와의 의견을 묵살하고 히나타를 전장으로 내몰았다. 오이카와는 히나타가 아직 어리고 경험이 부족하다고 주장했으나 현재 염동력 계열 NP 중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우시지마의 첫 출전이 그가 고작 여덟 살 때 일이었으므로 히나타가 어리다는 핑계 따위는 통하지 않았다.
새로운 아이, 노우스 풰르. NP(Novus Puer)라고 부르는 능력자들은 반세기 전 일어난 대격변, 카타스트로파(Catastropha) 이후 전 세계에 걸쳐 나타났다. 평범한 인간으로 살던 이에게서 능력이 발현되거나 능력을 가진 아이가 태어났다.
현재 사람들은 카타스트로파 이후 전체 인구 중 1/3 가량만이 살아남았으리라 추측했다. 그 천지를 뒤흔든, 누군가에게는 신의 형벌이며 누군가에겐 인과응보라고 일컬어지는, 세상이 변한 그날에서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았을 때부터 나타난 네파스로 인해 인구는 다시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살아남은 자들이 군사무기를 수습하기도 전이었다. 속수무책으로 사람이 죽어나가고 이미 폐허가 된 도시가 다시 쑥대밭이 되길 보름여일. 한 국가의 소장(少將)이었던 남자가 군대를 정비해 네파스 퇴치에 나섰다. 엄청난 화력이 소비되고 무수한 군인이 희생되었다. 다행히 그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아 네파스를 물리칠 수 있었다. 하늘과 땅을 울리는 굉음과 함께 원숭이의 얼굴을 하고 열두 쌍의 팔을 가진 흉측한 괴물이 마치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완전하게 소멸되었다. 그 자리에 있었던 이들은 자신들이 목숨을 걸고 맞선 괴물이 환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만큼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하지만 네파스로 인해 목숨을 잃은 이들의 시체는 진흙탕으로 변한 강물 위로 떠올랐고 무너져 내린 건물과 그것에게 짓밟혀 종잇장처럼 우그러진 흔적은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네파스의 존재가 완전히 사라졌음을 확신한 사람들은 그들을 위해 싸운 군인들에게 환호하며 군대를 통솔한 소장에게 아낌없는 탄사를 보냈다. 그리고 한때 각 국가의 정치지도자들 역시 앞 다투어 소장의 위기관리능력을 칭송하며 새로운 국가의 출현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자연스레 기반시설이 덜 파괴된 국가를 중심으로 힘을 모으기 시작했고 임시로 통합된 국가가 세워졌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그 국가의 첫 대통령은 위기 상황이라는 이유로 투표 없이 선출되었고 모두가 예상한대로 인류를 구한 소장이 그 자리에 올랐다. 살아남은 인구의 15% 정도가 통합된 국가 소속이 되었고 뒤늦게 소식을 접한 이들의 상당수가 그 국적을 얻기 위해 몰려들었다. 그렇게 살아남은 인류는 다시 새로운 역사를 쓰는 듯했다.
하지만 한 번으로 끝이 아니었다. 새로운 국가가 탄생한지 다시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새로운 네파스가 나타났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그곳에서 2,000km가량 떨어진 곳에서 또 다른 네파스가 출현했다.
공간의 뒤틀림, 막대한 기압차가 만들어내는 광풍, 무(無)의 극점을 보여주는 듯한 검은 원. 아파렌티아(Apparentia)라고 불리게 될 네파스 출현의 공통점이었다.
새로운 국가는 대 네파스 전을 국가 최대의 과제로 삼았다. 군인을 모집하고 공장을 가동해 무기를 생산했다. 부족한 기반시설과 인력을 최대한 군사력에 집중하며 일반인들에겐 많은 제약이 따랐으나 생존을 위해 그들은 자신들의 희생을 기꺼이 감내했다. 감내해야만 했다.
인류는 다시 그들의 손으로 만든 무기로 신이 인정하지 않았음이 분명한 괴물을 물리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허나 그 바람은 인간의 목숨과 함께 무참히 짓밟혔다. 파란 하늘엔 폭파한 전투기가 흘린 회색 연기가 피처럼 흩어졌고 땅거미가 진 붉은 대지에 시체가 만들어낸 검은 그림자가 길게 십자가를 그려냈다.
신은 기도에 응답하지 않았으며 인간의 대표자는 무능의 위관(位冠)을 써야 했다. 절망에 찬 비명이 끊이지 않았으며 사랑하는 가족의 시체를 거두지 못한 채 사람들은 그들의 삶을 할퀴는 괴물을 피해 달아났다. 아비규환의 지옥이 존재한다면 바로 이곳일 듯했다.
그리고 다시 또 하나의 네파스가 출현했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 맞아야 했던 카타스트로파 때와 달리 죽음의 장막을 드리우는 네파스로 인해 인구가 절멸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어야했다.
NP의 존재는 그 새로이 나타난 네파스로 인해 세상에 알려졌다. 자신의 능력을 인지하지 못한 열두 살의 소녀의 힘이 거대한 폭발을 가져와 수천, 수만 명의 목숨으로도 맞바꾸지 못했던 네파스의 소멸을 이루어냈다. 세상에 처음 나타난 네파스가 그러했듯이 무지막지한 상흔만을 남긴 채 네파스는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렇게 사라졌다.
소녀는 그녀가 인류의 구원자이길 바라는 성급한 어른들의 손에 이끌려 먼 길을 떠났다. 그녀를 맞이한 것은 사막을 지배하는 괴물의 숨결이었다. 지독한 악취가 사방을 무겁게 적신 그곳에서 소녀는 두려움에 소리조차 지르지 못한 채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몸을 돌렸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 겨누어진 인간의 총부리가 그녀의 발을 멈추게 했다. 소녀는 자신에게 힘이 있다면 괴물을 물리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무서운 어른들이 이곳에서 사라지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러나 신이, 인간의 자비로운 신이 아님을 알지 못했던 소녀는 겁에 질린 모습 그대로 모래 속에 파묻혔다. 소녀를 데려온 어른들도 모두 그 자라에서 한줌의 모래가 되었다. 기도도 절규도 들어줄 이가 없는 그곳에서 인류구원의 열쇠가 될 수도 있었던 소녀는 그렇게 소멸되었다.
그 일이 세상에 알려지며 정부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어린 소녀의 죽음을 추모하는 행렬 뒤를 소녀와 같은 힘을 가졌을 지도 모르는 이들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된 눈동자가 뒤쫓았다. 조금이라도 남들과 다른 이들이 일반인들 사이에서 수거되어 기관으로 옮겨졌다. 그들은 그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군대에 차출되거나 연구소로 끌려갔다. 인류를 구원한다는 미명아래 그들의 인권을 묻는 이들의 목소리는 묵살되었다. 대격변의 카타스트로파와 신에게 버림받은 괴물 네파스가 인류 공통의 두려움인 이상 무엇보다 우선시 되는 것은 인류 전체의 안전한 미래이기 때문이었다.
절박했으므로 NP의 능력을 분류하고 그 능력을 극대화 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일은 단기간에 체계화되었다. 태어나자마자, 혹은 능력이 발현되자마자, 대부분의 NP들은 그렇게 기관으로 끌려와 판정받고 분류되어 사지로 내몰렸다.
히나타 역시 삼 년 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이곳으로 들어왔다. 그는 자신이 염동계 NP라는 것을 알고 기뻐했고 누구보다 강해져 여동생인 나츠를 꼭 지켜주겠다고 말했다. 오이카와는 그런 히나타의 말을 들으며 “어리네….”라고 중얼거렸고 그 이후 그를 보면 “치비 쨩.”이라고 불렀다. 실제 나이로는 두 살밖에 차이나지 않지만 히나타의 지나친 긍정적인 모습은 십대에 기관에 들어온 NP 중 무사히 성인식을 맞이할 수 있는 확률이 30%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오이카와에겐 그저 어리고 철이 없는 것으로 밖에 여겨 지지 않았다.
그래도 히나타의 잠재능력은 뛰어났고 여동생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그 마음이 귀여워 오이카와는 그 나름대로 히나타를 동생처럼 귀여워했다. 자신에겐 동생이 없지만 만약 남동생이 있다면 이런 느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같은 염동계 NP임에도 귀여움이라곤 약에 쓰려야 쓸 데가 없는, 무표정하고 무신경하고 무뚝뚝하고 무자비한 우시지마와 달리 싹싹하게 인사성도 발라 눈이 갔다.
그러니 오이카와는 히나타가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을 때까지 훈련을 한 후에 작전에 투입되기를 바랐다. 그것이 부질없는 생각임을 알면서도 자신보다 어린나이의 NP가 더 이상 죽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는 마음 또한 담아 상부에 그렇게 건의했다.
당연히 오이카와의 의견 따위는 깨끗이 묵살되었고 오이카와는 15세 생일이 조금 지났을 뿐인 히나타와 함께 작전에 투입되었다.
NP의 1/4은 첫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다. 아무리 시뮬레이션을 통해 네파스의 모습에 익숙해지도록 한다 해도 막상 그 막대한 힘을 눈앞에서 직접 보게 되면 훈련이나 정신감응을 통해 억눌린 공포심보다 더 큰 무력감과 두려움에 휩싸여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히나타 역시 첫 전투에선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오이카와 역시 히나타에게 기대하지 않았다. 그래도 히나타는 살아남았고 두 번째 전투에서는 자신의 힘을 겨우 한 번 사용해보았다.
이번에 세 번째 전투이고 오이카와는 히나타가 제 능력을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어야했다. 선배로서의 의무만이 아닌 모두의 생존을 위해서.
오이카와의 시선을 따라 그가 만들어낸 날카로운 공기의 칼날이 네파스의 붉은 안구 바로 앞에서 만들어졌다. 그리고 네파스가 그것을 인식할 겨를을 주지 않고 곧바로 홍채로 날려 보냈다. 안구를 완전히 짓이길 만큼은 아니었지만 노랑 홍채에서 검붉은 체액이 쏟아져 나오게는 할 수 있었다.
“절지동물같이 생긴 게 홍채에 유리체액도 있냐!”
눈알 하나가 사람 머리통 세 개를 붙인 것보다 컸으니 그 안에서 터져 나오는 체액도 만만찮은 양이었다. 오이카와는 약한 부위를 공격당해 순식간에 제 앞에 친 장막을 무너뜨린 네파스의 눈에서 튀어 나오는 체액을 피해 소리를 지르며 옆으로 뛰어 올랐다.
그와 동시에 오이카와가 눈을 공격할 때부터 근처에 떠올라있던 철골 하나가 찢어진 안구에 날아가 박혔다. 퍽. 하며 안구가 으깨지는 소리와 함께 네파스의 비명이 공기를 찢었다. 고주파의 높은 데시벨은 그것만으로 강력한 무기였다. 다급하게 귀마개를 꺼내 끼우는 이들도 있었으나 상당수는 손으로 귀를 가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치비 쨩! 목! 목을 노려!”
오이카와 역시 손으로 귀를 틀어막으며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주변에 염동력으로 인해 떠오른 물체는 없었다. 오이카와는 얼굴을 구기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저 멀리서 히나타가 팔로 머리를 감싼 채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맛키. 히나타 좀 봐줘. 비틀 원, 비틀 원. 반복한다. 비틀 원.”
뻔히 내려다보이는 작태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걸 알면서도 오이카와는 화포 발사 명령을 내렸다. 안간힘을 다해 수행하려 하는 이도 있었으나 네파스는 인간이 자신이 내는 소리에 무력해진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더 큰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미친, 우시와카 쨩! 뭐 하는 거야!”
― 히나타에게 기회를 주기로 한 것 아니었나?
“전투 불능이라구.”
― 쯧.
“이 상황에서 되겠냐구! 거기도 마찬가지 아냐?”
― 음.
우시지마가 이끄는 중대 역시 이곳과 비슷한 상황이라는 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괜찮아?”
― 익숙하다.
“아, 진짜 재수 없어. 아무튼 어떻게 좀 해봐!”
두개골이 쪼개질 것 같은 고통에 걱정이 되어 물어본 오이카와는 덤덤하게 돌아오는 목소리에 짜증을 내며 눈앞의 적에게 신경을 집중했다. 절지동물과 구조가 비슷하다면 일단 머리를 잘라내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오이카와는 네파스의 머리 뒤편에 공기를 압축시켰다. 한 번에 내리쳐 목을 쳐낼 생각으로 집중하는데 붉은 안구 중앙의 노란 홍채가 일시에 오이카와를 향했다.
“헉.”
매번 다른 형태로 기어 나오는 네파스의 모습은 언제 봐도 혐오스러웠다. 본능적인 영역에서 쭈뼛 소름이 돋았지만 그래도 오이카와는 집중력을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하지만 갑자기 비명을 지르듯 내지른 소리를 멈춘 네파스가 그 거대한 몸을 상상하지 못한 빠른 움직임으로 뒤로 돌려 오이카와는 집중시켰던 힘을 거둬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때 하늘에서 번개로 된 창이 내리꽂히듯 무수한 콘크리트 기둥이 바닥으로 처박혔다. 하지만 이미 네파스는 그 기둥보다 더 두꺼운 여덟 개의 다리로 재빨리 그 자리를 벗어난 뒤였다. 오이카와는 근거리에서 일어난 땅을 울리는 충격과 거대한 먼지구름에 기침을 내뱉으며 뒤로 물러섰다.
“미친 거 아냐! 마리아, 이스트. 마리아. 마리아.”
마리아는 그들의 퇴각신호였다. 동쪽으로 퇴각을 명하며 오이카와는 네파스가 달려가는 남쪽으로 이동했다. 우시지마가 있는 곳까지 네파스가 도착하는 데엔 3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3초가 지나기도 전에 네파스와 우시지마의 중대 사이에 거대한 벽이 일어났다. 우시지마의 힘으로 만들어진 방호벽이었다. 여전히 쓸데없이 대단한 힘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오이카와는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네파스는 긴 다리를 뻗어 벽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아악! 징그러! 아카아시! 공군은!!”
― 반경 3키로미터 레이더 불능입니다.
“뭐야! 도대체 저거 정체가 뭐냐고!”
― 알면 고생을 안 하죠.
“거미줄 뿜는 거 아냐?”
― 재수 없는 말씀은 하지 마세요.
“우시와카 쨩. 그쪽으로 지금 섹시한 긴 다리 미녀가 넘어가고 있다는 거 알아?”
― 네파스의 성별에 관한 건 알려진 바가 없다.
“여유만만이시네. 안 도와줘도 돼?”
― 네 몸이나 지켜라.
“하, 그러셔.”
“중대장님.”
“치비 쨩. 괜찮아?”
어느새 이곳으로 온 히나타에게 묻자 그는 숨을 헐떡이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머리 쪽 마디를 노려. 할 수 있겠어?”
“네!”
오이카와 역시 히나타에게 말한 곳을 노렸다. 네파스의 신경이 우시지마 쪽에 쏠려있고 보호막 또한 형성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간다.”
“네, 네.”
히나타가 손을 내뻗은 방향에서 반쯤 우그러진 철문이 떠올랐다. 히나타는 숨을 천천히 고르며 그것을 날릴 방형으로 이동시켰다. 적당한 위치에 도달했을 때 히나타는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고 그것을 네파스에게로 날려 보냈다. 오이카와 역시 그와 동시에 네파스의 목 뒤에 만들어둔 밀도 높은 공기층을 아래로 내리 꽂았다.
“으악!”
하지만 그것이 네파스의 몸에 닿기도 전에 거대한 괴물은 다시 고개를 돌리는 것과 동시에 거대한 일곱 개의 눈을 까뒤집으며 오이카와와 히나타에게로 달려왔다.
-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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