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카와 토오루의 배구는 계속되지 않았다. 아니, 계속될 수 없었다. 라고 해야 옳다. 우시지마가 전국대회에 출전하지 못한 봄고 직후 오이카와는 오메가로 발현했다. 알파나 오메가는 자연적으로 대부분 태어나면서부터 발현하고 그렇지 못한 이들도 대부분 10세 이전에 발현했다. 오이카와처럼 성인에 가까운 시기나 성인일 때 발현은 극히 드물었다. 그런데 오이카와는 19세가 될 봄에 오메가로 발현했다. 그리고 우시지마는 그 소식을 마지막으로 오이카와데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다.
우시지마는 오이카와와 같은 팀에서 배구 하거나, 다른 곳에서 배구 하더라도 다시 만날 수 있으리란 가능성을 지워야 했다. 오이카와를 다시 만나는 건 불가능했다. 성인이 되어 발현한 이들의 운명이 그러하듯 오이카와 역시 누군가의 소유물이 되었을 테니까.
우시지마는 오이카와를 떠올릴 때마다 그가 오메가란 사실에서 생각을 멈췄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내내 우시지마에게 오이카와는 그저 수많은 베타 중 한 명이었다. 알파나 오메가의 영향을 받지도, 그들에게 영향을 주지도 않는 베타였다. 우시지마가 오이카와에게 관심을 보였던 건 순수하게 그가 뛰어난 세터여서였다. 우시지마는 지금도 분명 그 이유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이카와는 오메가가 되었다. 그 사실이 우시지마의 가슴 속에 앙금처럼 남아 있었다.
텐도는 우시지마에게 국가대표로 선발된 세터나 세계 대회에서 만난 우수한 세터도 많을 텐데 유독 오이카와에게 집착하는 이유가 궁금하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때 우시지마는 텐도의 질문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오이카와는 우시지마가 아는 가장 뛰어난 세터이니 그를 원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오이카와가 오메가라는 걸 떠올릴 때마다 우시지마는 자신에 예전부터 오이카와가 제 것이 될 가능성을 무의식중에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15세 이후 발현은 곧 타인의 개입을 뜻했다. 상대를 사랑해서 스스로 그 방법을 택하기도 하지만 강제적으로 이루어지는 일도 적지 않았다. 알파나 오메가가 베타와 지속적인 성관계를 할 경우 베타는 상대의 반대되는 형질로, 알파가 알파와, 오메가가 오메가와 관계할 경우 열성인 쪽이 우성의 반대되는 형질로 바뀌었다. 그러니 오이카와가 오메가가 되었다는 건 그것이 오이카와의 의지이든 그렇지 않든 오이카와가 형질이 바뀔 만큼 알파와 관계했다는 말이었다. 그 사실이 우시지마를 불쾌하게 했다.
우시지마가 오이카와를 마지막으로 만났던 지역 예선 마지막 날에도 오이카와는 평범한 베타였다. 알파와 관계를 가졌다면 우시지마가 그 흔적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갑자기 그렇게 모든 게 바뀐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우시지마는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입맛이 없으세요?”
“아닙니다.”
우시지마의 손이 움직이지 않아서인지 반대편에 앉은 오메가가 조심스레 물었다. 우시지마는 별일 아니라는 표시로 가볍게 묵례하고 다시 손을 움직였다. 젓가락질 한두 번이면 사라질 양의 아름다운 요리가 가득 차려진 상은 무척 커다랬고 그만큼 앞사람과의 거리도 멀었다.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기업 계열사 사장 아들인 오메가와 선을 보라고 말한 부친은 그 말과 함께 이혼 소식을 알렸다. 우시지마가 16세 때 뉴욕으로 간 모친은 우시지마가 24살인 현재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이혼 서류도 변호사를 통해 전달했을 뿐 아들도 남편도 만나러 오지 않았다.
우시지마는 짤막하게 알겠다고 답했다. 부친은 “알고 있겠지만….”이란 말로 운을 떼곤 곧 재혼할 거라고 말했다. 우시지마는 그 말에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을 뿐 별 반응을 하지 않았다. 부친에게 정부가 있다는 건 대학 입학할 때쯤 알았다. 부친에게 묻어난, 모친 것이 아닌 오메가 페로몬을 모를 수 없었다. 부친은 그 오메가의 흔적을 지우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누구도 말하지 않지만 누구나 우시지마 그룹 총수의 결혼 파탄을 알고 있었다. 정정하다 못해 우시지마만 한 아들을 두었다는 것도 믿기지 않게 젊어 보이는 총수에게 오메가 정부가 몇 명이나 있다 한들 흠 잡힐 일이 아니었다. 오메가의 흔적이 한 사람 것뿐이라는 게 놀라울 일이었다.
우시지마는 좋은 집안 알파에게 보내기 위해 공들여 키운 티가 나는 오메가를 보며 이 시간이 어서 지나가길 바랐다. 부친의 명으로 이 자리에 나오긴 했지만 벌써 결혼할 생각은 없었다. 어서 집으로 가 쉬고 싶었다. 업무 때문에 며칠째 새벽 2시가 넘어 퇴근했는데 아침 8시부터 회의가 있었다. 점심도 비서에게 부탁해 가벼운 도시락으로 해결한 우시지마는 귀중한 시간을 이런 일로 허비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몹시 정중한 태도로, 서두르는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긴 식사가 끝나자 요즘 바쁜 걸 아니 오래 붙잡는 건 실례일 것 같다고 말한 건 상대 오메가 쪽이었다. 우시지마는 그에게 더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하는 것을 사과한 후 차를 불러 그를 태워 보냈다. 차의 후미등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기다린 후 저 역시 차에 올랐다. 기사는 말없이 우시지마가 저택으로 차를 몰았다.
우시지마는 주차장에서 벗어나 자갈이 깔린 길을 걸었다. 성인이 된 후 별채에서 생활하는 그는 오늘도 분명 제 부친이 곧 결혼할 정부 집에 가 있을 거라 생각해 본채에 들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집안일을 총괄해 도맡아 하는 카와타비가 문간채에서 나와 우시지마에게 다가왔다.
“주인님께서 오시면 본채로 모시라고 했습니다.”
“시간이 좀 늦지 않았습니까?”
“저….”
조금 망설이는 그를 의아한 눈으로 보자 카와타비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새로 오신 분을 소개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주무시기 전에 오시면 보셔오라고 하셨습니다.”
“알겠습니다.”
우시지마는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지만 곧장 본채로 발을 옮겼다. 얼마나 대단한 오메가이기에 몇 년이나 뒤를 봐준 것도 모자라 재혼까지 하겠다는 건지 얼굴이나 보자고 생각하며 마루에 발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