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시지마는 안경 아래로 양손을 밀어 넣었다. 두꺼운 손끝으로 안구를 덮은 뻐근한 눈꺼풀을 꾹꾹 누르며 소리 내지 않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귀에 걸친 익숙하지 않은 무게감의 안경을 빼낸 후 왼손 엄지와 검지로 눈두덩을 강하게 눌렀다. 검은 시야에 노이즈가 가득 어려 마치 눈앞에 자잘한 빛 부스러기를 흩어놓은 듯했다. 손에 더 강하게 힘을 주자 노이즈는 만화경처럼 빙글빙글 돌았다.
손을 떼어내고 눈꺼풀을 강하게 아래로 내려 감았다 떴다. 몇 번 눈을 깜박이자 흐릿했던 시야가 점점 명확한 초점을 찾아갔다. 우시지마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잠시 멈췄다. 책장 넘어가는 소리, 펜이 종이 위를 굴러가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장소에서 자신의 숨소리가 지나치게 크게 느껴진 탓이었다.
조금 벌어진 입술 사이로 천천히 숨을 내쉰 그는 안경을 다시 쓰려다 어느새 렌즈에 묻은 희뿌연 자국을 보고 안경집에서 천을 꺼내 그것을 닦았다. 힘주어 문질러보지만 닦여 나간다기 보단 얇게 렌즈 위에 피막을 형성하는 것처럼 보였다. 무의식중에 미간이 찌푸려지는 것도 인식하지 못한 채 우시지마는 안경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 이어폰을 끼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책을 베껴 쓰는 맞은편에 앉은 남학생의 코에도 안경이 얹혀 있었다.
우시지마는 안경도 펜도 모두 내려놓고 양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흐름이 끊어진 김에 목을 이리저리 돌려 뻐근한 근육을 이완시켰다. 그리고 다시 안경을 쓰고 펜을 들었다. 마지막으로 본 교제의 문장이 무엇인지 곧장 생각나지 않아 다시 미간을 찌푸린 그는 집중력을 끄집어내 페이지의 첫 부분부터 훑어 내렸다. 하지만 곧 안경이 흘러내리며 집중력을 흐트러뜨렸다. 결국 안경을 벗어 책상위에 둔 우시지마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창밖으로 보이는, 완연히 녹음이 우거진 도서관의 중정을 내려다보았다.
실내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한가득 따듯한 기운을 안은 햇볕이 내리쬐는 중정의 좁은 길 옆에 놓인 벤치에 혼자, 혹은 둘, 또는 서넛의 학생들이 앉아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무척이나 대학 교정에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우시지마는 그들을 내려다보던 시선을 거둬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크고 투박하고, 어쩐지 가느다란 볼펜과 어울리지 않는 그런 손이었다. 이 가느다란 펜에 어울리지 않는 손과 마찬가지로 딱딱한 의자에 걸터앉은 자신은 조용한 도서관의 테이블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시지마는 볼펜을 한 번 손에 쥐었다 펴며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 중 5월의 햇살과 젊음과 열정이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이를 떠올렸다.
하얀 얼굴과 환한 표정, 배구공뿐만이 아니라 가느다란 펜을 쥔 모습도 잘 어울리던 긴 손가락. 시력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던 은테 안경이 그의 화사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려 어딘가 학구적인 모습을 만들어냈다. 처음 대학 교정에 발을 들인 날 특별할 것 없는 차림의 그는 새로운 환경에 어색한 모습으로 선 다른 이들과 달리 아주 자연스럽게 이곳에 어우러져 있었다.
우시지마는 그가 눈부시다고 생각했다. 그와 같은 장소에 있다는 이유로 가슴 한켠이 벅차올라서라고 생각했다. 이제야 비로소 모든 것이 제자리에 맞춰 들어와 아귀가 맞물려서라고 생각했다.
또 그를 생각했다는 것을 자각한 우시지마는 다시 양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한숨을 내쉬지 않기 위해 꽉 다문 잇새 대신 코로 숨을 내쉬었다. 가슴이 뻐근해 괜스레 어깨를 주물렀다. 눈을 깜박여도 보고 종이에 조금 전 적었던 것을 다시 적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한 번 떠오른 생각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우시지마의 기억 속, 중정 벤치에 앉은 그에게 나풀거리며 내려앉은 나뭇잎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노랗고 따사로운 빛의 조각이 눈꺼풀 안을 자글자글 긁어내던 노이즈처럼 우시지마의 심장을 바늘이 되어 찔렀다.
동시에 맞은편에 앉은 남자가 저도 모르게 하품을 하는 소리가 우시지마가 기억하는 그의 숨소리처럼 우시지마의 고막을 두드렸다. 우시지마는 양쪽 귀에서 턱을 긁어내리듯 손을 아래로 내렸다. 한숨을 삼키며 고개를 숙이고 애꿎게 책의 페이지를 앞으로 넘겼다. 어느새 몇 십번은 본 탓에 손때가 탄 책의 가장 첫 페이지가 우시지마의 눈앞에 나타났다.
『A+ 받으면 오이카와 씨에게 고기 사주기.>ㅁ<』
속표지 제목 아래 볼펜으로 쓴 글씨가 있었다. 그의 마지막 필체였다.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자신은 여전히 이곳에 있는데 이곳에 가장 어울리는 그는 이곳에 존재하지 못했다.
우시지마는 손바닥으로 그 글씨를 덮었다.
보고 싶다.
토해낸 한숨은 그 문장의 파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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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분 걸렸네요.ㅎㅎㅎㅎ
오래간만에 전력 참여해봅니다.
그동안 원고가 넘 바빠서 웹연성을 못 하고 있었는데 그냥 문득 이번엔 하고 싶더라구요. 주제가 대학생인데 이런 내용이라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