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orbid Tune
발간일 : 2015년 5월 2일 오이카와 오른쪽 배포전 'LIGHT TOSREN'
커플링 : 우시지마X오이카와 (R-19)
※ 책 사양
신국판 인쇄본 168 페이지
※ 가격
11,000원
● 오이른때 나온 책은 A5 사이즈입니다. 재판하며 신국판으로 편집하였습니다. 판형만 바뀌었을 뿐 내용 수정부분은 없습니다. 가격도 동일합니다.
※ 주의사항
● 성인이신 분들에게만 판매합니다.
● 원작 기반으로 성인이 된 두 사람입니다.
과거와 미래는 원작과 상관없는 상상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쪽이 주된 내용입니다.
● 살인, 시간(屍姦, necrophilia)에 대한 묘사가 있습니다.
● 오이카와 주변인물 사망 소재 있습니다.
● 모브X오이카와 요소가 있습니다.
● 오이카와가 우시지마와 이와이즈미를 부르는 호칭은 우시와카쨩, 이와쨩 으로 사용합니다.
일본식 호칭 표현을 불편하게 생각하신다면 예약을 삼가주십시오.
※ 샘플 페이지
아래는 샘플입니다. 도입부분이고 수정 전이라 실제로는 변경, 추가된 부분이 있습니다.
웹 가독성을 위해 문단 사이는 띄워두었습니다.
차갑게 내려앉은 공기 너머 멀리 보이는 논밭과 좁은 길은 답을 찾아야 하는 우시지마의 지루한 미래와 더불어 이곳 생활의 무료함과 불편함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는 차 문을 열고 내렸다. 버석이는 자갈을 밟고 현관으로 향했다. 열쇠구멍을 긁는 금속성이 낯설었다. 문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정기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집은 청결했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 곳 특유의 서늘한 냄새가 살가운 인사 대신 우시지마를 맞이했다. 그는 들고 온 가방을 내려놓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 마치 사진 속으로 걸어 들어온 것처럼 시간이 멈춘 듯한 적막한 실내를 돌아보았다.
실내는 우시지마가 마지막으로 이곳을 방문했을 때와 완전히 달랐다. 철제 창문과 짙은 녹색 벽지와 진한 갈색의 몰딩, 마찬가지로 짙은 갈색의 둔탁하게 조각된 장식품이 붙어있던 소파, 테이블, 동물의 가죽을 그대로 쓴 깔개는 어딜 가고 없었다. 대신 부드러운 크림색 벽지와 아이보리색 몰딩, 하얀 창틀, 검은색 가죽 소파와 유리 테이블이 자리하고 있었다. 바닥에 깔린 촘촘한 조직의 미색 카펫은 원래 바닥재인 것처럼 넓게 자리하고 있었다.
조부가 사들인 이 집은 그때부터 우시지마 가에서 계속 별장처럼 사용하던 곳이었다. 재작년 부친에게 명의를 이전하며 실내장식을 모두 바꾸었다는 말을 들었을 땐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 흘려들었는다. 그런데 막상 달라진 모습을 마주하자 더 이상 이곳에서는 우시지마가 기대하는 약간의 익숙한 안정감을 찾을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분명 지금의 실내 풍경이 우시지마의 취향에는 더 부합되는 것이지만 이 모습은 그가 굳이 이곳을 택한 이유를 말끔히 소용없는 일로 만들어 주었다.
우시지마의 삶은 이제껏 큰 변화 없었다. 태어난 집에서 자라 한 재단의 학교를 다니며 계속해서 배구를 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익숙한 이들이었고 생활 패턴은 단조로웠다. 그리고 그때는 몰랐지만 그것은 우시지마가 배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주었다. 다른 것들을 많이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학업과 배구에만 열중했었고 그것이 세계의 전부였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프로에 입단하며 그동안의 평화로운 삶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승리에 대한 압박은 고등학교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물론 그 압박은 우시지마에게 큰 문제는 아니었다. 언제나 최선을 다한다면 그에 걸맞은 성적을 낼 수 있다는 것이 우시지마의 신조였고 프로에 입단한 후에도 스스로 그것을 증명했다.
단지 바뀐 환경이 그를 당혹스럽게 했다. 안정적이지 못한 생활환경과 과도한 주변의 관심은 때때로 그의 집중력을 흩트렸다. 그것이 배구선수로인 우시지마 와카토시의 경력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조금씩 그를 지치게 하는 요인 중 하나인 것은 사실이었다.
휴식을 핑계로 우시지마는 이곳을 찾았다. 그런데 그를 맞이한 것은 익숙함과는 다른 실내 풍경이었다. 우시지마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지만 이내 늘 그렇듯 어쩔 수 없지. 라고 중얼거리며 발코니 쪽으로 다가가 두꺼운 조직으로 짜인 커튼 대신 자리한 하얀색 블라인드를 열었다. 오후의 햇살이 느긋하게 안으로 비쳐 들었다.
잠시 좁은 앞마당과 자신의 자동차, 그리고 마당 앞으로 난 길 너머의 숲을 내다보았다. 완전히 달라진 실내와 달리 바깥 풍경은 아무 것도 변한 것이 없어 보였다. 관리인이 이곳보다 더 위에 자리한 집에 몇 년 전부터 사람이 상시 살고 있어 밤에 자동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는 일이 있을 거라 말한 것이 기억났으나 그 집이 시야에 보이지 않기 때문인지 근방에 사람이 산다는 실감은 나지 않았다.
미국 교외에 지어진 주택을 본떠 만들어진 근처의 주거지들은 대부분 담이 없거나 혹은 낮은 울타리 정도로 구역을 나누고 있었다. 앞마당이라고 부를만한 장소에는 잔디밭이나 화단, 한쪽은 주차장으로 쓰는 경우가 많았다. 대신 뒷마당이 넓은 편이었고 집주인의 취향에 따라 수영장을 두거나 정원으로 활용했다. 우시지마의 조부는 손주들을 위해 그곳에 농구나 배구, 테니스를 할 수 있는 코트를 만들어 두었고 덕분에 우시지마는 종종 이곳에서 열린 가족 모임에 빠지지 않고 참석할 수 있었다.
우시지마는 아직 새것처럼 윤기 도는 검은색 소파를 지나 뒷마당으로 난 문을 열었다. 실내가 변한만큼 뒷마당 역시 다르게 변해 있는 것이 아닌지 궁금했다. 다행히 부친과 모친이 함께 하는 취미가 배드민턴이어서인지 코트는 그대로 남아있었다.
이곳으로 오겠다고 결심했을 때부터 도착한 지금까지 이 뒷마당에 자리한 코트에 대한 생각은 완전히 잊고 있었다. 그런데도 혹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조금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는 것이 자신은 결국 배구에서 완전히 멀어질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해주는 것 같아 쓴웃음이 났다.
뒷마당의 작은 정원도 코트도 제대로 관리가 잘 되어있었다. 부친이 이곳을 양도받기 몇 년 전 바뀐 관리인은 그 전 사람보다 훨씬 일을 제대로 하는 듯했다. 천천히 돌아보자 어디 하나 허투루 지나간 곳이 없어 보였다. 말끔한, 평소의 우시지마라면 분명 안정을 느꼈을 그 정돈된 모습이 어째서인지 오늘은 눈에 차지 않았다. 이곳에서 기대한 약간의 번잡함 혹은 오래된 것이 주는 갑갑함 속의 안정감이 사라졌기 때문인 듯했다.
그래도 완전히 바뀐 실내에 비한다면 뒷마당의 익숙한 모습은 차라리 편안하게 다가왔다. 우시지마는 천천히 코트를 한 바퀴 돌았다. 당장이라도 연습을 해도 문제없을 그곳을 확인하고 그는 다시 집안으로 돌아왔다.
주방으로 가서 냉장고문을 열었다. 오기 전에 부탁한 대로 영양소를 맞춰 한 끼 분량씩 나누어 담긴 같은 크기의 사각형 밀폐용기가 보였다. 그다지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점심도 먹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우시지마는 시계를 확인한 후 용기 두 개와 생수를 한 병 꺼냈다. 식탁 위에 두고 손을 씻은 후 젓가락을 가져가 앉았다. 페트병 뚜껑을 따고 용기를 열었다. 약간의 소금 외엔 조미료를 쓰지 않은 것인데도 청결한 집 안이어서 인지 음식물 냄새가 강하게 풍겨왔다. 우시지마는 젓가락을 들고 영양사에게 새로 받아온 식단에 맞춰 만들어진 음식물을 천천히 씹어 삼켰다. 강도 높은 운동을 한동안 하지 않는다 해도 건장한 신체를 유지하기 위해선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했다. 완전히 결정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이상 그에게 적절한 컨디션을 유지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우시지마는 충분히 숙지하고 있었다.
식기만 달그락거리는 조용한 식당에서 혼자만의 식사를 끝낸 그는 사용한 식기를 개수대로 옮긴 후 전기포트에 전원을 넣었다. 그리고 차통을 가지러 거실로 나왔을 때 그는 가방 하나를 차에 두고 왔음을 깨달았다. 묵묵히 밖으로 나가 차 뒷좌석을 열어 가방을 꺼냈다. 다시 문을 닫는데 자동차 엔진음이 들렸다.
관리인이 말한 사람인가보다 정도의 생각만으로 우시지마는 호기심이라곤 없는, 소리에 반사작용을 한 듯한 움직임으로 집 앞을 지나가는 차를 돌아보았다. 짙은 회색 도장의 평범한 외관을 가진 국산 SUV였다. 조수석에 사람을 태운 운전자는 운전을 거칠게 하는 것 같진 않았다. 그렇다면 밤에 저 차가 이 길을 지나간다 해도 그다지 방해 될 일을 없겠다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돌리려던 그 순간. 우시지마는 마치 귀신에게라도 홀린 듯 그 자리에서 굳었다.
별장으로 쓰이는 이 집에 사람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는지 고개를 돌렸던 차 안의 사람은 분명 우시지마와 눈이 마주쳤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보지 못한 듯한 무표정한 얼굴로 시선을 정면으로 돌렸다. 차는 가속도 감속도 하지 않고 서서히 멀어졌다. 엔진 음이 아주 멀어지고 나서야 우시지마는 움직일 수 있었다. 그는 차가 사라진 방향을 돌아보았다. 그 짧은 순간 꿈이라도 꾼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잘못 보았을 리가 없었다.
“오이카와…….”
우시지마는 정말로 오래간만에 불러보는 이름이 낯설어 입술을 굳게 닫았다.
미야기현이라고 해도 북동쪽 끝에 가까운 지역이다. 이런 곳에서 그와 마주칠 거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더구나 관리인이 말한 위쪽 집에 그가 거주한다는 건 정말로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우시지마는 그를 알아보자마자 불러세웠어야 했는지 잠시 고민했지만 곧 이제 그와는 그럴만한 사이가 아님을 상기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연락조차 닿지 않은 상대였다.
손에 든 가방을 고쳐들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일인용 다기에 뜨거운 물을 붓고 거름잔에 찻잎을 담아 그 안에 넣은 후 뚜껑을 닫았다. 들이마신 익숙한 차향을 다시 뱉어내며 어깨를 아래로 내린 우시지마는 그제야 긴 시간의 운전으로 몸이 굳어있음을 깨달았다. 고개를 좌우로 돌리다 뻐근한 어깨 근육을 손으로 눌렀다.
“계십니까?”
갑작스러운 소리에 우시지마는 고개를 돌렸다. 순간 오이카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초인종 소리와 함께 낮선 목소리가 들렸다. 울리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초인종의 울림을 의아해하며 우시지마는 현관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짧게 자른 머리카락의 장신의 남자, 자신을 이곳 관할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마츠카와 잇세이라고 소개한 그는 손에 들고 있던 과자봉투를 들어 올리더니 들어가도 되겠냐고 물었다.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어 우시지마는 말없이 문을 열어주었다. 꾸벅 고개를 숙이고 들어온 그에게 소파에 앉으라고 권한 후 부엌으로 돌아갔다. 다기를 하나 더 찾아 찻잎을 넣고 아직 뜨거운 물을 부었다. 쟁반이 어디에 있는지 잠시 고민했지만 곧 찾아내어 다기 두 개를 얹어 가지고 갔다. 엉거주춤 엉덩이를 드는 그 앞의 테이블 위에 다기를 하나 내려놓고 우시지마는 일인용 소파에 앉았다.
“흠….”
마츠카와는 말을 꺼내기가 겸연쩍었는지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무례하게 느껴질 정도로 우시지마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 시선이 어딘가 눈에 익어 우시지마가 눈을 가늘게 뜨자 마츠카와는 조금 어색한 동작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갑자기 찾아와서 죄송하게 됐습니다.”
우시지마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마츠카와는 깍지 낀 손등을 엄지로 문지르다 손을 풀어 머리를 긁었다.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위를 바라보더니 비장한 얼굴로 우시지마와 눈을 마주쳤다.
“나 기억 안나요?”
우시지마는 고개를 아주 살짝 기울이는 것으로 의문을 표했다. 마츠카와는 다시 자신의 뒷머리를 긁었다.
“하아…. 뭐, 세이죠에서야 오이카와밖에 기억 못하겠지. 아무래도.”
오이카와라는 말에 우시지마가 확연히 반응을 보이자 마츠카와는 다시 입을 열었다.
“같은 팀에 있었는데.”
그제야 우시지마는 마츠카와의 얼굴과 이름이 익숙한 이유를 깨달았다. 대전 상대 팀의 주전 선수들에 관한 정보는 당시엔 제대로 외우고 있었다. 아오바죠사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미들 블로커였지?”
“빙고.”
마츠카와는 그제야 숨을 깊이 내쉬고 털썩 소리를 내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사실 이렇게 찾아오고 싶지도 않았어.”
우시지마는 다기를 들어 올리며 눈으로 그럼 왜 온 거냐고 물었다.
“소장이 널 잘 알던데? 일방적으로.”
우시지마가 어릴 때부터 조부와 교류가 있던 그는 때때로 이곳을 방문하기도 했다. 우시지마가 본격적으로 배구를 시작한 이후 합숙이나 연습 등으로 가족과 휴가를 보낼 수 없게 되고 나선 거의 보지 못했으나 가족들을 통해 원치 않아도 소식은 들어 알고 있었다.
“처음엔 소장이 무슨 우시지마가 친척쯤 되는 줄 알았지.”
“아니다만.”
“알아. 소장이 너 경기하는 걸 너무 열심히 봐서 하는 소리야. 어찌나 자랑을 하는지. 누가 들으면 소장이 널 키운 줄 알겠더라고.”
긴장이 사라진 마츠카와의 행동에서 조심스러움이 사라졌다. 그는 다기 뚜껑을 열고 거름잔을 위 아래로 몇 번 움직인 후 뚜껑 위에 내려놓고 잔을 잡았다. 후후 소리 내어 뜨거운 김을 날리고 차를 마셨다. 예상보다 쓴 맛에 잠시 미간을 찌푸린 그는 잔을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소장이 너 좀 봤으면 하던데?”
“왜지?”
“글쎄. 유명한 배구선수 우시지마 와카토시와 친하다고 자랑이라도 하고 싶은가보지.”
“관심 없다.”
“그럴 거 같아서 내가 여기 온 거잖아. 사실 그쪽 할아버지와 아는 사이니까 너 오면 소개해달라고 한 거 같은데 통 안 왔잖아? 너 온다는 거 어디서 들었는지. 내가 입이 방정이지.”
우시지마가 이유를 물어보지도, 그만하라고 하지도 않자 마츠카와는 다시 말을 이었다.
“전에 네 경기 보는데 옆에서 고등학교 때도 굉장했단 소리 한 번 했다가 꼬치꼬치 캐물어서 다 말했잖아. 같이 경기도 한 사이면 잘 알지 않겠냐고 하면서 가서 말 좀 전하란다.”
“직접 오면 되는 일 아닌가?”
“어르신 체면에 그건 싫으신 거지.”
“왜지? 어차피 이렇게 네가 말하면 마찬가지 아닌가?”
“너 진짜.”
마츠카와는 말을 하려다 말고 큭큭거리며 웃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시지마는 그 웃음이 유쾌하지 않았다. 우시지마의 우호적이지 않은 분위기에 마츠카와는 이내 웃음을 멈추고 다시 찻잔을 잡았다. 한 모금 차를 마시고 잔을 내려놓을 동안 우시지마는 입을 열지 않았다.
“오이카와가… 네 험담 많이 했는데.”
오이카와라는 말에 찻잔을 향하던 우시지마의 손이 잠이 멎는 듯했지만 오이카와 본인의 이야기가 아닌 것을 알자마자 손은 본래의 목적지로 향했다.
우시지마의 눈에 마츠카와의 입술이 비뚜름하게 올라간 것이 보였다. 오이카와는 우시지마에 대한 적의를 본인을 앞에 두고도 숨기지 않았으니 팀 동료인 마츠카와에게 자신에 대해 호의적인 발언을 하지 않았으리란 건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그러니 마츠카와의 말이 그다지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단지 여기서 오이카와의 이름이 왜 나오는지. 그 이유가 파출소장이 자신에게 관심이 있다는 말보단 흥미를 끌었다.
“눈치도 없고 직선적이고 재수 없다고 엄청 시끄러웠는데 말이지.”
오이카와가 아니라도 종종 듣던 말이기에 우시지마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적당히 식은 차를 마시며 언제 눈앞의 남자가 용건을 다 말하고 돌아설지 만을 생각했다.
“별로 변한 게 없나 봐.”
스스로도 눈치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우시지마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눈치가 없다고 마츠카와가 말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떤 점이 눈치가 없다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묵묵히 그를 보자 마츠카와는 한숨을 쉬며 다시 뒷목을 긁었다.
“시간 나면. 파출소 한번 들러줘.”
“…소장 때문인가?”
“어. 와서 식사라도 한 번 하자고 하고 그 동안 할아버지에게 말씀 많이 들었다고 해줘”
이번에는 마츠카와가 파출소장이 원하는 것을 마치 자신의 생각을 권유하듯 말한다는 걸 우시지마는 눈치 챌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그렇게 해야 할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갈 생각은 없다.”
“역시?”
소장의 바람과 달리 마츠카와는 우시지마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다. 이곳으로 찾아와서 예전에 같이 시합을 한 적이 있다고 말해봐야 그것이 우시지마에게 아무런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않으리란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단 한 사람, 아오바죠사이의 캡틴, 우시지마가 끝없이 탐내던 미야기현 최고의 세터인 오이카와라면 모를까.
“적당히 바쁘다고 이야기 해둘게.”
결과가 어떻든 우시지마에게 말을 전달한다는 임무를 마쳤으니 더 이상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마츠카와는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시지마 역시 마츠카와와 더 할 이야기가 없기에 주저 없이 그를 배웅하기 위해 일어섰다. 마츠카와가 현관문 손잡이를 잡았을 때 우시지마가 입을 열었다.
“오이카와를…….”
우시지마를 돌아보는 마츠카와의 눈에 의문이 서렸다. 마츠카와가 이곳의 경찰이라면 오이카와를 알지 않을까 해서 그의 신변에 관한 걸 물으려 했던 우시지만 곧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말을 바꿨다.
“오이카와는 잘 지내나?”
“글쎄 잘 지내지 않을까?”
“연락하지 않나?”
“넌 시라토리자와 팀원들과 다 연락하고 지내?”
“…….”
“그런 거지. 본지 좀 됐어. 연락도 안 오고. 너야말로 연락 안 하나?”
“…….”
우시지마의 침묵을 긍정으로 해석한 마츠카와는 다음에 보자는 말을 남기고 문을 열고 나섰다. 그다지 다시 볼 생각이 없었지만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인 우시지마는 닫힌 문을 걸어 잠갔다. 다시 소파로 걸어가 자리에 앉았다. 미지근해진 차를 한 모금 마시고 테라스 쪽 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작은 앞마당, 자동차. 그리고 오이카와를 태운 차가 지나갔던 길이 보였다.
이곳은 그리 크지 않은 마을이다. 마츠카와가 오이카와에 대해 모른다면 윗집에 사는 이가 오이카와가 아닐 확률이 높았다. 관광지도 아닌 이곳을 그냥 지나갈 일은 없을 테니 조수석에 있던 사람이 위쪽 집의 주인인 것일지도 모른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두 사람의 관계를 떠올리다 우시지마는 생각하기를 그만두었다. 이제는 오이카와의 일이 자신에겐 상관없다고, 그렇게 생각을 잘라내며 남은 차를 모두 들이켰다.
찻물이 거의 줄어들지 않은 마츠카와의 다기와 자신의 것을 개수대에 옮겨놓은 그는 슈트케이스를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아래층과 마찬가지로 위층 실내장식 역시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늘 사용하던 방문을 열자 잘 정리된 침대가 보였다. 화려한 조각이 된 원목에 짙은 색 칠을 한 가구 대신 모든 것이 직선과 완만한 곡선만으로 이루어진 검고 하얀 것들로 채워져 있었다. 공기마저 달라진 듯한 그 공간의 이질적인 모습을 피해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계절의 변화 말고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바깥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 창문을 향하려다 발을 멈춘 우시지마는 수트케이스를 열어 옷을 정리했다.
텅 빈 옷장에 옷을 채우고, 빈 가방을 치우고 그제야 창을 향했다. 우시지마에게 익숙한, 양쪽으로 열리는 나무문 대신 자리한 신소재의 슬라이딩 창문을 열었다. 무언가를 찾듯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하지만 눈에 익은 숲 너머로 보이는 것은 없었다.
조금 전 보았던 무표정한 오이카와의 얼굴이 떠올랐다. 우시지마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때와 같은 얼굴이었다.
장례식장에 갈 정도의 친분이냐고 하면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시지마는 그 소식을 듣고 모른 척 할 수는 없었다. 오이카와의 향후 행방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기적인 생각도 그곳으로 걸음 하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 날씨는 맑았고 검은색 넥타이는 답답했다. 신사에 마련된 그 장소에는 몇 명, 우시지마에게 익숙한 얼굴도 보였다. 오이카와는 무표정한 얼굴로 우시지마를 마주보았다. 우시지마가 기억하는 미소가-호의적이지 않은- 보이지 않았다. 가족을 잃은 슬픔도 그로 인한 세상에 대한 분노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절차에 따라 조문을 끝내고 오이카와 앞에 선 우시지마는 가볍게 고개를 숙였을 뿐 다른 어떤 말도 꺼내지 않았다. 위로를 건넬 만한 사이도 아니고 무슨 말을 한다고 해도 위로가 될 것 같지 않았다. 그렇게 우시지마는 자신이 들었던 소식의 진위여부만을 확인한 채 밖으로 나왔다.
“와줘서 고마워. 저 녀석 아무래도 상태가 안 좋아서. 미안하게 됐다.”
우시지마 뒤를 따라 나와 가족도 아닌데 오이카와의 태도에 대해 사과한 그는 그곳의 공기가 갑갑한지 넥타이의 매듭에 손가락을 끼워 느슨하게 만들었다. 어릴 때부터 함께 배구를 해왔다는 걸 우시지마도 알고 있을 정도로 오이카와와 가까운 사이인 이와이즈미의 사과에 우시지마는 고개를 저었다.
“사고라고 들었는데.”
“어,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냐. 진짜 사람 일 알 수 없지.”
“괜찮은가?”
“오이카와? 괜찮을 리가. 저 녀석 어제부터 묻는 말에도 대답 잘 안 해. 줄초상 치르고 싶나. 진짜.”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의 상태가 정말로 걱정된다는 얼굴로 미간을 찌푸렸다.
“앞으로의 일이 걱정이겠군.”
“당장 무슨 생각이 들겠어. 시간 좀 지나봐야 알겠지.”
“그렇겠지.”
“그래도 너 올 거라곤 생각 못했는데. 와줘서 고맙다. 나중에 저 녀석한테도 제대로 인사하라고 할게.”
“아니다. 그냥… 기운 내라고 전해주면 고맙겠군.”
“그래.”
쓴 웃음을 지은 이와이즈미는 다시 한 번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안으로 사라졌다. 우시지마는 이와이즈미와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바닥에 깔린 돌의 요철이 거추장스러웠다. 극도로 감정을 숨긴 오이카와의 눈동자가 끊임없이 그의 뒤를 좇아오는 것 같았다. 어서 빨리 매끄러운 코트 위에 서고 싶었다. 신사를 채 벗어나기도 전에 우시지마는 목을 죈 넥타이를 풀어냈다.
오이카와가 진학할 대학이 내정되어 있다는 정도만 들었기에 어디로 가는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가족의 죽음에 직면한 그에게 우시지마는 아무것도 물을 수 없었다.
그러나 우시지마에게 다음은 찾아오지 않았다. 오이카와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어딘가로 사라졌다. 학교로 찾아가기까지 했지만 우시지마는 오이카와를 만날 수 없었다. 수소문으로 그의 절친한 친구인 이와이즈미에게 연락할 수 있었지만 그 역시 오이카와의 소식을 모른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의 얼굴에는 실망과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오이카와는 배구를 계속하겠다고 했다. 그의 배구에 대한 열정의 방향은 그것이 비록 자신과 같지 않다고 해도 티끌만한 거짓 없는 진실임을 우시지마는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오이카와가 모든 것을 버리고 사라졌다는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가족의 죽음은 분명, 인생을 바꿀 수 있을 정도로 큰일이지만 우시지마가 아는 오이카와라면 그 일로 배구를 그만둘 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눈앞의 이와이즈미 역시 마찬가지였기에 오이카와의 행방을 모른다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저렇게 떨리는 것이라고 우시지마는 생각했다.
배구를 하는 오이카와에 대한 것이라면 남들 이상으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배구를 하지 않는 오이카와에 관해서 우시지마가 아는 것은 거의 없었다. 알고 있는 것이라곤 고작 휴대폰 번호 뿐. 며칠 전부터 그 번호는 수신음 대신 없는 번호라는 안내 음성을 들려주었다.
우시지마는 주인이 사라진 번호를 지우지 못한 채 프리미어 리그에 입성했다. 압도적인 실력을 가진 그가 곧장 주전 선수대열에 합류했다. 그래도 성실히 임했다한들 부활동이었던 고등학교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그 치열한 환경 속에서 우시지마가 오이카와에 대해 떠올리는 시간이 줄어들어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잊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우시지마는 때때로 오이카와를 생각했다. 그의 정확한 서브와 토스뿐만 아니라 득점 때의 웃는 얼굴, 실점 때의 분한 표정. 팀원들에게 지시할 때의 팔의 움직임. 턱을 들어 올리고 아래를 내려다보는 차가운 시선, 그와 반대로 고개를 숙인 채 위로 치켜 떠 노려보는 눈동자. 단 한 번, 시라토리자와에게서 한 세트를 가져갔을 때 보였던 감격에 벅찬 얼굴. 실제의 오이카와를 보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어렴풋한 과거는 뚜렷한 형체를 가지고 우시지마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마지막은 늘 감정을 숨긴 무표정한 오이카와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얼굴은 조금 전 보았던 오이카와의 얼굴로 바뀌었다. 우시지마는 변함없는 풍경만이 보이는 창밖을 내다보는 것을 멈추고 창문을 닫았다.
오이카와가 배구를 그만둔 이유를 알고 싶다. 하지만 이제 와서 배구를 하고 있지 않은 오이카와에게 그것을 물어본들 어떤 의미가 있을지 의문스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오이카와가 자신에게 구구절절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으리라는 것도 우시지마는 알고 있었다.
생각하기를 그만두고 우시지마는 가벼운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 의사는 되도록 안정을 취하는 것이 좋다고 했지만 번잡한 생각이 들 때는 몸을 움직이는 편이 나았다. 밖으로 나오자 숨통이 트이는 듯했다. 우시지마는 이곳에서 주로 러닝을 하던 길을 향하려다 걸음을 멈췄다. 몸을 돌려 산 위로 올라가는 쪽을 바라보았다. 잠시 망설이다 오르막으로 가볍게 뛰기 시작했다.
오래지 않아 집 한 채가 보였다. 이곳에선 특이할 것 없는 외관, 그 앞에는 조금 전 보았던 자동차, 전문가를 고용하지 않은 듯 엉성하게 정리한 정원수와 집 옆에 큰 창고가 있었다. 커튼을 친 창문에서 빛은 새어나오지 않았다. 자연스레 발이 멈췄다. 우시지마는 자신이 무엇을 기대하는지도 모른 채 흔히 볼 수 있는 은색 무늬가 들어간 회색 커튼으로 가려진 창문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십여 초. 우시지마는 묵묵히 가던 길을 재촉했다.
해가 지기 전에 산을 내려오려 했던 우시지마가 다시 그 집 앞을 지날 때 하늘은 상당히 어두워져 있었다. 조금 거칠어진 숨을 고르며 우시지마는 그 앞에 도착하지 전부터 조금씩 속도를 늦췄다. 여전히 커튼 사이로 빛은 새어나오지 않았다. 대신 창고의 문틈 사이로 흘러나온 약한 주황색 빛이 바닥을 비추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우시지마는 주택 창문 대신 그 창고 문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올라갈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은 채 그곳에 묶었던 발을 잠시 후 떼어냈다.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점심때와 마찬가지로 식사를 마쳤다. 물을 끓이고 차를 한 잔 우려 소파에 앉았다. TV를 보는 습관은 없지만 아무런 계획을 세우지 않은 날이 낯선 우시지마는 무의미하게 전원 버튼을 눌렀다. 며칠 째 시끄러운 국회의원의 비리 연류 기사가 마무리되고 있었다. 이어진 화면엔 나무 사이에 둘러진 폴리스라인 주변을 살피는 경찰들이 나타났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지명이 자막으로 지나갔다. 인적이 드문 장소에서 일어난 사고사망이라는 추측을 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시지마는 채널을 돌렸다. 버라이어티쇼 프로그램과 요리 프로그램, 영화와 음악 방송 등을 지나도 흥미를 끄는 채널은 없었다. TV를 끄고 리모컨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어두워진 밖은 보이지 않고 유리창엔 자신의 모습만이 비쳤다. 천장의 작은 크리스털 샹들리에 대신 자리한 모던한 조명등에서 흘러나오는 하얀 빛이 눈부셨다.
이처럼 무의미한 시간을 앞으로도 계속 견딜 수 있을지. 우시지마는 스스로에게 그 답을 들려줄 수가 없었다.
<<후략>>
'행사 안내 > 책 샘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시오이] 황제폐하의 여우목도리 / 오이카와씨의 사람이불 (0) | 2015.08.16 |
---|---|
[우시오이] RELATIVE HUMIDITY [상대습도] (0) | 2015.07.18 |
[마츠오이우시] 아무것도 아닌 일 (0) | 2015.06.28 |
[S] 아무것도 아닌 일 샘플 페이지 (0) | 2015.06.27 |
[쿠로츠키] DAY BY DAY (0) | 2015.06.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