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 1,184 팔로워 (우시지마 등번호 X 오이카와 신장) 기념 알티 이벤트 글로 디지뇽님의 리퀘입니다.
위안
거울처럼 반짝이는 대리석을 밟은 오이카와는 그를 비웃기라도 하듯 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바닥을 노려보다 이내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를 본 알현실에 들어가지 못한 하위 귀족들이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저들끼리 속삭이는 모습이 보였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으나 오이카와는 그 말의 내용을 바닥에 깔린 대리석에 비친 그들의 모습만큼이나 훤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측은함의 가면을 쓰고 조소하고 냉소하는, 그네들이 가장 잘 하는 짓거리였다. 오이카와는 그들에게 눈을 돌리지 않고 똑바로 앞을 바라보았다. 황가의 문장이 금으로 아로새겨진 순백의 문은 오이카와가 제 손으로 열지 못했던 그대로 굳게 닫혀 있었다.
감회가 서린 눈으로 그 문을 바라보는 탓에 절로 걸음이 느려졌다. 그러나 곧장 그런 그를 재촉하기에 오이카와는 다시 큰 보폭으로 그 문을 향해 걸었다. 그의 걸음은 황제의 가장 자랑스러운 군대에 속한 영예로운 장교의 교본과도 같았다. 하지만 지금 오이카와가 입은 군복은 한때 그의 왼쪽 가슴에서 자랑스레 반짝이던 약장이 모조리 떨어져 나간 것으로 군인의 가장 치욕스러운 모습이었다. 원래라면 죄인은 제국의 군복을 입을 수도 알현실에서 황제를 알현할 수도 없으나 황제의 뜻이 있어 오이카와는 지금 이 모습으로 알현실 앞에 섰다. 그가 문 앞에 다다르자 무거운 문이 양쪽으로 열렸고 오이카와는 당당히 고개를 든 채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문 앞에서부터 왕좌가 자리한 단까지 길게 이어진 붉은 융단이 그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주신이 친히 그 손바닥에 상처를 내어 흘린 피거품에서 일어난 다섯 개의 발톱을 가진 새하얀 독수리는 제국의 상징이자 황제의 표식이었다. 왕좌의 양옆, 황제의 발을 받친 단에서 시작해 까마득히 높은 천장까지 이어진 기둥에는 주신과 그의 손에서 날아오르는 독수리와 그 독수리에게 축복을 내리는 여신들과 여신을 숭배하는 요정의 모습이 마치 지금이라도 하늘로 날아오를 듯 정교하고 아름답게 아로새겨져 있었다.
오이카와는 그 기둥 한가운데 자리한 왕좌를 똑바로 바라보며 앞으로 걸었다. 저 자리를 얻기 위해 그가 희생한 무수히 많은 것들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황제는 패왕이나 현군은 아니었다. 아직 황제의 자리에 오르기 전 그는 누구보다 뛰어난 군인이었다. 전투의 승기를 쥐어 전쟁에서 승리를 거듭하여 제국의 영토를 넓힌 그는 그 영광을 기꺼이 그의 백부인 선황의 발아래 바쳤다. 제국의 첫 황제의 연호가 시작된 이래 가장 드넓은 제국의 모습이 지도에 그려졌다. 선황은 제 조카를 두려워하면서도 가장 강대한 제국의 이름을 갈망하기에 그를 내치지 못했다. 결국 그는 제국의 후계자가 되었고 신에게 마지막 기도와 제국의 미래에 대한 유언을 고하지 못한 채 병환으로 서거한 선황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되었다. 우시지마 와카토시. 대대로 이어온 제국의 주인의 이름 중 가장 강대한 황제의 이름이었다.
황제의 기가 곧 승기를 뜻하는 곳에서 황제의 군대에 몸담은 자들 중 그 어느 누가 황제를 위해 검과 소총을 드는 것을 망설이겠는가. 황제의 검 끝이 가리키는 모든 영토를 황제의 발아래 두기 위해 황제의 군대는 황제와 함께 까마득한 지평선에서 다시 다음 지평선으로, 끊임없이 멀고 먼 지평선을 향해 나아갔다.
영속된 승리가 가져다준 명예에 오이카와 역시 제 군복의 제일 위 단추를 채울 때마다 자신이 황제의 검이라는 사실에 긍지를 얻었다. 황제를 향한 충성과 조국에 대한 자부심은 오이카와를 비롯한 황제의 군대를 더욱 더 강하게 만들었으며 그것은 다시 황제가 승리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승리의 여신이 태양신의 화원에서 핀 꽃으로 만들었다는 황금의 화관이 영원히 황제의 머리위에서 빛나기를, 오이카와 역시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오이카와는 알게 되었다. 황제가 그 자리에 앉기 위해 그 손을 담근 피가 비단 적국의 군사들만의 것이 아님을. 오이카와가 황제를 위해 우시지마와 함께 전장의 먼지를 뒤집어쓰는 동안 황성에 몰아친 보이지 않는 피바람을. 우시지마의 명에 의해 이루어진 수많은 죄업을.
오이카와는 꼿꼿이 몸을 편 채 걸었다. 예법대로 황제가 허락하기 전에는 더 나아갈 수 없는 거리에서 정확히 군화의 뒤축을 붙였다. 비록 두 손은 등 뒤에 결박되어 있으나 오이카와는 제국 장교라는 이름에 걸맞은 바른 자세로 그 자리에 섰다.
단지 오이카와는 무릎 꿇지 않았다. 이제 그는 황제의 검이 아니었다. 황가의 전복을 꿈꾸며 황제에게 날붙이를 들이민 자는 더 이상 황제의 신하일 수 없었다. 오이카와는 황제가 제 몸에 뒤집어씌운 군복에 모멸감을 느꼈다. 여전히 ‘너는 내게 속한 자다.’ 질 좋은 피복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황제의 뜻이 그러하다 해도 오이카와는 더 이상 그를 자신의 왕으로 섬길 의사가 없었다. 그러므로 무릎 꿇지 않았다.
오이카와는 양옆으로 늘어선 귀족들의 소리 없는 술렁임을 느낄 수 있었다. 예를 갖추지 않는 저를 강제로 무릎 꿇리기 위해 강압적으로 어깨를 붙잡는 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곧 그 술렁임과 거친 손의 움직임이 거짓말처럼 멎었다. 오이카와는 고개를 들었다. 좌중을 침묵으로 몰아넣은 황제의 손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황제의 키보다도 높은 황금으로 만들어진 왕좌의 등받이에 조각된 독수리의 눈동자가 오이카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날짐승의 날카로운 다섯 개의 발톱이 황위를 찬탈하려 한 죄인의 눈을 뽑아버릴 듯 날카롭게 번뜩였다.
황제는 무거운 입을 다문 채 오이카와를 내려다보았다. 그런 황제를 올려다보는 오이카와의 눈에는 한 조각의 경외도 담겨 있지 않았다.
오이카와는 강성한 제국의 주인의 자리에 걸맞은, 누구보다 강하고 고결하다 믿은 이에게 제 목숨을 바치리라 맹세했던 과거를 송두리째 지우고 싶었다. 신의 권능을 대변하는 황금의 관과 황제의 권위를 드러내는 자주색 망토가 그의 머리와 어깨에 내려앉을 때 이제 그를 온전한 제국의 황제로, 자신의 주군으로 섬길 수 있다는 사실에 더 없는 긍지를 느꼈던 자신을 저주했다.
제 발 아래 자리한 미천한 이들에게 그 귀한 입술을 열어 말 한마디 하지 않을 듯한 태도로 권좌에 자리한 황제가 보기와 달리 소탈한 모습을 가졌다는 걸 오이카와는 알고 있었다. 선황의 신하이자 군의 장교로서 함께 사선을 넘나들던 시절, 황제는 자신의 신분에 구애받지 않았고 주변 이들을 스스럼없이 대했다. 그의 신분과 과묵한 태도에 그를 꺼려하던 이들도 그의 그런 성품을 알게 되자 짧은 시간에 그에게 매료되어 다가갔다. 오이카와 역시 남들보다 늦었다 뿐이지 종국엔 그와 함께 사선을 넘으며 그를 자신의 동료로 받아들였다.
선황과 선황비 사이에 황자가 태어나 그의 황위 계승권이 뒤로 밀려났을 때 오이카와는 진심으로 안타깝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도 그는 누구보다 훌륭한 황제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몇 년 후 황자가 병에 걸려 사망하고 다시 그가 첫 번째 황위계승권자가 되었을 때 오이카와는 많은 그의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이대로 황위가 그에게 넘어가길 바라는 마음을 함구한 채 그와 함께 말머리를 나란히 하여 제국의 새로운 국경을 밟았다.
그리고 드디어 그가 황제로서 첫 열병식을 하던 날은 오이카와가 자신이 황제의 검이라는 사실을 그가 제국의 장교의 길을 걷기 시작한 이래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한 날이었다. 새하얀 독수리를 수놓은 깃발이 대륙의 끝에서 끝까지 펄럭이기를 염원하던 날이었다.
“짐은 그대가 이런 무도한 짓에 가담했다는 것이 아직 믿기지 않는군.”
드디어 그 무거운 입을 열어 말을 꺼낸 황제를 올려다보며 오이카와는 입술 끝을 끌어올렸다. 믿기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황제의 어조는 무심하지 짝이 없었다.
“고매하신 폐하께오서 소인의 죄를 보고도 믿지 못 하실 연유가 무엇이옵니까. 소인의 입에서 모반의 죄를 지었으니 목숨을 거두어 달라 청하기를 바라시옵니까?”
황제의 눈이 가늘어지는 것을 보면서도 오이카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선황이 서거 소식을 듣자마자 전장에 있던 군인들은 선황을 애도하는 것보다 먼저 그 앞에 무릎 꿇어 충성을 맹세했고 오이카와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새로운 황제의 충성스러운 신하임을 자처한 그는 공적인 자리에서는 언제나 스스로를 황제의 ‘신하(臣)’라 칭했으니 황제는 오이카와의 입에서 스스로를 ‘소인’이라 말하는 것을 듣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오이카와 또한 황제가 공석에서 자신을 ‘경’이 아닌 ‘그대’라고 칭하는 걸 듣는 건 처음이었다. 작위가 있는 귀족에게라면 공석에서 황제는 ‘경’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다. 결국 오이카와는 우시지마를 자신의 황제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이었고 황제 역시 오이카와를 모반죄를 저지른 죄인으로 제국의 귀족으로 취급하지 않겠다는 이야기였다.
“짐은 그대에게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미천한 소인은 폐하의 기대에 부흥할만한 그릇이 아니옵니다. 이리 살려두시고 폐하의 아량이 하해와 같음을 드러내신다 한들, 찻잔의 물이 넘쳐봐야 얼마나 넘치겠사옵니까. 고작 티스푼 위 설탕 한 조각이나 적실 테니 어린 소녀들에게나 흥미를 끌겠지요.”
지하 감옥에 끌려가서 실컷 고문이나 당하다 도성 문 위에 목이 매달릴 거라 생각했던 오이카와는 예상과 달리 정중한 태도로 자신을 대하는 간수들을 보며 혀를 찼다. 모반에 실패한 죄인을 강경하게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너그러운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오이카와에게 말없이 동조한 귀족들에게 황제의 힘을 과시하는 것이겠으나 오이카와에게는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황제가 자신을 회유하려 든다면 그가 그것을 받아들이든 그렇지 않든 꼴만 우스워질 뿐이었다. 오이카와는 왕좌를 찬탈하는데 실패했으니 차라리 황제가 크게 진노하며 자신의 목을 매달라고 명하길 바랐다. 그러면 그 앞에서 제 것이 아닌 왕좌에 앉은 것이 부끄럽고 그 자리를 빼앗기기 싫어서 발악하는 거냐고 빈정대려 했는데 이래서야 누구도 오이카와의 말에 귀 기울여주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래도 끝까지 황제의 속을 긁는 걸 멈출 생각이 없는 오이카와는 경련이 일 것 같은 뺨을 끌어올려 입술로 호를 그렸다.
“오이카와.”
‘하문하시지요.’라는 대답 대신 오이카와는 우아하게 고개를 숙였다. 황제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그런 오이카와를 내려다보다 몸을 일으켰다. 동시에 양옆으로 늘어선 귀족들이 고개를 조아렸다. 오이카와는 고개를 똑바로 들었다. 황제가 단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계단을 하나 밟자 귀족들은 무릎을 굽히며 허리를 숙였다. 오이카와는 자신을 보는 황제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황제는 긴 옷자락을 끌며 단 아래로 내려왔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 오이카와의 눈앞까지 걸어와 섰다.
“짐이 그대를 살려둔 연유가 그대를 회유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나?”
“소인이 폐하의 깊은 뜻을 어찌 헤아리겠사옵니까.”
“그대가 다시 짐의 신하가 될 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보군.”
“소인은 소인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사옵니다. 소인이 무가치하다면 황성의 문턱을 밟기도 전에 목이 달아나지 않았겠사옵니까.”
오이카와가 황제의 적을 향했던 검끝을 황제에게 돌렸을 때 그에게 동조한 이들은 적은 수가 아니었다. 지금의 황제가 선황의 아들을 암살하고 선황과 선황비마저도 죽음으로 몰아넣었음을, 황제 스스로가 한 일이 아니어도 그의 뜻에 따라 그 모든 일이 이루어졌음을 알게 된 이들은 그를 자신의 황제로 인정할 수 없었다.
황제가 황성을 떠난 사이 황성을 차지하고 황제를 붙잡는다는 계획은 비밀스럽고 빠르게 진행되었다. 성공 가능성이 높진 않았으나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군대를 이끌고 황성으로 온 오이카와를 맞이한 것은 주인이 자리를 비운 왕좌가 아닌 황제 본인이었다. 그간 다져온 비장한 각오가 허무하리만치 빠르게 오이카와는 황제의 군대 앞에서 무너졌다. 포박당해 투옥된 후 황제의 명이 있을 때까지 몇날며칠을 빛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방에 구금되었다.
오이카와는 황제가 부른다는 말과 함께 내밀어진 견장도 약장도 없는 장교복을 보며 황제가 여전히 자신의 힘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했다. 오이카와는 황제와 함께 수많은 전장에서 공을 세웠다. 오이카와가 없었다면 불가능 했을 전투도 많았다. 거기에 오이카와 가문의 이름 역시 황제가 제 편에 두는 것이 적대시 하는 것보다 이득이니 모반죄를 덮는 대신 다시 한 번 충성을 맹세하라고 말하리라 예상했다. 그 대가로 오이카와 가문은 작위를 몇 개 박탈당하고 영지를 일부 봉납하더라도 멸문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오이카와 역시 몇 계급 강등 처분이 있겠지만 제국군 장교의 신분은 그대로 유지될 거라 생각했다.
물론 오이카와는 그 말을 따를 생각이 없었으므로 마지막으로 황제의 면상에 침이라도 뱉고 오겠다는 심정으로 군복을 입었다. 모반을 일으키기로 마음먹었을 때, 아니 부적합한 자를 왕좌에서 끌어내리기로 결심했을 때 오이카와는 이 일의 승패와 제 가문의 명이 함께하리라는 걸 각오하고 있었다. 직계가족을 영지로 내려 보내고 용병을 고용해 붙여두었다. 가족이 무사히 제국을 벗어날 수 있다면 목숨을 부지할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오이카와의 이름은 영영 사라지게 되리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협박과 회유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며 마지막으로 황제를 향해 그가 황제놀음에 한껏 취했을 때 그가 죽인 무고한 영혼들의 손에 목이 졸려 죽게 될 거라고 저주를 퍼부어줄 생각이었다.
“그래. 그대는 아직 짐에게 가치가 있지.”
황제는 손을 뻗어 오이카와의 흐트러진 앞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오이카와가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그 손을 뿌리쳤으나 황제는 그 무례를 벌하지 않고 다시 손가락 끝으로 천천히 오이카와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서쪽 탑으로 데려가라.”
오이카와는 눈을 부릅뜨며 숨을 들이켰다. 좌중이 술렁였지만 그런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뭐?”
“그대는 아직 짐에게 가치가 있다고 그대의 입으로 말하지 않았나.”
“우시와카!!!”
“얌전히 거기서 기다려라. 일이 정리 되면 그대를 위해 궁을 마련하고 친히 데리러 가겠다.”
“미쳤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황성의 동쪽과 서쪽에는 같은 모양의 높은 탑이 있었다. 그 두 개의 탑은 황제를 거역한 황족과 귀족들을 감금하는 장소로 쓰였는데 대대로 동쪽은 황명을 거부한 남자들을, 서쪽은 여자들을 가두는 곳이었다. 애첩에 눈이 먼 황제에게 무고한 죄를 받은 황비, 태후의 명으로 끌려온 선황의 애첩, 여성들 중 정치범이 거의 없었으므로 서쪽 탑에 감금 된 이들은 대부분 황제의 여자들이었다. 그러니 오이카와를 서쪽 탑에 가두라고 하는 건 그를 모반죄를 일으킨 죄인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황명을 거역한 황제의 애첩 정도로 취급하겠다는 말이었다.
상상하지 못한 모욕적인 처사에 오이카와의 눈동자에 붉게 핏발이 섰다. 이런 자에게 몸과 마음을 바쳤다는 것이 치욕스러웠다. 대공의 화려한 막사 안에서 너의 모든 것을 원한다는 속삭임에 취해 그에게 입술을, 몸을 허락한 자신의 사지를 찢어 죽이고 싶었다. 제국의 앞날을 논하며 누구보다 고결한 황제가 되어달라고 간청하던 자신에게 입 맞추며 너를 위해 그리 하겠노라 말하던 남자의 심장을 도려내고 싶었다.
“우시와카….”
황제를, 우시지마를 부르는 오이카와의 목소리가 분노를 숨기지 못하고 떨렸다. 우시지마는 그런 오이카와의 머리카락을 다시 천천히 쓸어내렸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눈동자가 자신을 향해 비난을 퍼붓는 오이카와의 눈동자를 소리 없이 훑어 내렸다.
살아서 치욕을 당하느니 죽어서 명예를 지키겠다고.
“윽!”
“자결은 용납하지 않겠다.”
우시지마는 스스로 혀를 깨물려 하는 오이카와의 턱을 세게 붙잡았다.
“재갈을 가져와라.”
오이카와는 미친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오이카와가 반항을 하면 할수록 우시지마의 힘은 강해졌고 결국 뒤에 선 군인들이 오이카와의 몸을 붙잡았다. 곧 오이카와의 입에 재갈이 물렸고 단단히 고정되었다. 그제야 오이카와에게서 손을 떼어낸 우시지마는 손가락으로 오이카와의 턱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 숨이 닿을만한 거리에서 속삭였다.
“그대를 위해 황제가 되겠다고 하지 않았나. 그대를 손에 넣기 위해 나는 황제가 되었다. 오이카와.”
오이카와의 미간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우시지마는 그 엉망이 된 오이카와의 이마에 입 맞추었다. 누구보다 총애하는 이의 살갗에 사랑스럽다고 알려주듯이 그렇게.
“짐은 그대를 누구보다 귀애하고 있다.”
우시지마는 양손을 들어 오이카와의 뺨을 감쌌다.
“그대는 영리하고 계산도 빠르지. 그대가 서쪽 탑에서 무엇을 결심해야 할지 짐이 언질하지 않아도 깨우쳤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다시 오이카와의 이마에 부드럽게 입술을 붙였다.
“너는 영원히 내 것이다.”
그렇게 말한 황제는 오이카와를 데려가라고 명했다. 제대로 소리가 되어 나오지 못한 비명을 지르며 거부하는 오이카와를 군인들이 끌고 가는 것을 뒤로하고 황제는 다시 단 위로 올라가 자신의 왕좌에 앉았다. 고개를 들자 하얀 독수리가 큰 양을 날카로운 발톱으로 움켜쥐고 날아오르는 모습이 그려진 천장이 보였다.
제국의 역사는 찬탈의 역사.
“짐 또한 그 방법밖에 알지 못한다.”
그렇게 중얼거린 황제는 오이카와를 위해 열렸던 문이 다시 천천히 닫히는 것을 바라보았다.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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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4 알티 이벤트로 쓴 글입니다.
디지뇽님의 리퀘로 시대물로 황제 우시지마, 쿠데타 일으킨 오이카와. 주모자로 잡혀온 오이카와였습니다.
원하시는 것이 이런 것일지 잘 모르겠으나 힘내서 썼답니다.ㅠ0ㅠ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습니다...8ㅁ8ㅁ8ㅁ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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