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21일 마츠오이 교류회 원고입니다.
He & I
마츠카와 잇세이는 전설의 드래곤이다. 그 자체가 전설이라기보단 드래곤이라는 존재 자체가 전설적인 존재이기에 그는 전설이었다.
백여 년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까지 보기 힘들지 않았던 드래곤은 고작 백여 년 만에 전설적인 존재가 되었다. 이유는 드래곤이 그들 자신을 인간으로부터 보호하지 못해서였다. 만년을 살고 다시 만년을 산다 일컬어지는 드래곤이 고작 백 년도 채 살지 못하는 인간에 의해 그 수가 급격히 줄어든 데에는 인간에 대한 드래곤의 안일함에 그 원인이 있었다.
드래곤은 먼 옛날 초원의 한 마리 짐승과 다를 바 없던 인간이 점차 짐승과 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도구를 쓰고 두 발로 걷고 불을 사용하며 단순한 표식을 넘어 그들의 이야기를 기호로 남기기 시작하는 인간들에게서 호기심 어린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하지만 드래곤은 인간을 흥미롭게 관찰하였을 뿐 그들이 드래곤에게 위협이 되리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드래곤은, 후에 인간에게 드래곤의 긴 밤이라고 알려지는, 그들의 커다란 몸을 안전한 보금자리에 뉘어 자연과 동화된 채 긴 시간을 보내며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마법을 깨우치도록 행하는 일이 인간을 관찰하는 것보다 더 중요했다. 그래서 시간의 축적이 유의미하지 않은 드래곤은 인간이 빠르게 자연을 정복하는 만큼이나 그들 안에 비대하게 자리 잡은 욕망을 눈치채지 못했다. 드래곤과 다른 방법으로 인간은 그들의 언어를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했고 그런 인간의 삶이 드래곤의 지식으로 전해졌음에도 그 이전에 인간과 같은 생명체가 없었기에 드래곤은 수많은 다른 생명체가 그러하듯 인간 역시 그저 자연의 일부라고 생각해왔다.
그것은 마츠카와 역시 마찬가지였다. 인간의 언어, 인간의 기운, 인간의 삶. 마츠카와는 다른 드래곤과 마찬가지로 그의 보금자리에 비쳐든 빛을 반사해 반짝이는 금덩이에 턱을 괴고 두 눈을 감은 채 흘러들어오는 인간의 지식을 음미했음에도 그것을 단순한 지식이라 생각했을 뿐 드래곤의 위험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인간은 드래곤이 그동안 알던 수많은 생명체와 달랐다. 인간이란 종족은 흔할 땐 별 신경을 쓰지 않다가 그것의 수가 줄어 희귀해지면 굉장히 관심을 보이고 그 희귀한 것을 더 희귀하게 만드는 못된 능력을 갖추고 있었고 드래곤이 그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상당수의 드래곤이 인간의 손에 목숨을 잃은 후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드래곤은 그 일로 인간을 해하려 하진 않았다. 삶과 죽음의 영속성을 깨우친 드래곤은 대다수 제 동료의 죽음을 자연의 또 다른 삶으로 받아들였다. 마츠카와 또한 생사의 이치를 알고 있었으므로 위대한 드래곤의 영원한 안식을 슬픔으로 애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인간의 그 욕심 사나운 모습이 상당히 불만스러웠다.
한때 담비는 흔한 동물이었다. 털이 보들보들하고 귀여운 생물을 마츠카와는 무척 좋아해서 인간의 모습을 할 때면 그에게 다가온 담비를 가끔 목에 두르고 다니기도 했다. 따듯하고 보들보들하고 귀여운 그 생명체를 마츠카와는 특별히 사랑했다.
하지만 인간이 담비의 가치를 알게 된 후 그 개체는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담비가 줄어든 만큼 인간 세상의 화려한 의복이 늘어났다. 담비가 줄어드니 인간 세상에서 비싼 값으로 거래되었고 그러자 인간들은 혈안이 되어 담비를 찾았다. 어느샌가 마츠카와의 보금자리 주변에서 담비가 보이지 않았다.
마츠카와는 도대체 인간들에게 담비가 왜 그렇게 필요한지 궁금해 인간으로 변해 인간의 마을로 내려갔다. 그리고 마츠카와가 본 것은 화려한 장식과 함께 비싼 값에 팔리는 담비털가죽이었다.
인간 그 각각의 개체는 두꺼운 가죽도 날카로운 이빨도 없는 연약하기 짝이 없는 존재지만 꽤 높은 지능을 가진 탓에 가장 지능이 높고 강한 드래곤을 비롯한 이 세계의 수많은 생명체에게 위협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탐욕스러웠기에 그들이 원하는 것이면 모두 손에 넣으려 했다. 가장 완전한 존재에 가깝다고 말해지는 드래곤조차도 손에 넣은 인간에게 담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귀여워 마지않던 담비마저도 보기 힘들어지자 마츠카와는 삼십여 년 전에 인간에게 살해당한 드래곤이 그랬던 것처럼 인간 마을을 불태워버릴까 하는 생각을 했으나 곧 마음을 접었다. 인간은 넓은 세상 여기저기에 서식해있고 그들은 드래곤이라는 존재를 정말로 탐욕스럽게 노렸다. 드래곤의 육체에서 분리되어도 천 년 동안 빛난다는 드래곤의 심장을 노렸고 특수한 마법을 걸지 않은 인간의 무기로는 상처조차 낼 수 없는 드래곤의 가죽을 벗기려고 했다. 드래곤이 나타나면 인간들은 힘을 모아 드래곤을 찾아 나섰고 끈질기게 추적해 드래곤을 죽였다. 드래곤의 보금자리를 찾아내 그 안의 보물을 약탈했다. 당연히 인간들도 큰 대가를 치러야 하지만 그들은 그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인간의 그런 속성을 잘 아는 마츠카와는 쓸데없이 귀찮은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아 결국 제 본모습을 보이는 걸 그만두었다.
그러는 동안 마츠카와는 인간이 그리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고 자연은 그런 인간 역시 제 일부러 받아들였음을 깨달았다. 드래곤은 무료할 것도 없었다. 게다가 마카츠카와는 그리 부지런한 드래곤이 아니었으므로 그는 일부러 인간 자체에 대한 호기심을 끊으려 했다. 하지만 인간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물건에 관한 관심만은 완전히 끊어 낼 수 없었다. 그는 인간의 시간으로 일 년의 절반을 잠으로 보내고 남은 절반의 일부를 금을 채굴하는 데 썼다. 채굴이라고 해봐야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므로 잠시간만 시간을 쓰면 그는 그의 보금자리를 금덩이로 채울 수 있었다. 그러고 나면 마츠카와는 사냥을 떠났다. 금을 짊어지고, 그래 봐야 마법 공간에 두는 것이니 빈손으로, 시끄러운 도시로 가서 인간의 예술품을 금과 바꾸었다. 보석의 원석을 가공해 아름다운 장신구로 만드는 건 드래곤의 마법으로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보석을 가공하는 것이야 당연히 할 수 있지만 어떻게 다듬고 배열하느냐 하는 문제를 마츠카와는 해결하지 못했다. 쉽게 말해 손재주는 지독하게 없는 마츠카와는 그냥 대금을 지불하고 예술품을 사들인다는 단순한 결과를 도출해 문제를 해결했다. 때때로 특정한 인물에게 의뢰받아 만들어지는 예술품은 금을 주고도 살 수 없었다. 그 경우 마츠카와는 그 물건을 합의하지 않은 방법으로 구입하곤 했는데 물건을 슬쩍 가져오고 금을 그 자리에 두는 방법이었다. 샘이 빠른 그는 그래도 그 경우엔 물건값을 넉넉히 쳐서 금을 두고 왔다. 그리고 그는 그 물건들을 자신의 보금자리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다. 한참 자다 일어나서 마법으로 빛나는 구슬의 빛을 받아 반짝이는 그것들을 볼 때면 무척 기분이 좋았다. 게으른 드래곤은 잠에서 깨어나서도 한참을 턱을 바닥에 댄 채 그 반짝이는 것들은 지켜보았다. 그러고 있노라면 시간은 훌쩍 지났다. 천 년이고 만 년이고 그렇게 느긋한 삶을 즐길 생각이었다. 드래곤의 수명은 정해진 것이 없으므로 언젠가 때가 되어 제 생명이 끝나는 날이 온다면 그때도 이렇게 고요한 자신의 보금자리에서 영원한 안식을 찾을 예정이었다.
그러던 마츠카와는 어느 날 한 인간을 보았다. 용을 타고 하늘을 날고 싶다고 말하는 그는 그 불가능한 일이 정말로 실현 가능하리라 믿는 듯 눈을 빛냈다. 마츠카와는 그의 말을 들었을 때 저도 모르게 제 발을 내려다보았다.
지금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원래 마츠카와는 대단히 컸다. 인간은 마츠카와의 손가락 하나, 아니 손톱보다도 작은 크기였다. 인간 중에 때때로 드래곤을 길들여 마치 그들이 말이나 소를 타는 것처럼 타고 다닐 수 있다고 믿는데 터무니없는 소리였다. 애초에 드래곤이 인간에게 복종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만약 드래곤이 인간이 원하는 대로 그를 태워 날아다녔다면 그건 그 인간 개인에 대한 호감이지 인간의 명령을 따르기 때문이 아니었다. 인간은 어찌 저리 오만한지. 그들이 아름다운 예술품을 만드는 능력을 지녔음은 인정하지만 역시 마츠카와는 인간에게 호감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문제의 발언을 한 인간은 조금 달랐다. 마츠카와는 지금까지 살아오며 인간에게 이런 기분을 느끼는 건 처음이었다. 용을 타고 하늘을 날고 싶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이 지나치게 환하게 빛나고 있어서, 꿈을 꾸는 눈동자가 마츠카와가 며칠 전에 사들인 보석보다도 아름답게 반짝여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찬찬히 뜯어보면 별다를 것 없는 인간인데 어째서인지 눈이 갔다.
예술품은 이 땅에 존재하는 수많은 평범한 것을 어떻게 갈고 닦느냐에 따라 다른 법. 같은 인간이라 하더라도 저 자신을 갈고닦아 빛나기에 눈이 가는 인간이 있는 법이었다.
그래서 마츠카와는 그 인간을 손에 넣기로 했다. 그가 자신에게 호감을 보인다면 순조롭게, 그렇지 않다면 그의 의지 따윈 상관하지 않고 제 마음대로. 마츠카와가 이제껏 그래 왔듯이.
마츠카와는 일단 옷을 갈아입었다. 근사한 장신구도 제대로 걸치고, 인간은 기본적으로 속물적인 존재라 돈 있는 사람에게 약한 법. 이렇게 접근해서 실패한 적이 없었으므로 마츠카와는 자신 있고 여유 넘치는 걸음으로 다가갔다. 개암색 머리카락과 그 머리 색을 닮은 보석 같은 눈동자를 가진 그가 마츠카와를 기다리듯 저 앞에서 빛나고 있었다.
먼 곳을 보고 먼 곳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드래곤은 이미 그와 그를 둘러싼 남자들이 나눈 대화 내용을 모두 알고 있었다. 마츠카와는 그들이 앉은 테이블로 다가가 슬쩍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순간 그들은 의심쩍은 눈초리로 마츠카와를 훑어보았으나 이내 돈 자랑하기 좋아하는 부잣집 청년을 벗겨 먹을 속셈을 숨기지 않고 웃는 낯으로 그를 환영했다. 마츠카와는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잠깐 이야기를 들었는데 흥미가 있으니 자신도 이 대화에 낄 수 있게 해달라고 하며 그들을 위해 술을 주문해주었다. 남자들은 그런 마츠카와를 기꺼이 환영하며 그들의 대화를 이어나갔다.
서쪽 국경 쪽 가파른 산에 드래곤의 보금자리가 있다는 말을 했을 때 마츠카와는 마시던 술을 뿜을 뻔했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정말 그렇게 가까운 곳에 있는 게 가능하냐고 물었다. 인간은 제 발로 걸어 올라오기도 힘든 절벽 틈새에 있는 자신의 보금자리를 그들이 어떻게 아는지 궁금했다.
직접 다녀온 사람은 없지만 그곳엔 틀림없이 드래곤이 산다고 주장하는 한 남자는 그곳 지형이 험해 드래곤이 살기에 최적화된 곳이라는 말을 덧붙이며 그럴싸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던 마츠카와는 슬쩍 그가 흥미를 느낀 남자를 떠보았다. 그러면서 그에게 드래곤의 심장이나 가죽에 흥미가 있냐고 물었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그가 원하는 건 드래곤을 타고 하늘을 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이들이 그를 비웃으며 드래곤의 비늘과 발톱이 얼마나 값나가는지 목에 핏대가 서도록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그는 고개를 저으며 드래곤의 신체를 돈으로 바꾸는 것보다 드래곤을 타고 꼭 하늘을 날아보고 싶다고 했다.
마츠카와는 테이블에 팔꿈치를 대고 손에 턱을 괸 채 하늘을 나는 게 어떠했는지 떠올려보았다. 인간 중에도 소수의 인간만이 아는 대로 드래곤은 그가 지닌 날개의 힘이라기보단 마법의 힘으로 하늘에 떠 있는 것에 가까운데 인간의 수가 늘고 드래곤의 수가 줄어들면서 본래 모습으로 운신이 힘들어져 마츠카와는 자신이 본래 모습으로 하늘을 날아 본지 꽤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마츠카와에겐 시간이 많이 있고 그는 인간뿐만 아니라 그 무엇으로든 변할 수 있었다. 필요하다면 들짐승으로 변해 숲을 거닐 때도 있고 때때로 날짐승으로 화해 하늘을 날기도 했으니 본래 보습으로 하늘을 날지 못했다고 해서 특별히 아쉽거나 하진 않았다.
그리고 드래곤이 하늘을 나는 건 인간이 두 발로 걷는 것과 같았다. 당연한 일이기에 감흥 같은 건 없었다. 하지만 날지 못하는 인간에게 비행이라는 행위는 특별한 듯했다. 인간이 희소한 것에 가치를 매기듯, 그들 스스로 얻을 수 없는 불가능한 일에 대해 열망하는 듯 보였다.
마츠카와는 그 생각을 하자 조금 기분이 나빠졌으나 눈앞의 인간이라면 제 머리 위에 태워 한 번쯤 하늘을 날아줘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가 얼마나 기뻐할지 조금 궁금하기도 했다.
마츠카와는 일행을 위해 술을 더 주문해주었다. 식당 주인에게 숨겨 놓은 질 좋은 술을 달라고 했다. 마츠카와가 내민 금이 든 주머니는 곧장 신선한 맥주와 포도주로 바뀌었다. 테이블에 둘러앉은 이들을 모두 취하게 하기에 부족함 없는 양이었다.
밤은 이제 시작인데 다들 술독에 빠진 듯 휘청거렸다. 하늘을 날고 싶다고 말했던, 자신을 오이카와 토오루라고 소개한 남자도 술에 취해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마츠카와는 아수라장이 된 그 테이블에서 오이카와를 부축해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들을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간 마츠카와는 마법을 사용해 오이카와와 함께 제 보금자리로 이동했다. 빛나는 구슬의 빛을 받아 사방이 번쩍거리는 그의 보금자리 한가운데 그를 눕혔다. 아래에 온천이 흐르는 탓에 바닥이 차갑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인간을 맨바닥에 눕히면 안 될 것 같아 잠시 고민한 마츠카와는 보금자리 저 안쪽에 놓아둔 화려한 무늬의 양탄자를 떠올리고 마법으로 그것을 찾아와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오이카와를 눕혔다.
그리고 세상모르고 잠든 오이카와를 내려다보며 또 잠시 고민에 빠진 마츠카와는 이내 마법으로 양탄자를 둥실 띄워놓고 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칠흑의 날개를 접고 빛을 받아 반짝일 뿐 본디 새카만 몸을 바닥에 웅크렸다. 긴 목을 내려 턱을 바닥에 대고 보금자리를 한 바퀴 두르고도 남을 긴 꼬리를 말아 갈무리했다. 짙은 붉은색 홍채가 자리한 노란 눈동자를 굴려 위치를 선정한 그는 오이카와가 누운 양탄자를 제 머리 옆으로 가져왔다. 잠을 깰 생각이 없어 보이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본 마츠카와는 이내 자신도 천천히 눈을 감았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대지의 움직임과 마법의 힘이 천천히 드래곤의 몸 안으로 흘러들었다.
마츠카와가 눈을 뜬 것은 오이카와의 움직임을 느껴서였다. 그는 제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존재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소리도 못 내고 상황을 인지하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렸는데 마츠카와에게는 그 움직임이 무척 부산스럽게 느껴졌다.
마츠카와는 눈을 뜨기에 앞서 공기를, 정확히는 공기 중의 힘을 들이마시기 위해 입을 크게 벌렸다. 인간이 하품하는 것처럼 한껏 공기를 들이마셨다 내뱉은 그는 그제야 천천히 눈꺼풀을 열어 오이카와를 바라보았다.
제 머리 옆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지만 손톱의 절반 크기도 안 되는 인간은 지나치게 작았다. 오이카와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마츠카와를 올려다보았다. 원래도 하얗다고 생각한 얼굴이 완전히 희게 질린 것을 보자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마츠카와가 고개를 조금 옆으로 기울이자 오이카와는 기겁하며 뒤로 물러섰다.
마츠카와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그가 다시 눈을 뜨자 저 멀리에 오이카와가 있었다. 느긋하게 그쪽으로 걸어가자 오이카와는 완전히 그 자리에서 굳어 눈을 깜박이지도 않고 마츠카와를 보고 있었다. 마츠카와는 그런 오이카와에게 가까이 다가가 슬쩍 허리를 숙여 그의 눈앞에 제 얼굴을 들이밀었다.
“잘 잤어?”
“너, 너….”
“어젠 잘만 부르더니.”
“진짜 맛층?”
마츠카와라고 자신을 소개하자 멋대로 ‘맛층’이라고 불렀던 것을 잊지 않았는지 오이카와는 의심 가득한 얼굴로 그렇게 물었다. 마츠카와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여 그 질문에 긍정을 표했다.
“그, 이거, 그….”
“응. 나 드래곤.”
묻고 싶어 하는 게 뻔히 보여 마츠카와는 곧장 말해주었다. 오이카와는 입을 떡 벌리고 마츠카와를 보더니 곧장 인간의 크기로 보기엔 너무나 거대한 드래곤의 보금자리를 휙휙 고개를 돌려 둘러보았다.
“진짜, 진짜 맛층이 드래곤이야? 그것도 엄청 희귀하다는 블랙 드래곤?”
“이제 얼마 안 남아서 나 말고도 다들 엄청 희귀해.”
“그, 그런 거야?”
“응. 인간이 많이 잡았잖아.”
“아니, 그건….”
“사과 안 해도 돼. 니가 잡은 것도 아니고.”
마츠카와의 말에 오이카와는 눈에 띄게 안도하는 얼굴을 했다.
“그럼 나 여기 왜 데려왔어? 잡아먹는 거야?”
“음?”
생각지도 않았던 말에 마츠카와가 되묻자 오이카와가 다시 말했다.
“잡아먹을 거냐구….”
“내가? 널?”
“응.”
“왜?”
“아니, 그게 아니면 날 데려올 이유가 없잖아.”
“난 인간을 먹는 취미는 없어.”
“진짜?”
마츠카와는 고개를 끄덕이곤 몸을 돌려 제 보금자리를 둘러보았다. 잠시 고민하던 그가 손을 앞으로 뻗자 어디선가 나타난 담비 가죽을 덧댄 두꺼운 망토가 나타났다. 제 보금자리 근처에 자주 보였던 담비가 사라져 아쉬워하던 마츠카와가 다시 담비를 만났을 때 담비는 망토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아무리 드래곤이라 해도 죽은 생물을 살릴 수는 없으므로 왠지 짜증스러워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망토를 가져왔다.
“입어.”
어차피 이렇게 된 것 구석에 쌓여있는 것보단 이게 낫겠지 싶어 오이카와에게 내밀자 그는 멀뚱멀뚱 망토와 마츠카와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드래곤 타고 날고 싶다며. 위엔 인간한텐 추워. 그 꼴로 가면 추워서 죽고 싶을걸?”
“그, 그래?”
“응.”
오이카와는 의심을 거두지 못하면서도 망토를 받아 주섬주섬 몸에 걸쳤다.
“저리 가 있어.”
마츠카와는 제가 움직이기 귀찮아 오이카와에게 멀리 물러서라고 손짓을 했다. 오이카와는 흘끔흘끔 마츠카와를 돌아보며 그가 고개를 끄덕일 때까지 물러섰다. 충분한 거리가 확보되자 마츠카와는 본 모습으로 변했다. 조금 전에 봤으면서도 또 놀랐는지 오이카와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마츠카와는 그런 오이카와 앞 바닥에 손등을 대고 손바닥을 내밀었다. 오이카와는 여전히 의심 섞인 눈초리로 마츠카와를 보았지만 결국 그의 손바닥 위로 기어올랐다. 마츠카와는 손을 가볍게 움켜쥐고 고개를 숙여 제 머리 위에서 손을 펼쳤다. 미끄러져 머리 위로 떨어진 오이카와가 비명을 질렀다. 마츠카와는 그 반응에 콧방귀도 끼지 않고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입구 근처까지 간 그는 날개를 펼쳤다. 밖에서 내려다보면 바위산 사이의 까마득한 절벽. 그것이 마츠카와의 보금자리 입구였다. 드래곤이 하늘을 나는 데 도움닫기 같은 건 필요하지 않았다. 거대한 몸집이라곤 상상할 수 없는 움직임으로 마츠카와는 천천히 위를 향해 날아올랐다.
오이카와는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새까만 하늘에 쏟아질 듯한 별 아래서 자신은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츠카와의 말처럼 코끝이 얼 것만 같은 추위였으나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을 만큼 신기한 풍경이 제 아래 펼쳐져 있었다.
높은 산보다 더 높은 곳에서 끊임없이 변하는 지형을 내려다보는 기분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벅찬 감동이었다. 드래곤을 타고 하늘을 날고 싶다고 말했지만 그것이 거의 불가능한 일임을 잘 아는 오이카와는 지금 눈 앞에 펼쳐진 모습이 마치 꿈만 같았다. 자신을 태운 드래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동쪽 하늘이 서서히 밝아올 때까지 하늘을 날았다.
비행에 정신이 팔려 존재 자체가 전설이자 세상 그 어떤 생명체보다 강하고 현명하다고 알려진 드래곤이 한낱 인간인 자신에게 왜 이런 호의를 보이는지 그제야 의문이 생긴 오이카와는 그에게 들릴지 확신은 없었지만 물어보았다.
“왜 오이카와 씨를 태워줘?”
“그냥.”
대답은 곧장 귓속에서 울리듯 들려왔다.
“심심해?”
“별로, 그런 건 아닌데.”
“오이카와 씨가 뭐 해주면 돼?”
“뭘 해줘?”
“맛층이 오이카와 씨 소원 들어준 거잖아. 그럼 오이카와 씨도 맛층에게 뭔가 해줘야지.”
“그런 생각 한 적 없는데.”
“드래곤은 원래 욕심이 없어?”
“아니.”
“그럼 왜 대가를 바라지 않아?”
“그런 걸 바라면 미리 이야기했겠지.”
“그런가.”
“응. 다 봤어? 날 밝으면 좀 귀찮아져서. 이제 돌아간다.”
“어? 어. 응.”
막상 돌아간다고 하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언제까지나 이렇게 있을 순 없으니 오이카와는 목을 길게 빼 돌아갈 때까지만이라도 이 모든 걸 눈에 담기 위해 열심히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여명이 깃든 대지는 별빛이 내리던 그것과 또 모습을 달리했다. 높은 언덕이 그저 주먹만 한 바위처럼 보이고 넓은 농경지가 양피지를 조각낸 듯 조그맣게 보였다. 태어나 처음으로 세상을 본 것처럼 오이카와는 눈 앞에 펼쳐진 그 모든 것이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둘러보는 사이 마츠카와의 보금자리에 도착했다. 절벽 사이 무척 좁아 보이는 틈으로 곧장 하강하자 오이카와는 저도 모르게 눈을 꼭 감았다. 공기가 귀를 스쳐 지나는 소리가 사라지고 어딘가 따듯한 공기가 느껴져 천천히 눈을 뜨자 어느새 보금자리 안이었다. 마츠카와는 바닥에 앉아 턱을 아래로 내렸다. 오이카와는 그것이 저더러 내려가라는 신호임을 깨닫고 조심스레 굴곡진 표면을 타고 아래로 내려왔다. 한 아름으로도 껴안을 수 없을 듯한 커다랗고 새까만 드래곤의 비늘이 오이카와의 눈앞에서 어지럽게 반짝였다.
오이카와가 바닥에 완전히 내려서자 마츠카와는 곧장 인간의 모습으로 변했다. 오이카와는 그제야 마츠카와를 제대로 살펴볼 수 있었다.
“드래곤일 때랑 인상이 완전히 다르네?”
“그래?”
“응. 드래곤인 쪽이 훨씬 귀여워.”
“귀여워?”
“응. 맛층 어제 봤을 때 좀 수상해 보였단 말야. 그런데 드래곤일 땐 귀여워.”
“드래곤 보고 귀엽다고 하는 건 너밖에 없을 거 같은데.”
오래 살고 볼 일이라고 생각하며 마츠카와가 피식 웃자 오이카와는 지금 비웃는 거냐며 눈을 치켜떴다.
“그래서, 어땠어?”
“응? 뭐가? 아, 엄청 좋았어! 굉장해! 맛층은 매일 그걸 보는 거야? 부러워!”
“부러워할 건 아닌데. 좋았다니 다행이네.”
“응. 정말 굉장했어. 상상도 못 했거든. 맛층 진짜 고마워.”
“뭐, 인사 받을 정돈 아니야.”
“아니야. 정말 고마워. 오이카와 씨 진짜 일생의 소원이었다구.”
“그런가.”
“응. 그래서 말인데. 맛층. 오이카와 씨가 뭔가 해줄 건 없어?”
“별로.”
“하지만 맛층이 오이카와 씨 소원 들어줬잖아. 오이카와 씨도 맛층한테 뭔가 해주고 싶어. 아, 일단 이거 돌려줄게.”
오이카와가 그제야 생각났는지 몸에 둘렀던 망토를 벗어 마츠카와에게 건네려 하자 마츠카와는 손을 내저었다.
“너 가져.”
“엑? 이거 담비털가죽 아니야? 비쌀 텐데.”
“여기 둬봐야 그냥 자리만 차지하지 뭐. 잘 어울리네. 가져가.”
“하지만….”
“나 부자야. 신경 쓰지 마.”
“…그건 보면 알겠어. 맛층. 드래곤 보금자리는 화수분이라더니 진짜 그 소리가 왜 나왔는지 알겠어.”
천장이 까마득히 높은 거대한 동굴 안에는 죽을 때까지 다 셀 수도 없을 것만 같은 온갖 보석과 금이 널려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마법 구슬에서 쏟아져 나오는 빛을 받아 더없이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금은보화가 이 정도쯤 쌓여있으면 가지고 싶단 생각조차 안 드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다시 한 번 그 안을 둘러보았다.
“왜? 가지고 싶은 거 있어?”
“어? 아니. 너무 엄청나서 그냥 봤어.”
오이카와는 혹시 자신이 드래곤의 보물을 노리는 사람처럼 보일까 싶어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맛층 진짜 오이카와 씨가 뭔가 해줄 거 없어?”
“그냥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거니까 신경 쓰지 마.”
“그래도….”
오이카와는 정말로 평생 꿈만 꿔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을 현실로 이루어준 마츠카와에게 뭐라고 좋으니 보답하고 싶었다. 고작 어제 처음 만난 사이인데 이런 엄청난 것을 받기만 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음….”
“뭐든 말해 봐.”
“뭐든?”
“응.”
“그럼 나랑 잘래?”
“뭐어?!”
생각지도 못한 말에 오이카와는 소리를 높여 되물었다. 마츠카와는 여전히 조금 심드렁한 얼굴로 오이카와를 보고 있었다.
“가,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맛층!”
“싫어?”
마츠카와는 필요 없다고 했는데 자신이 우긴 것이니 여기서 싫다고 하는 것도 좀 우습단 생각에 오이카와는 멋쩍게 웃었다. 남자와 아예 경험이 없다면 미쳤냐고 펄쩍 뛰었을지도 모르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오이카와는 남자와 할 수 있는 즐거운 일에 대한 걸 그럭저럭 알고 있었다. 그러니 싫냐고 묻는다면 꼭 싫은 건 아니었다. 잡아먹힐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에 비한다면 훨씬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하고 드래곤과 몸을 섞는다니 평생 다시 못 해볼 경험일 것 같아 흥미도 조금 생겼다.
“맛층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던 거야? 오이카와 씨를 노렸던 거지? 웅큼하게. 그런 사람, 아니 드래곤일지 몰랐네.”
오이카와는 장난스레 웃으며 한쪽 눈을 감았다 떴다.
“필요 없다고 했는데 요구하라고 한 건 너잖아. 남자랑 경험 있는 거 아니까 좀 궁금해졌어.”
“엣? 그걸 맛층이 어떻게 알아?”
“보면 알아.”
“뭐야. 마법 같은 거야?”
“비슷한 거지.”
“드래곤 님 앞에 비밀은 없는 거구나?”
마츠카와는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였다.
“싫으면 됐고.”
“아냐. 하자.”
“정말?”
“응.”
오이카와는 고개를 끄덕이곤 냉큼 마츠카와의 목에 팔을 둘렀다.
“맛층. 경험 있어?”
“아니.”
“흐음. 동정 드래곤?”
“문제 있어?”
“전혀. 방법은 알아?”
“대충?”
“그럼 좋아.”
그렇게 말한 오이카와는 마츠카와의 입술에 가볍게 제 입술을 댔다. 그리고 그를 마주 보고 씩 웃자 마츠카와 쪽에서 먼저 오이카와의 입술을 자신의 입술로 물었다.
“따듯해서 신기해.”
“그래?”
“응. 뭔가 맛층 차가워 보인다구. 서늘할 거 같은데 의외로 따듯하네.”
마츠카와는 대답 대신 다시 오이카와의 입술에 입 맞췄다. 오이카와는 그런 마츠카와의 목에 두른 팔에 힘을 줘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진득하게 서로의 입술을 문지르고 있자니 마츠카와의 손이 오이카와의 허리를 둘러왔다. 오이카와는 허리를 뒤로 꺾으며 마츠카와를 끌어당겼다. 오이카와의 허리를 받쳐 안은 마츠카와가 고개를 숙이고 자연스럽게 두 사람의 몸은 아래로 내려갔다. 어느새 등을 양탄자 위에 대고 눕게 된 오이카와는 잠시 입술을 떼고 마츠카와에게 물었다.
“드래곤은 생식행위 안 해?”
“해.”
“그런데 경험 없어? 맛층 여자친구도 없었던 거야?”
“드래곤은 자연의 일부야. 존재하지 않아도 존재하지. 자손에 대한 열망은 꼭 필요한 게 아니야.”
“그럼 왜 오이카와 씨랑은 하려고?”
“흥미가 생겼어.”
“드래곤은 엄청 현명하다며. 그런데 이런 거에 흥미가 있어?”
“깨달아서 안다고 해도 체험하고 싶을 때가 있지. 여기 있는 보물들도 마찬가지. 드래곤은 모두 이 아름다운 것들이 무의미하다는 걸 알아. 하지만 아름다운 것에 대한 흥미가 있으니까 모으는 거야.”
“이상한 생물이네.”
“인간도 마찬가지 아닌가?”
“인간은 무의미하다고 생각 안 하잖아.”
“하긴. 인간은 너무 많은 것에 의미를 부여하지. 가령 이게 내 첫 경험이라든가 하는 것 말이야.”
“응. 엄청 의미부여 하고 싶어. 드래곤의 처음이 오이카와 씨라니 굉장하잖아?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구.”
“영광이지?”
“네에. 엄청 영광입니다.”
오이카와는 웃으며 마츠카와의 입술에 다시 입 맞췄다. 어느새 입은 옷이 전부 사라진 두 사람은 알몸으로 서로를 껴안았다. 오이카와는 마츠카와의 등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따듯한 기운이 손바닥을 통해 전해졌다.
“맛층은 왜 오이카와 씨에게 흥미가 생겼어?”
“글쎄. 그냥?”
“그런 게 어딨어.”
“드래곤은 아름다운 것에 흥미를 느낀다고 아까 말했잖아.”
“그 이야긴 오이카와 씨가 아름답다는 거야?”
“글쎄.”
“솔직하게 말하라구. 동정 드래곤.”
마츠카와는 아무 말 없이 오이카와의 입술을 집어삼키듯 입 맞췄다. 오이카와는 처음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능숙한 마츠카와의 행동이 얄미워 그의 등을 손으로 내리쳤으나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양팔로 오이카와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또 태워 줄 거야?”
“응.”
한 번 태워줄 때마다 그와 이렇게 부둥켜안아야 하는가 잠시 고민했지만 뺨에 닿는 입술의 느낌이 나쁘지 않아 오이카와는 그래도 상관없단 생각이 들었다. 드래곤과 함께 하늘을 날고 드래곤의 보금자리에서 그와 살을 맞대다니,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건 정말 특별한 일이었다. 드래곤의 입술이 따듯하다고 말한다면 누가 믿어줄까 생각하며 오이카와는 잠시 떨어져 나간 마츠카와의 입술에 제가 먼저 입술을 마주 댔다.
정말로 특별한 경험이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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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썼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걸 썼습니다....
동정드래곤 맛층....
오래 살아도 우리 맛층이 동정일 수 있죠.
표지 맛층 엉덩이가 넘 빵빵해서 개인적으로 쬐끔 신경쓰인달까 뭐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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