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나는

 

발간일 : 2019년 07월 20 오이른 배포전 '토오루맨틱'

커플링 : 우시지마X오이카와 (R-19)

 

※ 책 사양

A5 40페이지

 

※ 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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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나는.



15세의 오이카와 토오루


거울 앞에 선 오이카와는 어색한 넥타이 매듭을 다시 고쳤다. 나름대로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지만 역시 아직은 하얀색 재킷이 어색했다. 분명 키가 많이 클 거라고 우겨 맞춘 교복은 조금보다 조금 더 많이 컸다. 소맷단을 접는 게 나을 지경이었던 중학교 입학식 때 입은 교복 소매는 졸업 무렵 손목 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부모님은 이제 그때처럼 크진 않을 거라고 말했지만 오이카와는 분명 제 키가 많이 클 걸 알았다.

길이가 긴 재킷을 움켜쥔 손이 손등을 덮은 소맷자락 안으로 완전히 사라진 모습이 거울에 비쳤다. 오이카와는 헐렁한 소매를 가볍게 흔들었다. 얼른 키다 더 크면 좋겠다. 더 높은 곳에 손이 닿으면 좋겠다. 더 높이 뛰어오르고 싶다. 우시지마를 이기고 싶다.

“칫….”

마지막에 생각난 이름은 오이카와의 의도가 아니었다. 저도 모르게 떠오른 우시지마의 무뚝뚝한 얼굴을 지우듯 오이카와는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토오루. 하지메 쨩 왔어.”
“네. 나가요!”

밖에서 들리는 어머니의 말에 오이카와는 큰 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서둘러 가방을 둘러맸다. 새 가방의 빳빳한 감촉이 마음에 들어 오이카와는 손으로 가방끈을 만지작거렸다. 방문 밖으로 나가자 현관에 선 이와이즈미가 보였다. 오이카와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빨리빨리 안 나오고 뭐 해.”
“세이죠 교복 입은 오이카와 씨가 너무 멋지지 뭐야.”

이와이즈미는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그 얼굴엔 정확하게 ‘아침부터 맞고 싶냐?’라고 쓰여 있었다. 오이카와는 다시 웃으며 운동화에 발을 집어넣었다.

“다녀오겠습니다.”

밝은 목소리로 인사한 후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날씨 좋아!”
“그러게.”

매년 찾아오는 4월이지만 환경이 새롭게 변해서인지 쾌청한 날씨가 기꺼웠다. 오이카와는 양손을 높이 들어 올리고 숨을 한껏 들이마셨다. 헐렁한 소매가 팔꿈치까지 내려갔다. 드러난 맨살에 닿는 봄바람 또한 기분 좋게 느껴졌다. 오이카와는 양손을 깍지 껴 손바닥을 위로 해 쭉쭉 뻗어 올렸다. 가볍게 몸을 흔들며 걷자니 옆에서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걷던 이와이즈미가 오이카와를 돌아보았다.

“좋냐?”
“응.”
“뭐가 그렇게 좋아?”
“그냥. 다. 고등학생이라는 것도 좋고, 교복도 좋고. 배구도 새로 시작하는 거 같아서 좋구.”

고등학교 배구는 중학교 배구와 완전히 달라 보였다. 한층 프로에 가까운 그 모습을 얼마나 선망했는지 모른다. 누군가는 그저 한 살 더 먹는 것만으로 변하는 건 별로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오이카와는 자신에게 허락되지 않은 경기장, 그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때마다 하루라도 빨리 그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새로 시작이라.”

정면을 보고 걸으며 이와이즈미가 중얼거렸다. 오이카와는 그런 이와이즈미 앞으로 불쑥 고개를 들이밀었다.

“토비오 쨩 때문에 그러는 거 아니거든?”
“누가 뭐랬냐?”
“이와 쨩, 얼굴로 말하고 있잖아.”
“뭐래. 니가 찔려서 그런 거 아냐?”
“아닙니다아.”

2년 뒤에 어떤 형태로 마주하든 작년의 자신과는 다를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오이카와에겐 카게야마보다 선결한 문제가 있었다.

“우시와카는 바로 선발되겠지?”

괴동 우시지마. 오이카와는 중학교 때 이미 어지간한 고등학생 스파이커보다 낫단 소릴 들어온 우시지마를 떠올렸다. 우시지마는 배구를 시작한 후 언제나 코트 위에 서 있었다. 1학년이라고 해서 시라토리자와 배구부에서 우시지마를 선발에서 제외할 리 없었다.

“그렇겠지.”

이와이즈미는 당연한 사실을 굳이 언급하고 싶지 않다는 듯 심드렁하게 답했다.

“오이카와 씨는 올해는 무리려나.”

배구부에 세터가 없다면 모를까, 1학년이 3학년을 제치고 선발로 나가긴 쉽지 않았다. 올해 3학년이 된 아오바죠사이 배구부의 세터가 유망주라 더 그랬다.

“한 세트만이라도 나갈 수 있으면 좋겠는데.”
“인터하이는 힘들어도 봄고엔 가능하지 않겠어?”
“그렇겠지? 이와 쨩이 봐도 가능성 있지?”
“오냐.”
“우시와카 나올 때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우시와카 이길 생각밖에 없어?”
“당연하지.”
“우시와카 이기려고 배구 해?”

이와이즈미의 질문을 들은 오이카와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가던 길을 따라 걷던 이와이즈미는 몇 걸음 더 걷다 곁에 오이카와가 없음을 깨닫고 발을 멈췄다. 고개를 돌려 오이카와를 바라보았다. 

“우시와카를 이겨야 전국 갈 수 있잖아.”
“그야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 또 아냐. 시라토리자와가 1차전에서 질지.”
“이와 쨩, 말해놓고도 말도 안 되는 거 같지 않아?”

이와이즈미는 어깨를 으쓱이곤 다시 앞으로 걸었다. 오이카와는 보폭을 크게 해 금세 이와이즈미를 따라잡았다.

“우리 현에선 계속 시라토리자와가 전국 가잖아. 우시와카도 있으니까 이번에도 갈걸?”
“그래. 그래.”
“이와 쨩! 듣고 있어?”
“어.”
“이와 쨩은 우시와카 이기고 싶지 않아?”
“이기고 싶지. 그 얼굴 찌그러지는 거 봐야 속이 시원하겠다.”

우시지마가 공을 코트에 내리꽂는 모습만 생각하면 이와이즈미도 이가 갈렸다. 이와이즈미가 제 말에 동의하자 오이카와는 신이 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치? 그치?”
“고등학교는 중학교 때랑 다르니까. 해볼 만할 거야.”
“맞아. 호락호락하지 않을 거라구. 얼른 배구부 들어가고 싶다.”

몸을 뒤로 돌려 뒷걸음으로 이와이즈미와 같은 방향으로 걸으며 오이카와가 말했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이와이즈미가 숨길 생각도 없는지 얼굴을 찌푸렸다.

“이와 쨩은 싫어?”
“너랑 또 하루종일 같이 붙어 있을 생각 하니까 벌써 머리가 아프다.”
“오이카와 씨처럼 잘생기고 배구도 잘 하는 사람을 맨날 보면 좋아해야지!”
“미쳤냐.”
“너무해.”
“누가 너무한데? 아, 맞다. 나 끝나고 시내 갈 건데, 같이 갈래?”
“어? 웬일이야? 갈래. 갈래.”
“살 거 있어서.”
“끝나고 이와 쨩 교실로 갈게. 역시 이와 쨩이랑 같이 다녀줄 사람 오이카와 씨밖에 없지?”
“죽을래?”

이와이즈미가 눈을 부라리자 오이카와는 과장된 동작으로 자신의 몸을 끌어안았다.

“오이카와 씨는 이렇게 이와 쨩을 위하는데. 이와 쨩은 맨날 무서운 소리만 하구. 오이카와 씨는 상처받았답니다아.”
“시끄러워.”

거의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이와이즈미는 십여 년간 보아왔고, 앞으로도 계속 보게 될 오이카와의 행동을 타박하며 등굣길을 재촉했다.


***


너무 언급을 많이 해서 당사자가 소환된 것은 아닐까. 오이카와는 눈앞에 보이는 익숙한 얼굴을 보며 그런 황당한 생각을 했다. 오늘 이 시간에, 그것도 제법 규모가 있는 복합쇼핑몰 특정 층에서, 이와이즈미가 매장에 있는 동안 화장실에 갔다가 나온 그 순간에, 어떻게 우시지마가 이곳에 있을 수 있는 것인지. 오이카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게 정말 우연일까? 순간적으로 우시지마가 자신을 스토킹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당연히 그럴 리 없음을 알면서도,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고서는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코트 위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지긋지긋한데 배구와 관련 없는 곳에서까지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오이카와는 아직 우시지마가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 사이 얼른 이 자리를 벗어나기로 마음먹었다. 이와이즈미가 있는 매장에 바로 가려면 우시지마를 지나쳐야 하지만 반대편으로 빙 돌아가는 방법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오이카와는 곧장 몸을 돌렸다.

“오이카와?”

소용없는 짓이었지만.

오이카와는 시선을 위로 올려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앞 머리카락이 눈앞에서 팔랑거리며 치솟았다가 내려왔다. 경련이 이는 입술 끝을 애써 붙잡으며 다시 몸을 돌렸다.

“이게 누구야. 우시와카 쨩. 여기서 다 보네.”
“그렇게 부르지 마라.”

우시지마 와카토시(牛島 若利), 성과 이름에서 한자 한 글자씩을 가져와 부르는 우시와카(牛若)라는 이름은 일본의 유명한 무장 미나모토노 요시츠네(源 義経)의 아명과 같았다. 누가 먼저 우시지마 와카토시를 우시와카라고 부르기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오이카와는 그 이명이 우시지마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분명 헤이안 시대 말, 전설적인 무장 요시츠네의 아명과 같다는 가벼운 이유로 불렸을 게 분명했다. 요시츠네는 드라마며 만화에 잔뜩 나오는 인물이니 강하고 유명한 무장에 괴동 우시지마를 빗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시라토리자와의 경기방식이 최대 전력인 우시지마에게 리시브 부담을 지우지 않으려는 편이라 장군님 보호하는 것 같기도 하고, 본인이 괴동이라 불릴 정도로 엄청난 공격력을 갖고 있기도 해서 더더욱 국사를 이끌던 무장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요시츠네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보다 요시츠네가 유명한 무장이고 우연히 그의 아명과 우시와카 글자가 같다는 이유만으로 붙여진 것만 같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요시츠네는 그 비극적인 죽음으로 인기를 얻은 불우한 영웅이었다. 난세를 평정하고도 젊은 나이에 비참하게 죽은 무장 이름을 가져다 대는 건 지금 괴동이라고 불려도 결국 비참하게 추락할 거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이카와는 우시지마를 경기에서 이기고 싶은 것이지 그의 몰락을 원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껄끄러운 감정도 있고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도 꼭꼭 우시지마를 우시와카 쨩이라고 부르는 건 우시지마의 싫어하는 표정을 볼 수 있어서였다. 표정 변화가 별로 없고 재미없는 동갑내기의 싫어하는 얼굴을 사양할 만큼 오이카와는 착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시지마가 그 아명을 싫어하는 이유가 요시츠네가 불우한 영웅이어서라는 섬세한 생각 때문이 아님을 알기 때문에 더 편하게 놀리듯 부를 수 있었다. 우시지마에게 직접 물어본 적은 없지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의 집안과 이름 탓인지 더 어릴 땐 공공연히 도련님이란 뜻으로 와카사마(若様 わかさま)라고 불렸던 듯했다. 우시와카도 어떻게 보면 우시지마가의 도련님 같은 의미로 읽힐 수 있고 우시지마는 그쪽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아직 어린 도련님 같은 취급이 싫은 거 같으니 오이카와는 진심을 담아 우시와카, 거기다 더 어린애 취급을 하는 것 같이 우시와카 쨩이라고 부르는 걸 멈출 수 없었다.

이와이즈미에게 말했다간 한심한 취급을 당할 게 뻔한 생각을 하며 오이카와는 한껏 웃는 얼굴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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