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오이] an ILLUSION
an ILLUSION
발간일 : 2017년 2월 25일 이와오이 온리전 '이리와봐, 오이카와!'
커플링 : 이와이즈미X오이카와 (R-19)
※ 책 사양
A5 중철 카피본 44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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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 ILLUSION
시작은 온통 새까만 공간이었다. 눈을 깜박이자 어딘가에서 약한 빛이 비쳐들었다. 밤 새 온 비를 머금은 데에다 작렬하는 태양빛에 달아올라 숨을 막히게 하는 공기를 들이마신 것처럼 가슴이 답답했다. 내쉬는 작은 숨소리마저 사방으로 부딪쳐 되돌아오는 곳에 무언가가 보였다.
까마득히 높은 천장 한 점에서 시작한 두 장의 휘장이 왕좌를 감싸듯 벌어져 바닥으로 이어졌다. 누구도 자리하지 않은지 오래인 그 왕좌는 묵묵히 그의 주인을 기다리며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눈을 뜨면서 이와이즈미는 그 장면이 꿈이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그 꿈이 자신의 꿈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정확한 이유를 말할 수는 없지만 그저 그렇다는 것을 알았다.
캄캄한 집안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으니 잠을 더 자도 괜찮을 것 같았지만 이와이즈미는 잠을 자는 대신 손등으로 코 아래를 문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코를 훌쩍이며 옆에서 자는 남동생에게 그와 함께 덮고 자던 이불을 편하게 덮을 수 있도록 해주고 손을 더듬어 침대 아래에 놓인 신발을 찾아 신었다. 손으로 양팔을 문지르다 눈가를 문지르다 하며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크게 하품을 하고 옷깃을 여미며 눈을 감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일 만큼 캄캄한 방 안에서 익숙하게 몇 걸음을 걸어 문을 열었다.
터벅터벅 걸어 부엌으로 가 아궁이에 남은 불씨를 보고 옆에 놓인 장작을 하나 밀어 넣은 그는 불 가까이에서 언 손을 녹였다. 몇 번 코를 훌쩍이고 손등으로 코 아래를 훔친 그는 장작에 불이 붙어 거의 꺼져가던 불씨가 살아나자 쪼그리고 앉아 있던 무릎을 폈다.
아궁이의 불로 부엌 안 사물을 식별할 수 있는 탓에 조리대 위에 놓인 빵 덩이가 눈에 들어왔다. 잠시 그것을 보다 침을 꿀꺽 삼킨 이와이즈미는 이내 제 눈에 들어온 것을 못 본 것처럼 휙 고개를 돌려 부엌을 빠져나갔다.
새카만 밤하늘의 주인은 흩뿌려진 별이었다. 달도 없는 하늘은 그 자리를 가득 메운 별을 몰아낼 여명을 한참을 더 기다려야 할 듯 검었다.
이와이즈미는 팔꿈치가 허옇게 닳은 낡은 겉옷을 꾹꾹 여미고 몸을 잔뜩 웅크린 채 걸음을 빨리 했다. 얼른, 얼른 거기로 가야하기 때문이었다.
∽ ◇ ∽
“뭘 그렇게 생각하세요?”
“어? 아니.”
“드세요.”
“어, 그래.”
쌓인 눈은 다 녹았으나 밤에는 여전히 추위가 엄습하는 산중턱에서 모닥불 타는 모습을 보자니 괜히 잡념이 떠올랐다는 생각에 이와이즈미는 쿠니미가 건네는 그릇을 받아들며 머리를 흔들었다.
“내일은 마을에 도착할 테니 조금만 더 고생들 해.”
“네.”
이와이즈미의 말에 그의 일행은 작게 대답하거나 고개를 끄덕였다. 이와이즈미는 모두에게 음식이 돌아가는 것을 지켜본 다음 스푼으로 그릇에 든 고기를 떠 입 안 가득히 밀어 넣었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제법 재주를 부릴 줄 아는 쿠니미 덕에 내내 솥에서 끓던 고기는 맛이 나쁘지 않았다. 소금이라도 넉넉하게 가지고 다닐 형편은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이와이즈미는 몸에 들러붙은 한기를 단숨에 몰아내줄 것 같은 뜨거운 국물을 삼켰다.
“아, 좀 조용히 하라고.”
“진짜 그거 아야?”
“조용히 해. 이 사람, 큰일 낼 사람일세.”
“무슨 일이지?”
두서넛씩 모여 대화하는 와중에 이와이즈미는 무시할 수 없는 말을 들은 듯해 그 대화를 나누던 이들을 향해 물었다. 그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며 상대 탓을 하다가 자신들을 지그시 보는 이와이즈미의 시선을 더이상 무시할 수 없어서인지 결국 한 남자가 입을 열었다.
“아니, 대장. 이 친구가 글쎄 좀 전에 계곡에서 그걸 봤다지 뭡니까. 그런데 그걸 지금 말하잖아요.”
“뭘 봤다고?”
“암 것도 아닙니다요. 이놈이 괜히 소란 떠는 거라구요.”
“진짜 봤어?”
“대장, 그게 분명할 거라고요. 돌아가야 하는 거 아닐까요?”
“거참, 아니라니까. 그냥 비슷한 걸 거라고.”
남자 둘은 이와이즈미에게 상황을 설명하면서도 연신 옥신각신이었다. 이와이즈미는 알았으니까 그 장소가 어디냐고 물었고 그걸 봤다는 남자는 곤란함이 가득 묻어난 얼굴로 장소를 설명했다.
“날 밝으면 가세요.”
“이 정도야. 쉬고들 있어.”
그 말을 듣자마자 그릇에 든 걸 죄다 입에 욱여넣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이와이즈미를 보며 쿠니미가 한숨과 함께 저지해보았으나 역시 그는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이와이즈미가 로브에 들러붙은 낙엽을 떨며 풀어두었던 검을 다시 허리에 찼다.
“진짜 가시게요? 그거 진짜면 어쩝니까?”
“진짜든 말든 확인만 하는 건 아무 문제없어. 그리고 이것도 임무인데 모른 척 할 순 없지. 다녀오겠다.”
“확인만 하고 오세요.”
“어.”
걱정하는 남자들과 쿠니미를 두고 이와이즈미는 자신의 종자인 킨다이치만을 데리고 산비탈을 거슬러 올라갔다. 킨다이치가 손에 든 횃불에서 발하는 빛에 의존해 두 사람은 서둘러 발을 옮겼다.
“진짜 이런 곳에도 있을까요?”
“모르지. 하지만 영 엉뚱한 곳에서 나오기도 하니까 확실히 확인해야 해.”
“네….”
“무서워?”
“예? 아뇨, 그냥 왜 그렇게 사방에 있나 해서요.”
“나도 속 시원하게 알았으면 좋겠다.”
“네에….”
자세한 내력을 알려줄 수 없는 것이 불만스러운 이와이즈미의 목소리가 언짢아져서인지 킨다이치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이와이즈미는 좀 더 친절한 대답을 하지 못해 겸연쩍었지만 그렇다고 구구절절 말 하고 싶지도 않아 그냥 입을 닫고 앞으로 걸었다. 되도록 빨리 확인하고 돌아가 잠시라도 눈을 붙이고 싶었기에 절로 걸음이 빨라졌고 어느새 멀리서 들리는 산짐승의 울음소리 말고는 횃불이 타오르는 소리와 두 사람이 풀을 밟는 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차가운 공기를 빠르게 들이마시느라 가빠진 숨을 고르며 이와이즈미는 일행과 함께 계속에서 올라왔던 길을 둘러보았다. 멀리 보이는 모닥불의 노란 불빛을 확인한 그는 코를 훌쩍이곤 물이 거의 마른 계곡으로 내려갔다. 킨다이치도 곧장 뒤를 따랐고 이와이즈미는 내려온 자리에서 서 킨다이치가 들고 있던 횃불을 가져와 주변을 살폈다.
“어…. 하지메 님. 이거….”
이와이즈미는 킨다이치가 가리키는 곳으로 가까이 다가가 횃불을 들이댔다. 킨다이치도 그의 곁으로 다가와 계곡에 드러난 암벽에 새겨진 문양을 바라보았다. 자연이 만든 우연의 산물이라고 볼 수 없는 뚜렷한 두 개의 고리와 그 고리가 겹친 곳 양 옆에 초승달을 반으로 갈라 붙여놓은 듯한 문양은 분명 이와이즈미가 찾는 그것이 맞았다.
“젠장….”
빠드득 이를 가는 소리가 들릴 지경이라 킨다이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서있었다. 한참을 그 문양을 노려보던 이와이즈미는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내쉬고는 횃불을 킨다이치에게 돌려주었다.
“확인했으니 돌아가자.”
“네.”
일행에게 돌아가는 발걸음은 느리고 무거웠다. 이와이즈미는 조금 전 본 문양을 머릿속에 든 지도에 옮겨 그렸다. 일 년 사이에 이와이즈미의 주군인 이리하타 백작의 영지 곳곳에 그 문양이 심상찮게 나타났다. 이렇게 암석에 새겨져 있을 때도 있고 나무나 건축물일 때도 있었다. 공통점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다는 점이었다. 평범한 바위를 보고 눈을 돌렸는데 다시 눈을 돌려 그 바위를 보자 문양이 새겨져있더라. 같은 이야기가 그 문양이 나타난 많은 곳에서 들려왔다.
시작은 영주의 집무실이었다. 처음 발견한 사람은 이와이즈미였다. 그는 영주의 집무실에서 왕궁으로 보내는 공물을 운반하는 이들을 호위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창을 등지고 책상 앞에 앉은 영주 앞에 선 이와이즈미는 그에게 보고를 하다 말고 문득 고개를 들어 창문 위를 올려다보았다. 화려한 장식을 덧댄 창틀 위는 평범한 벽이 분명했다. 그런데 그 순간 조금 전까지도 보지 못했던 문양이 떠올라있었다.
이와이즈미는 저도 모르게 말을 멈췄고 영주는 무슨 일이냐고 묻는 대신 이와이즈미의 시선이 향한 곳을 돌아보았다.
영주는 그 문양을 알아보았고 이와이즈미 역시 마찬가지였다. 영주는 놀란 눈을 크게 떴고 이와이즈미는 그보다 더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벽에 나타난 그 문양은 영주 가문의 문양이 왕에게 승인 받기 전 집안의 중요한 서신 등을 전할 때 봉인을 위해 사용하던 표식으로 이미 사용하지 않은지 100년은 더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문양은 이와이즈미의 검 손잡이 끝에 끼운 파멀에 새겨진 것과 같았다.
지금에 와서 그 문양의 존재를 아는 건 영주와 이와이즈미, 그리고 또 한 사람뿐이었다. 그런데 그 문양이 그곳에 나타났으니 두 사람이 놀라는 건 지극히 당연했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두 사람은 곧 정신을 차리고 저 문양이 왜 이곳에 나타났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분명 자연이나 인간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영주는 다른 귀족의 영지를 몇 개나 지나 있는 산기슭에 사는 마법사를 불렀다. 그 마법사가 영주의 성에 도착할 때까지 영지 곳곳에 같은 문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와이즈미는 그 문양이 나타날 때마다 그곳으로 가 모든 것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했고 그때마다 그는 제 검을 움켜쥐었다.
시급한 일이라고 독촉해도 느긋한 걸음으로 영지를 방문한 마법사는 이와이즈미가 안내하는 장소를 몇 군데 보고 나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했는지 서둘러 남은 곳도 안내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문양이 나타난 장소를 남김없이 둘러본 마법사는 영주에게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 마왕과 관련이 있을까요?”
이와이즈미는 킨다이치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얼굴을 구겼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네, 네.”
킨다이치는 제가 말해놓고도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는지 이와이즈미의 핀잔에 뒷머리를 긁으며 큰 소리로 대답했다. 두 사람은 곧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고 쿠니미는 꾸벅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확인한 것이 맞냐고 물었다. 이와이즈미가 한숨을 내쉬자 그는 어깨를 으쓱인 후 제 보따리에서 지도를 꺼내 이와이즈미에게 장소를 확인하고 그곳을 목탄으로 표시했다. 지도 위의 표식은 누가 봐도 그 문양의 일부임을 알 수 있었다. 이와이즈미는 굳은 얼굴로 지도를 내려다보며 어금니를 악물었다.
갑자기 나타난 이상한 문양. 그것이 전설의 마왕과 관련 있다는 소문은 영지 안을 공공연히 돌아다녔다. 그리고 그것은 영주가 함구하고 있을 뿐이지 소문이 아니었다. 어렵게 이곳을 방문한 마법사는 그 문양이 마왕의 것이며 마법사라면 누구나 아는 것이니 왕에게 사실을 알리는 게 좋을 거라고 말했다. 이 문양이 어떤 사태를 예견할는지 자신을 알 수가 없으니 도와줄 수 있는 것도 없다고 말한 그는 훌쩍 영지를 떠났다. 마법사는 영주의 성이 있는 마을 어귀까지 배웅하는 이와이즈미와 헤어지기 직전 손으로 이와이즈미의 검을 가리켰다.
어디서 났냐고 묻는 마법사의 질문에 이와이즈미가 백작의 기사가 된 후 구입했다고 답하자 그는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더는 말을 하지 않고 그곳을 떠났다. 이와이즈미는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저도 모르게 파멀을 움켜쥐었다.
이와이즈미의 파멀에 새겨진, 영주 가문이 예전에 임시로 사용했던 그 문양을 사용할 수 있는 건 지금은 두 사람뿐이었다. 10년 전에 영주가 마왕을 물리치는 기사 놀이를 하던 두 소년에게 꼭 훌륭한 용사가 되어서 마왕을 물리치라고 말하며 예비 기사들을 위한 선물로 준 것이었다. 영주는 소년들의 검인 떡갈나무가지를 빌려 바닥에 그 문양을 그려주었다. 두 소년은 영주에게 감사 인사를 하며 꼭 훌륭한 기사가 되겠다고 말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이와이즈미는 그 약속을 지켜 재작년에 영주인 백작의 기사가 되었다. 하지만 그때 함께 약속했던 또 한 명의 소년은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8년 전 마을의 모든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호감을 사던 사랑스러운 소년의 죽음을 애도했다. 빈 관이 묻힌 소년의 무덤은 산자락 아래 자리한 묘지에 만들어졌다. 그 소년과 피를 나눈 형제보다 더 친했던 이와이즈미는 소년의 무덤이 만들어진 이후 한 번도 그곳을 찾지 않았다. 이와이즈미는 소년이 죽지 않았다고 믿어서였다.
“오이카와….”
8년 전 사라진 오이카와, 영주가 두 소년에게 준 문양. 마법사가 말한 마왕의 표식.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 나타나는 문양들. 이와이즈미는 그것이 오이카와와 관련이 있을 거라는 강한 예감이 들었다.
=======후략==========