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꿈이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우시지마는 마음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기억의 퍼즐을 끌어내 눈앞의 풍경에 하나하나 맞추어 보았다. 봄 햇살, 활짝 핀 벚꽃, 졸업장을 손에 든 학생들. 그것은 전부 우시지마의 기억과 일치하면서도 그가 이제 기억하지 못할 만큼 오래된 일이었다.
고등학교의 마지막 날. 그날의 풍경은 모두 잊었지만 우시지마는 자신이 교문을 나서 어디로 향했는지 만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시계를 보았다. 두 시 오 분. 이십 오년 전 자신이 교실을 나서며 확인한 시각과 같았다. 우시지마는 잠시 망설이다 걸음을 옮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라토리자와 학원 교문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졸업식 날이어서인지 지나가는 이들은 외부인을 보며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다. 우시지마는 그곳에 서서 기다렸다. 몇 분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 우시지마가 기다리던 이가 교문을 향해 다가왔다. 아직 어린, 무표정한 얼굴의 교복차림인 자신이었다. 가방과 졸업장, 후배들이 건넨 꽃다발을 손에 들고 졸업식의 감회 같은 건 전혀 보이지 않는 얼굴로 일상의 하루인 듯한 걸음으로 우시지마에게 다가왔다.
꿈이라면, 그래. 꿈인 게 좋겠지.
우시지마는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어린 자신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가 우시지마를 돌아보았다. 단정하게 교복을 갖춰 입은 열여덟 살의 자신은 자신이 기억하고 있던 것보다 훨씬 어렸다.
“무슨 일이십니까.”
- 우시와카쨩은 진짜 귀엽지 않다니까??!!
뽀로통하게 뺨을 부풀리던 이의 말이 갑자기 귓가에 겹쳐졌다. 낯선 이의 접촉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어린 자신을 눈앞에 둔 우시지마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무슨 일이신지 모르겠지만….”
“오이카와를 알지?”
“누구시죠?”
그 이름을 말하자 단숨에 상대의 눈에 날이 섰다. 그때의 자신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그때 그에게 있어 오이카와는 무척이나 특별한 사람이었다. 사랑이라고 부르기에 모자라지 않은, 누구보다 소중한 이였다. 하지만 어렸던 자신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소중하게 대해라.”
아직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조차 모를 어리석은 자신의 눈에 어린 의문을 읽으며 우시지마는 다음 말을 이었다.
“후회는 남기지 않는 편이 좋아.”
어린 아이들이 어른들의 충고 따윈 깊이 새겨듣지 않음을 알면서도 우시지마는 말할 수밖에 없었다. 꿈속에서만이라도 자신이 불행하지 않았으면 했다. 잃고 난 후에 스스로를 원망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매년 묘비에 바치는 꽃 한 송이가 얼마나 미련스러운 것인지, 꿈속의 아직 어린 자신은 알지 못했으면 했다.
아주 이상한 사람을 보는 눈으로 어린 자신이 한 발 물러섰다. 우시지마도 자신이 어떻게 보일 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말해주지 않을 수 없었다. 오이카와를 잃고 그에게 해주지 못한 많은 것들을 떠올리며 괴로워하던 시간을 또 반복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우시지마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어린 그는 자신의 길을 갔다. 우시지마는 다시 붙잡지 못한 손을 아래로 내려 주먹을 쥐었다. 후회하지 않도록. 정말로 다시 이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이후에 얻을 부와 명성을 모두 빼앗겨도 좋을 텐데.
“오이카와….”
주인 없는 이름을 부르며 우시지마는 눈을 감았다.
“우시와카쨩! 오늘은 왜 이렇게 늦잠이야?”
갑작스런 소리에 놀라 우시지마는 눈을 떴다.
“오이카와…?”
“응?”
자신과 마찬가지로 나이를 먹은 오이카와의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앗?”
우시지마는 누운 채로 팔을 뻗어 오이카와를 끌어안았다. 균형이 무너진 오이카와의 몸이 우시지마의 몸 위로 쓰러졌다.
“아프잖아!”
오이카와는 버럭 화를 내면서도 우시지마의 품을 빠져나가진 않았다.
“오이카와….”
“왜 그래? 악몽이라도 꿨어?”
우시지마는 대답 대신 오이카와를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그제야 자신이 꿈을 꿨음을 깨달았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 교문을 나서는 자신을 붙잡은 남자가 있었다. 꿈속의 자신이 그였다.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 뿐이었다.
하지만 그가 한 말은 내내 우시지마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소중하게 대하라고. 왜 그런 소리를 하는지 그땐 몰랐지만 오이카와를 만나면 만날수록 그 말이 우시지마를 옭아맸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야 우시지마는 방법을 몰랐을 뿐 자신이 오이카와를 소중히 하고 싶어 했던 것임을 깨달았다. 그때야 누군지 모를 그 남자의 조언에 감사했다.
“숨 막혀!”
“오이카와….”
그는 오이카와를 잃고 어떻게 살 수 있었을까.
우시지마는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오이카와가 웃으며 ‘나도.’라고 대답해주었다. 다시 한 번 사랑한다고 말하자 오이카와는 우시지마의 입술에 입맞춰주었다.
우시지마는 오이카와를 끌어안은 채 눈을 감았다. 이쪽이 현실이라 정말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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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수...그냥 트위터에 열아홉 살 우시지마에게 찾아와 오이카와를 소중히 대하라고 말하는 마흔다섯 살 우시지마.... 라고 쓰다가 문득...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